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굳이 꾸며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여자들의 땅이다.
_류드밀라 페트루솁스카야
현대 러시아에 새로운 여성문학의 틀을 제시한 작가, 솔제니친 이후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가장 위대한 작가라 불리는 류드밀라 페트루솁스카야의 대표 중단편선 『시간은 밤』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2번으로 출간된다. 밑바닥에 있는 가난한 여성들의 삶을 다룬 작품이 소련에 거의 존재하지 않던 시절, 페트루솁스카야는 어머니와 딸로 이어지는 가족과 그 구성원인 여성 개인의 이야기를 썼다. 고통에 짓눌리는 여성들의 삶을 미화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묘사한 탓에, 페트루솁스카야의 소설은 1980년대 중반까지 소련에서 출간금지 처분을 받았다. 이 책에 실린 총 열세 편의 중단편 중 표제작 「시간은 밤」은 페트루솁스카야를 세계에 알린 작품으로, 독일에서 먼저 출간되었으며 이듬해에는 러시아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
평범한 사람들의 진짜 삶을 이야기하는 작가
류드밀라 페트루솁스카야
류드밀라 페트루솁스카야는 1938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한 살도 안 된 딸과 아내를 버렸고, 제2차세계대전과 스탈린 독재가 이어지며 그 시기 소련의 다른 아이들처럼 페트루솁스카야도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모스크바국립대학교를 졸업하고 잡지사, 방송국 등에서 일하던 그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첫아이를 출산한 후였다. 아이를 낳은 일과 그 직후 남편이 병으로 쓰러진 일은 사랑하는 대상이 생명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져다주었다. 그 두려움은 현실이 되어 남편은 칠 년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환자와 어린 자식을 돌보면서 가장 역할까지 맡게 된 페트루솁스카야는 가혹한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그 경험은 페트루솁스카야가 쓰게 될 글의 기반이 되었고, 그렇게 「클라리사 이야기」 「들판을 건너」 「이야기꾼」 같은 초기 단편들이 탄생했다.
하지만 페트루솁스카야가 쓴 ‘당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진짜 목소리’는 어디에도 실릴 수 없었다. 발전된 사회주의와 밝고 희망찬 미래를 내세우던 소련 당국에게, 당시 여성들의 비참한 현실을 사실 그대로 묘사한 글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지나치게 음울하고 어둡다는 이유로, 페트루솁스카야의 소설은 1980년대 중반까지 소련에서 출간되지 못했다. 다행히 잡지 『노보예 브레먀』의 편집장은 페트루솁스카야의 재능을 알아보고, 글을 출간할 수는 없지만 작가와 관계를 끊지는 말라고 편집국에 당부했다. 『노보예 브레먀』의 소개로 모스크바 예술극장과 연을 맺은 페트루솁스카야는 희곡을 쓰기 시작했고, 「친자노」 「콜롬비나의 집」 등 여러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여전히 현실의 삶을 다루고 이야기한 탓에 공연 역시 수차례 상연금지 처분을 받았지만, 페트루솁스카야의 이름은 점점 유명해졌고, 출간되지 못한 소설들도 독일어와 영어로 번역되며 유럽에 먼저 알려졌다. 페레스트로이카 정책 이후 상연 및 출간금지 처분이 풀리자 여러 극장은 앞다투어 그의 작품을 상연하기 시작했고, 모스크바 예술극장은 창립 90주년 기념 공연으로 페트루솁스카야의 작품 [모스크바의 합창]을 무대에 올렸다.
여성을 세계 그 자체로 삼아 현실을 이야기하다
페트루솁스카야는 스스로를 다큐멘터리 작가라 칭하며, 실재하는 고통에 짓눌리는 삶을 미화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현실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것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어떤 허구보다도 강한 힘을 지닌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표방하던 당시 소련에 가장 밑바닥에 있는 가난한 여성들의 삶을 다룬 작품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약자인 여자들의 이야기를 당국에서는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트루솁스카야의 작품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대부분 여성이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가정을 배경으로 한다. 그가 그리는 가정은 하나같이 가난하며, 걱정과 고통은 언제나 여성의 몫이다. 이는 실제로 당시 소련의 현실이기도 했다.
페트루솁스카야의 여러 작품에서 여자는 세계 그 자체이며, 남자는 독자적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저 여자의 삶에 부가되는 인물로만 존재한다.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살며 남편 없이 아이를 키운다. 가난에 시달리고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어머니는 가족, 특히 아이를 상처입힌다. 서투른 모성으로 아이의 애정을 짓밟는가 하면(「성모 사건」) 나름대로 노력하다가 오히려 아이를 망치기도 한다(「아름다운 도시로」). 페트루솁스카야의 작품세계에서 아이는 보통 열망하는 대상이나 희망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는 가정은 늘 어머니와 아이만으로 이루어진다. 아버지의 역할을 다하는 남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임신한 여자를 두고 떠나버리는 게 대부분이며, 결혼한다 해도 다들 아내를 두고 바람을 피운다. 다른 여자를 들이겠다고 아내를 내쫓기도 한다(「밀그롬」).
