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도 빛도 없는 색-블랙
블랙; 그건 밤의 색이고, 우울함과 비통, 상실, 참회, 권력, 권위와 멋의 색이다. 그건 또한 죽음의 색이며, 루시퍼가 걸친 옷의 색깔, 거친 나치스친위대,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영국 파시스트인 오스왈드 모슬리의 검은셔츠단, 옛 서부의 나쁜 놈들, 서양의 사악한 마녀, 오토바이 폭주족, 그리고 드라큘라이다. 카프카의 소설『심판』에서 요제프 카는 검은색 옷을 입은 불길한 남자들에 의해 체포되고,
마그리트(Magritle)의 그림에서 검은 중산모자를 쓴 신원불명의 남자는 지금은 입지 않는 옷과 비슷한 옷을 입는다. 그렇지만, 수녀나 수도승 그리고 오드리 헵번 또한 검은색을 선호했고 찰리 채플린, 로렐과 하디, 햄릿과 프랑스 실존주의자 같은 사람들도 검은 옷을 좋아했다.
블랙홀, 공갈, 왕따시키기, 암거래, 비행기로 죽은 사람들의 비밀을 담은 블랙박스 등은 불쾌한 암시들을 간직한다. 검은 고양이는 운이 나쁜 것으로 여겨지고, "검은 강아지들"은 빈번한 우울증 때문에 처칠에게 주어진 이름이다. 반면에 태권도의 검은 띠는 최고수준의 성취를 의미하며 지오지오 아르마니의 검은 라벨은 그의 옷 중 가장 비싼 옷들에만 붙여진다.
고대 중국에서 천국은 원래 검은색이라고 믿었던 반면 밀튼은 지옥을 암흑의 세계로 만들었다. 많은 르네상스 작가들에 의하면 블랙은 우리가 태어났고 반드시 돌아가야 하는 장소로써 기억되는 대지의 색깔인 것이다.
매혹적인 검은색 문화의 역사
『블랙패션의 문화사』에서 영국학자인 존 하비는 독자들에게 매혹적인 검은색 문화의 역사를 알려준다. 비록 저자가 사람들이 입는 옷의 패션 변화에 초점을 맞춘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연구는 사실 변화하는 정치적·사회적·윤리적 가치의 광범위한 연구가 되기 위해 열려있다.
스페인의 검은색
유럽 역사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의 핵심적인 인물은 카를 5세의 아들 펠리페 2세이다. 1556년부터 1598년까지 스페인을 통치한 그는 사악한 군주의 전형으로, 살인을 조장하고 종교 재판소를 후원하면서 본인이 검은 옷을 입고 도미니크회 사무국을 통하여 자신의 의지를 전파했다 종교재판소의 성직 임명권자인 스페인의 펠리페 2세 또한 그의 두 번째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검은색 옷을 입었고 그 옷을 벗는 것을 거절하였다.
그의 아첨꾼들은 그 복장을 따라 입었고 이어서 유럽 전체에 걸쳐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입었다. 스페인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였다. 따라서 그것은 전 세계의 패션을 주도했다는 것이 그리 놀랄만한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또한 검은색 옷을 입는 것이 냉혹한 국가 종교를 이용하여 저항하는 제국 (터키,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등 외부세계와 스페인 내부의 무어인, 유대인, 프로테스탄트 같은 적)을 조직화한 정치적 변혁기에 퍼졌다. 검은색과 권력을 생각해 볼 때, 안전하게 누리는 권력보다는 정치적으로 불안한 시기에 단호하게 발휘되는 권력이 검은색과 더 잘 연결된다. 검은색은 금욕주의의 색이었고 금욕주의는 수행자가 자신에게 혹은 군주가 나라에 부여한 원칙이다.
네덜란드의 검은색
블랙과 제국의 건설 사이의 관계는 그들의 힘이 절정기에 달했던 17세기에 검은 옷을 입었던 네덜란드인에 의해 자극받아 칼뱅파의 도덕성에 기여하고 그들의 정신상태에 붙어 있는 표식으로서의 역할임을 하비는 말한다.
프랑스의 검은색
17세기 후반에 엄격함과 검은색은 권력 있는 사람들의 의상에 미치던 힘을 다소 잃었다. 스페인이 기울면서 유럽 전체에 일어난 변화는 프랑스의 부상이었다. 국가들은 국제적인 패션을 따르기도 하지만, 부상하는 국가들의 경우 스타일과 의상을 통해 자신들의 주도권을 주장하는 것이 사실이다.
프랑스의 관습을 단순화해서는 안 되는데, 프랑스에서는 학자들과 시민들 다수가 검은 옷을 입었으며 예수회와 얀센파는 영향력 있는 검은 옷의 성직자들이었다. 또한 검은색은 파리지앵의 옷과 공단을 입는 귀족들의 옷에서 거대한 모습을 드러냈다.
영국의 검은색
19세기에 들어서면 영국 또한 블랙이 상복으로 유행하였고, 하비는 최후의 가장 힘 있고 정치적인 힘의 영역으로 교회의 블랙에 대한 가장 분리된 해석의 발전으로 본다. 블랙은 통일, 일반성, 권위 그리고 훈육을 나타내며 제국질서의 상징이 되었다.
19세기 영국에서 검정의 급격한 유행에는 다른 이유들이 있었다. 디킨스의 소설에서 검정은 검은 의복, 음침한 도시풍경 그리고 어두운 집들이며 수도자, 장사하는 사람들, 검소한 색깔, 도덕의 중요성, 근면한 것으로 생각하는 중산층을 연상시키게 한다.
동시에 저자가 제시하듯 영국의 성장하는 산업화와 도시화를 반영했고, 40년 동안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상복을 입었던 빅토리아 여왕의 우울한 마음을 나타낸다. 러스킨은 블랙을 부정으로 생각하여 사회적으로 증가하는 부와 빈곤 사이의 양극화로 연관시켰고 보들레르는 변화하는 사회에서 발전하는 인류평등주의의 신호로 해석했다.
이탈리아 파시스트, 나치스친위대, 영국 파시스트인 오스왈드 모슬리의 검은셔츠단, 1960년대의 모즈족과 할리 오토바이 폭주족의 검은 가죽 재킷, 80년대의 포저스족과 뉴로맨틱족, 90년대의 고스족이나 7,80년대 펑크족의 검은색은 그들이 계급 서열 바깥에 있고자 했든 아니면 그저 그렇게 느끼든, 한편으로는 엘리트 열망하고 엘리트를 흉내 내고자 하는 그룹의 유니폼으로서 과거 15세기 부르고뉴, 16세기 스페인, 19세기 영국의 검은색이 몇 번이고 보였던 가치를 여러 가지 굴절을 거쳐 드러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