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서론: 옷, 색, 의미
1장: 누구의 장례식인가? 2장: 역사 속의 검은색 3장: 스페인의 검은색에서 셰익스피어의 검은색까지 4장: 회화 속의 검은색에서 디킨스의 검은색까지 5장: 영국의 검은 집 6장: 검은 옷의 남성과 흰 옷의 여성 7장: 우리 시대의 검은 옷 |
이 책이 남성과 검은색을 다루는 이유는, 검은 옷을 입는 용도의 변형- 검은색에 권력이 부여된 것 - 이 남성복에서 발생했고, 여성의 경우 거의 현 세기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슬픔과 참회의 표현으로 검은색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화려하고 돈 많고 권세 있는 여성들이 호화로운 검은 의상을 입을 때조차 상중(喪中) 애도의 표현임을 구실로 삼곤 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시간이 흐르면서 이 검은색 - 무채 무광의 색, 슬픔·상실·굴욕·죄책감·수치의 색 - 이 남성들이 지니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닌 것, 즉 지위, 돈, 전문 지식을 상징하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 주제에는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p. 11
15세기에 부르고뉴의 훌륭한 군주인 필리프는 1419년 프랑스군에 의해 살해된 그의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검은색 옷을 입었고, 죽음의 복수를 하려 한다는 것을 적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계속 검은색 옷을 입었다. 그렇게 실행하기 위해, 그는 슬픔과 비탄에 찬 효심과 정치적 권력의 특권으로 전통적 연상에 검정을 결합시켰다. 필리프는 커다란 슬픔으로 인해 높은 도덕성을 인정받았으며, 영리한 본능으로 그런 상태를 유지하여, 공작이라는 높은 신분에 도덕성까지 강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궁정은 화려함으로 유명했다. 그의 검은 옷들은 호사스러웠고 검은 벨벳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따라서 그의 옷은 엄숙할 뿐 아니라 세련되기도 했다.---p. 75 부르고뉴 공국 궁정의 검은색, 필리프의 검은색이 검은색을 널리 퍼트린 것인지, 필리프 자신이 널리 퍼지는 검은색의 유행을 따른 것인지는 지금 평가하기 어려운 일이다. 아마도 두 가지 요소가 상호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필리프의 검은색과 부르고뉴 공국의 검은 옷차림은 15세기 중반에 부르고뉴의 권력이 최고점에 이른 것과 관계가 있다. 검은색은 단순한 위엄이 아니라 왕자나 국가 같은 중대한 위엄 혹은 중대한 위엄을 대표한다.---p. 78 스페인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근엄한 검은 옷을 유럽과 신대륙에 확산시키는 데 커다란 몫을 했다. 스페인의 검은 옷은 본래 근엄한 전통에 의한 것이며 부르고뉴의 검은 옷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스페인 왕 카를로스 1세)의 경우 원래는 룩셈부르크를 다스리던 부르고뉴가의 카를이기 때문이다. 그는 합스부르크가뿐만 아니라 필리프 선왕(善王)의 후손이며 1516년 스페인 왕위를 물려받으면서 부르고뉴 궁정에서 지배적 이었던 검은 옷 스타일을 가져갔다.---p. 100 신학과 자기 성찰의 문제와는 별도로, 패션에 있어 엄격한 스타일이 나타난 것은 가혹한 환경에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 그것은 고통과 격렬한 싸움과 억압적이고 위태로운 생활로 점철된 오랜 세월을 견뎌내는 스타일이다. 네덜란드 공화국 초기 100년 동안 적에게 둘러싸여 스페인과 전쟁을 치렀으며 정기적으로 육지를 침범하는 경로가 되는 바다를 항시 경계해야 했다. 네덜란드의 정치 체제는 군주제를 위협했고, 늘어나는 부는 적과 동맹 모두에게 위협이 되었다. 고립된 네덜란드는 목사와 통치자들을 통해 신이 새로 선택한 국민으로서의 특권과 정당성을 끊임없이 재확인함으로써 사기를 유지했다. 지속되는 불안에 의해 단합된 사회에서 남자와 여자, 사회 모든 계층 사람들 대부분이 똑같은 색상의 옷을 입고 , 개혁파 교회 설교자들 또한 하얀 칼라가 달린 검은 옷을 입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네덜란드 황금 시대는 주로 검은 옷을 입은 시대였음을 초상화와 풍속화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다.---p. 121 네덜란드 사람들은 프랑스의 밝은 패션이 주위 나라에 퍼졌음에도 17세기 내내 검은 옷을 고수했다. 그들에게 검은 옷이 중요했던 것은, 성직 권력의 옷이나 칼뱅주의 도덕을 찬사하는 옷이라서가 아니라, 위협받으면서 번성하고, 포위당한 채 싸우며, 불안 속에 뽐내는 신흥 공화국 부르주아 국민 전체가 널리 입는 옷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p. 124 17세기 말 유럽의 차림새에서는 색상의 증가와 다양화가 나타난다. 