드물게 아내에게 애정을 품는 남자도 등장하지만, 그들도 결국에는 가족을 방기하고 외면해버리거나(「인생은 연극이다」)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상태에 처한다(「쇼팽과 멘델스존」). 심지어 아이 아버지의 존재가 제대로 언급조차 되지 않는 단편들도 있다(「집의 비밀」 「절대로」). 이러한 묘사는 당대 남성에 대한 비판이며 동시에 아버지-스탈린을 중심으로 한 소련의 거대 가족 신화를 향한 비판이기도 하다. 남자는 이성과 계획, 처벌과 감시로 가정을 통제하려 하지만, 남편과 아버지 없이도 완성되는 가족은 결국 남자를 배제하고 무너뜨린다(「세 얼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모든 여자에게 바치는 글, 「시간은 밤」
시인 안나가 남긴 메모로 이루어진 「시간은 밤」은 페트루솁스카야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소설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러시아보다 독일에서 먼저 출간되었으며, 이듬해에는 러시아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 페트루솁스카야는 러시아를 두고 여자 호메로스들의 나라, 굳이 꾸며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여자들의 땅이라고 했다. 「시간은 밤」은 페트루솁스카야가 이 뛰어난 서술자들, 비상한 재능을 지닌 이야기꾼들에게 바치는 글이다. 「시간은 밤」에서 페트루솁스카야는 앞선 단편들에 담긴 이야기, 남자가 어떻게 아내와 아이를 버리는지, 버려진 아이들이 어떻게 다시 가정을 이루려 애쓰다 실패하는지, 나이든 여자들이 고독과 절망 속에서 어떻게 무너져가는지, 이 모든 고통이 어떻게 유전처럼 반복되는지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소설의 화자인 안나는 오십대 중반의 가난한 시인이다. 안나가 글을 쓰는 시간은 늘 밤, 손자가 잠든 후 자신만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그래서 밤은 안나의 시간이 된다. 그러나 그 밤은 평온과 여유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밤이 되며 하루가 가듯이 나이를 먹은 안나의 삶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안나는 남들은 자신을 아직 젊은 여자로 보곤 한다며 몇 번이나 자신의 시간대를 거부한다. 밤이라는 시간은 안나에게 더는 창창한 미래가 없는 어두컴컴한 현실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안나는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어머니’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오만하고 자의식이 강하며, 폭언으로 딸 알료나를 상처입힌다. 어머니 시마가 자신에게 한 말들은 모두 질투에서 나온 비난이라 치부하면서, 알료나에게 모욕을 퍼부을 때는 세상을 더 산 현명한 사람으로서 하는 충고라 이야기한다. 어머니와 지낸 시간을 끔찍하게 여기면서, 자식들의 사랑이 자신에게 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절망한다.
안나는 자식들을 깊이 사랑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시마가 안나에게 그랬듯이 안나 역시 자식들에게 제대로 된 안식처를 만들어주지 못한다. 안나에게는 아버지가 없으며, 안나가 그랬듯이 딸 알료나도 부인이 있는 남자의 아이를 낳는다. 어머니와 자식만으로 이루어지는 가족의 형태는 반복해서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마침내 안나는 자신과 어머니의 관계가 알료나와의 사이에서 그대로 반복되는 장면을 본다. 안나가 오랫동안 어머니 시마를 증오하고 사랑한 것처럼, 알료나도 안나를 오래도록 증오하고 사랑할 것이다. 안나의 시간인 밤이 하루의 끝이면서 또한 다음날의 시작이기도 하듯이.
페트루솁스카야는 여자의 삶에는 남을 사랑하고 돌보는 순간은 물론 남을 미워하고 상처입히는 순간 역시 존재한다는 진실을 반복해서 묘사한다. 이런 페트루솁스카야의 작품세계는 현대 러시아 여성소설에 완전히 새로운 틀을 제시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작품이 러시아만의 이야기로 읽히는 것을 경계했다. 글에서 다루는 문제들은 특정 나라에만 있는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며, 시대가 달라진다고 해서 사람들의 본질이 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여자가 고통을 헤쳐나가며 때로는 누군가를 돕고 때로는 누군가를 상처입히는 일은 지금도 여전히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다. 페트루솁스카야의 작품이 말해주듯, 현실의 여성은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한 인간이며 인간은 결코 온전히 선하거나 온전히 악할 수 없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