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저주 토끼」
할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 대를 이어 저주 용품을 만드는 집안에서 태어난 손자와 그 할아버지의 이야기. 억울하게 죽은 친구를 위해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저주토끼’를 어여쁘게 만들어 손수 복수에 나서는데….
「머리」
어느 날 물을 내리고 화장실을 막 나오려 하는데, 변기 속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어머니.” 그때부터 변기에 사는 ‘머리’는 평생 주인공의 화장실을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 “알을 스는 것도 아니고 무는 것도 아니면 그냥 두지 그러니.”
「차가운 손가락」
불현듯, 검은 천으로 눈앞을 가려놓은 상황에서 눈을 뜬 주인공. 작은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다. 눈이 먼 것일까? 그때 어디선가 가느다란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 선생님, 괜찮으세요?” 절대 암흑 속에서 주인공은 목소리만을 따라 힘겹게 어둠 속으로 나서지만,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
「몸하다」
‘몸하다: 월경이 나오다, 월경을 치르다.’ 20일째 월경이 그치지 않아 산부인과를 찾은 주인공. 의사는 호르몬에 이상이 생겼다며 피임약을 권하고, 두 달을 먹으라는 피임약을 여섯 달을 먹은 주인공은 드디어 기적적으로 월경이 멈춘다. 하지만 한 달 후 그녀는 침대에서 내려오려다 눈앞이 핑 돌아 그대로 주저앉고 만다. 병원을 찾은 그녀에게 담당 의사는 무표정하게 말한다.
“임신입니다.”
“하지만 전 미혼이고, 남자친구도 없는데요!”
「안녕, 내 사랑」
‘반려자’ 로봇을 설계하는 일이 직업인 주인공. 3개월의 시험 가동 기간이 끝난 뒤 주인공은 로봇 반려자가 “출산율을 떨어뜨리고 고령화를 더 급속히 진행시켜서 로봇을 더 많이 팔기 위한 개발회사들의 음모”라는 항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저 없이 자신이 만든 ‘반려자’를 직원 할인가로 구매한다. 하지만 그녀와 로봇의 행복한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데….
소개한 작품을 비롯해 총 10편의 유머와 호러가 조화로운 SF/판타지 작품들이 독자들을 기다린다. 저자는 말한다.
“이 책 『저주 토끼』는 쓸쓸한 이야기들의 모음이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모두 외롭다. 세상은 대체로 사납고 낯설고 가끔 매혹적이거나 아름다울 때도 있지만 그럴 때조차 근본적으로 야만적인 곳이며, 등장인물(혹은 등장토끼 혹은 등장로봇)들은 사랑하거나 기뻐하기보다는 주로 좌절하고 절망하고 분노하고 욕망하고 분투하고 배신하고 배신당하거나 살해하거나 살해당하는 방식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세상과 교류한다.
원래 세상은 쓸쓸한 곳이고 모든 존재는 혼자이며 사필귀정이나 권선징악 혹은 복수는 경우에 따라 반드시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필요한 일을 완수한 뒤에도 세상은 여전히 쓸쓸하고 인간은 여전히 외로우며 이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쓸쓸하고 외로운 방식을 통해서, 낯설고 사나운 세상에서 혼자 제각각 고군분투하는 쓸쓸하고 외로운 독자에게 위안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조그만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