연기를 해보겠다고 극단에 들어간 2005년, 극단 형과 함께 포스터를 붙이다가 (진짜 그 형이 갑자기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가슴에 꽂히는 한마디를 듣게 됐다.
“너 같은 놈 많이 봤어. 발 좀 담그는 척하다가 다 없어져.”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지만 그 형이 싸움을 잘해서 참았다. 이후 배우가 되는 길이 너무 힘들어서 다 포기해버리고 싶은 순간마다 그 형의 말을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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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그렇듯, 그리고 특히 20대에는 더 그렇겠지만, 참 조급해지기 마련이다. “나 안 조급해. 나는 약간 천천히 가는 스타일인 듯.”이라고 말하기 일쑤지만 사실 마음이 그렇지만도 않다. 나랑 소싯적에 길바닥에서 소주 좀 마셨던 친구가 이제는 어엿하게 몇십만 원짜리 양주 먹는데 어찌 조급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엄마 차 끌던 친구가 지금은 벤츠 타는데 어찌 그것이 부럽지 않겠는가. 부러워 죽겠지. 그래서 애써 그렇게 늘 마음을 다스린다.
--- p.74
엄마가 보고 싶다, 라는 느낌을 받는 게 사실 처음이다. 집 떠나 산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도 그 느낌이 이전과 다르다.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 사이 병치레를 두 번이나 했고 한 번은 너무 아파 의사가 아닌 엄마를 찾아갔으며 그 엄마는 나를 의사에게 데려갔다. 나 혼자도 할 줄 아는 게 많다는 것을 알았고, 이 할 줄 아는 것들이 얼마나 귀찮은 것인지 알았으며, 이것의 배의, 배의, 배를 엄마는 혼자 할 줄 안다는 것도 알았고, 그것이 존경스러웠고, 마음이 조금 아프기도 했다. 엄마에겐 일터가 있는데, 집에 돌아오면, 그 집도 일터였다.
--- p.104
나도 연기가 좋아 연기를 했는데 나는 연기도 힘들고 사는 것도 힘들어 근데 연기 말곤 할 게 없어, 라고 말할 뻔했지만, “언제 만나 술 한잔하자.”로 얼버무렸다. 진심이었을까. 연기가 힘들다는 것, 사는 게 힘들다는 것, 연기 말곤 할 게 없다는 것. 그저 충동적인 환멸에 가까운 감정 때문에 든 마음이었던 것도 같다. 어쩌면 언제 만나 술 한잔하자는 말이 가장 진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p.115
“네가 박정민이냐. 송몽규 선생과 똑같이 생겼네.”
안경이 먹혔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시나리오 첫 장에 ‘송몽규(박정민)’이라는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저 그 생각만 했던 것 같다. 그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 정말 열심히 할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이 ‘나 정말 잘해야겠는데.’ 하는 생각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 p.147
사실 빨리 서른 살이 되어보고도 싶었다. 서른쯤이면 뭔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열심히 산다고도 살았다. 소신도 있고 신념도 있고, 그것들을 크게 배신한 적도 없었다. 유혹이 있을 때마다 넘어가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도 같다. 그런 고집들이 나 자신을 점점 땅 속으로 꺼지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하지만, 아직까지 그것들을 굽힐 의사는 없다. 그렇게 서른이 되었고, 소신과 신념만 남은 다 큰 어른아이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다.
--- p.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