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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
중고도서

시간의 문

: 중단편소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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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12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33쪽 | 507g | 148*210*30mm
ISBN13 9788970632469
ISBN10 8970632468

중고도서 소개

사용 흔적 약간 있으나, 대체적으로 손상 없는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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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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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대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 물건의 완벽성에 대한 아쉬움보다도 오히려 그런 의도적인 사기장의 파행이나 항아리의 결함 쪽에 훨씬 너그러운 관심들이 쏠렸다.

하지만 그 항아리의 내력에 대한 경섭의 설명은 보다 더 친절했다. 그리고 그의 그런 친절한 설명은 날이 갈수록 물건의 진가를 배가시키고 있었다. 바로 그 경섭의 설명에 의하면, 항아리의 내력은 그가 매번 친구들에게 자랑을 늘어놓고 싶어하는 동기나 의도에 관계없이 친구들을 상당히 감동시키는 바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친지들은 항아리에 대한 내력을 하필이면 그 경섭으로부터 듣게 된 것을 묘하게 어색하고 씁쓰레해 하는 것이었다.

"그 물건은 한때 제법 호경기를 누리던 어느 가발업체 사장의 소유로 있었지요."

경섭은 거의 언제나 항아리의 옛 소유주에게서 자신이 그것일 입수하게 된 경윌에서부터 자신의 자랑을 시작하곤 하였다.

그는 그 가발업체 사장에게 사채를 얼마간 융통해 주고 있었는데, 위인의 능력이 신통칠 못했던지 멀쩡해 보이던 작자의 회사가 어느 날 갑자기 억대의 부도를 내고 도산을 하고 말았다고 했다. 그래 꾸어준 돈을 받아낼 길이 없고, 그렇다고 그냥 발을 개고 물러앉아 버릴 수도 없어, 하루는 그냥 분풀이삼아 작자의 집을 쳐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래 봐야 물론 별볼일은 없었지요. 돈푼이나 될 만한 작자의 집칸은 은행에 이미 근저당권 설정이 되어 있었으니까요. 가재 도구도 돈푼이나 될 만한 것은 자리를 모두 비켜냈더군요. 한데 그 집 응접실 구석에 저 항아리가 아직 커튼 자락에 가려 먼지를 뒤집어쓰고 남아 앉았더란 말씀예요. 그래 난 화풀이 삼아 그거라도 그냥 약탈자 한가지로 들집어왔지요. 그땐 물론 항아리의 진가를 알고서 한 노릇이 아니었어요. 들은 풍월로 그저 이거나마 뜻밖에 돈푼이나 돼줄 물건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내가 이런 물건의 진가를 압니까. 그땐 아직 저런 낙서가 들어 있는 것조차도 알질 못했구요."
---pp.138-139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1965년 <퇴원>을 시작으로 60년대 소설문학의 한 장을 연 작가 이청준의 30여 년 넘게 축적되어 온 문학을 한자리에 모아 우리 현대소설의 궤적을 추적하고, 그 위에서 새롭게 전개될 우리 소설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이청준 문학전집'의 중단편소설 여섯 번째 작품 ≪시간의 문≫이 도서출판 열림원에서 출간되었다.

≪시간의 문≫에 실려 있는 일곱 편의 작품들은, 1966년에 발표된 <줄광대>를 시작으로 1994년에 발표된 <불 머금은 항아리>까지 대략 30여 년이라는 범위에 걸쳐 있는 것들이지만 '예술적 삶과 구원의 문제'라는 동일한 주제를 지니고 있으며, 그 구조도 유사하다. 그것은 세속의 인물들이 현실적 질서를 초월한 듯 보이는 자리에 있는 낯선 대상을 찾아간다는 탐색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허운을 찾아가는 <줄광대>(1966)의 문화부 남 기자, '노인'을 찾아가는 <과녁>(1967)의 석주호 검사, 곽 서방을 찾아가는 <매잡이>(1968)의 소설가 '나', 가마 일을 하는 백용술을 찾아가는 <불 머금은 항아리>(1994)의 민경섭, 사진 작가 유종열을 찾아가는 <시간의 문>(1982)의 신문기자 '나', 삶과 죽음의 의미를 묻기 위해 노거목을 찾아가는 <노거목과의 대화>(1984)의 '나' 그리고 지관 양정관 화백을 찾아가는 <지관의 소>(1990)의 소설가 '나'를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예'(藝)의 삶을 추구하기에, 현실에서 이탈해 자신들만의 삶의 세계를 고집하는 그 대상을 찾아가기 위해 낯선 공간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예'나 '미'는 현실적인 관심이나 이해관계로부터 벗어날 때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바로 '예'가 현실 속에서 패배해 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예'의 존재 가치를 역설적으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예정된 죽음을 실현하기 위한 허운의 마지막 줄타기가 '승천'의 신화가 된 <줄광대>, 사라져가는 풍속의 최후를 증언하는 곽 서방의 죽음이 그 죽음을 강요한 시류와 속물성을 드러내는 결과를 낳은 <매잡이>가 그러하며, 이러한 '예'와 '현실'의 대립은 다시 삶과 예술을 동일화시키는 과정을 거쳐 초월되고 있다. 즉, <시간의 문>의 유종열은 죽음으로 그의 예술적 삶을 종결함으로써 현실과 예술을 동일화하고 있고, <지관의 소>의 양정관 화백은 죽음을 앞두고 '나'에게 자신의 마지막 작품인 소 그림을 건넴으로써 화가 지관과 그의 그림 속의 소를 합일시킨다.

작가는 이러한 예술과 삶의 동일화 현상을 통해 예술 그 자체는 그것을 지향하는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진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으며, 동시에 예술에 대한 지향과 삶의 현실성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소설 속 인물과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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