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퇴원>을 시작으로 60년대 소설문학의 한 장을 연 작가 이청준의 30여 년 넘게 축적되어 온 문학을 한자리에 모아 우리 현대소설의 궤적을 추적하고, 그 위에서 새롭게 전개될 우리 소설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이청준 문학전집'의 중단편소설 여섯 번째 작품 ≪시간의 문≫이 도서출판 열림원에서 출간되었다.
≪시간의 문≫에 실려 있는 일곱 편의 작품들은, 1966년에 발표된 <줄광대>를 시작으로 1994년에 발표된 <불 머금은 항아리>까지 대략 30여 년이라는 범위에 걸쳐 있는 것들이지만 '예술적 삶과 구원의 문제'라는 동일한 주제를 지니고 있으며, 그 구조도 유사하다. 그것은 세속의 인물들이 현실적 질서를 초월한 듯 보이는 자리에 있는 낯선 대상을 찾아간다는 탐색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허운을 찾아가는 <줄광대>(1966)의 문화부 남 기자, '노인'을 찾아가는 <과녁>(1967)의 석주호 검사, 곽 서방을 찾아가는 <매잡이>(1968)의 소설가 '나', 가마 일을 하는 백용술을 찾아가는 <불 머금은 항아리>(1994)의 민경섭, 사진 작가 유종열을 찾아가는 <시간의 문>(1982)의 신문기자 '나', 삶과 죽음의 의미를 묻기 위해 노거목을 찾아가는 <노거목과의 대화>(1984)의 '나' 그리고 지관 양정관 화백을 찾아가는 <지관의 소>(1990)의 소설가 '나'를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예'(藝)의 삶을 추구하기에, 현실에서 이탈해 자신들만의 삶의 세계를 고집하는 그 대상을 찾아가기 위해 낯선 공간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예'나 '미'는 현실적인 관심이나 이해관계로부터 벗어날 때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바로 '예'가 현실 속에서 패배해 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예'의 존재 가치를 역설적으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예정된 죽음을 실현하기 위한 허운의 마지막 줄타기가 '승천'의 신화가 된 <줄광대>, 사라져가는 풍속의 최후를 증언하는 곽 서방의 죽음이 그 죽음을 강요한 시류와 속물성을 드러내는 결과를 낳은 <매잡이>가 그러하며, 이러한 '예'와 '현실'의 대립은 다시 삶과 예술을 동일화시키는 과정을 거쳐 초월되고 있다. 즉, <시간의 문>의 유종열은 죽음으로 그의 예술적 삶을 종결함으로써 현실과 예술을 동일화하고 있고, <지관의 소>의 양정관 화백은 죽음을 앞두고 '나'에게 자신의 마지막 작품인 소 그림을 건넴으로써 화가 지관과 그의 그림 속의 소를 합일시킨다.
작가는 이러한 예술과 삶의 동일화 현상을 통해 예술 그 자체는 그것을 지향하는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진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으며, 동시에 예술에 대한 지향과 삶의 현실성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소설 속 인물과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