이런 변화가 프랑스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해도, 프랑스의 부상과 파리 사람들의 밝은 색조에만 온전히 공을 돌리는 것은 너무 개략적이다. 유럽에서 검은색 패션이 늘어나고 지속된 그 오랜 시간은 강렬한 종교 동요, 종교 분쟁, 종교 전쟁의 시기와 완전히 겹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럽 국가 간의 전란이 가톨릭 군대와 프로테스탄트 군대와의 사투라는 심각성을 잃게 됨에 따라(물론 전쟁이나 종교적 편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검은 패션도 사라진다는 사실을 주목할 만하다. 그러므로 전쟁으로 찢겨지고 시체가 뿌려진 대륙에 존재했던 심한 정신적 동요와 (검은 옷을 입은 입은 양 진영의 성직자들에 의해 유도된) 적대적 정신이, 검은 패션이 사회 표면으로 드러나는 것을 강화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p. 172 우리시대의 검은 옷 남자들의 검은 옷이 사회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중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사회계급의 서열 바깥으로 나가거나 계급 서열에서 비켜서 있는 동시에, 고유의 엄숙함으로 충실하게 규율 잡힌 엘리트를 만들어 낸다. 이것이 한편으로 엄격한 권력을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사회 내의 권력이동을 조장하는 검은색의 이중 효과이다. 이점이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는, 권력이 정적인 사회구조 속에 퍼져 있는 것으로, 그 구조가 무너질 때까지 거의 변하지 않는 것처럼 논의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은 시위되고 언제나 움직이는 생태로 존재하며, 더 강한 권력이 그것을 취하면서 이동하게 된다. 그것은 유행이 움직이는 것처럼 움직이며, 유행이 흐르는 곳으로 움직이는 경향을 지닌다. 그런 움직임은 언제나 불안정하게 시도되는 반란들, 잠식과 장악과 월권, 그룹 대 그룹의 공격과 방어 속에서 일어난다. 이런 현상은 유행의 역사가 되어 표면에 등장하고, 유행의 역사는 새로운 엘리트 지망생들이 급히 부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검은색이 엘리트 색이 것처럼 권력의 색이 되었다면, 그 엘리트는 본래 순수하고 정신적일 수 있다(운둔자와 수도자들 처럼). 하지만 정신적 엘리트라는 바로 그 점을 통해, 검은색은 앞으로 엘리트가 되고자 하는 엘리트 지망생과 부상하는 엘리트들에게 은신처와 강력한 마술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것은 마침내 나치스라는 가장 추한 엘리트의 은신처가 되었고, 그 엘리트는 엘리트 민족이라는 믿음에 헌신하여 다른 민족을 정복할 뿐 아니라 몰살하고자 했다. ---p. 338 |
색깔도 빛도 없는 색-블랙
블랙; 그건 밤의 색이고, 우울함과 비통, 상실, 참회, 권력, 권위와 멋의 색이다. 그건 또한 죽음의 색이며, 루시퍼가 걸친 옷의 색깔, 거친 나치스친위대,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영국 파시스트인 오스왈드 모슬리의 검은셔츠단, 옛 서부의 나쁜 놈들, 서양의 사악한 마녀, 오토바이 폭주족, 그리고 드라큘라이다. 카프카의 소설『심판』에서 요제프 카는 검은색 옷을 입은 불길한 남자들에 의해 체포되고, 마그리트(Magritle)의 그림에서 검은 중산모자를 쓴 신원불명의 남자는 지금은 입지 않는 옷과 비슷한 옷을 입는다. 그렇지만, 수녀나 수도승 그리고 오드리 헵번 또한 검은색을 선호했고 찰리 채플린, 로렐과 하디, 햄릿과 프랑스 실존주의자 같은 사람들도 검은 옷을 좋아했다. 블랙홀, 공갈, 왕따시키기, 암거래, 비행기로 죽은 사람들의 비밀을 담은 블랙박스 등은 불쾌한 암시들을 간직한다. 검은 고양이는 운이 나쁜 것으로 여겨지고, "검은 강아지들"은 빈번한 우울증 때문에 처칠에게 주어진 이름이다. 반면에 태권도의 검은 띠는 최고수준의 성취를 의미하며 지오지오 아르마니의 검은 라벨은 그의 옷 중 가장 비싼 옷들에만 붙여진다. 고대 중국에서 천국은 원래 검은색이라고 믿었던 반면 밀튼은 지옥을 암흑의 세계로 만들었다. 많은 르네상스 작가들에 의하면 블랙은 우리가 태어났고 반드시 돌아가야 하는 장소로써 기억되는 대지의 색깔인 것이다. 매혹적인 검은색 문화의 역사 『블랙패션의 문화사』에서 영국학자인 존 하비는 독자들에게 매혹적인 검은색 문화의 역사를 알려준다. 비록 저자가 사람들이 입는 옷의 패션 변화에 초점을 맞춘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연구는 사실 변화하는 정치적·사회적·윤리적 가치의 광범위한 연구가 되기 위해 열려있다. 스페인의 검은색 유럽 역사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의 핵심적인 인물은 카를 5세의 아들 펠리페 2세이다. 1556년부터 1598년까지 스페인을 통치한 그는 사악한 군주의 전형으로, 살인을 조장하고 종교 재판소를 후원하면서 본인이 검은 옷을 입고 도미니크회 사무국을 통하여 자신의 의지를 전파했다 종교재판소의 성직 임명권자인 스페인의 펠리페 2세 또한 그의 두 번째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검은색 옷을 입었고 그 옷을 벗는 것을 거절하였다. 그의 아첨꾼들은 그 복장을 따라 입었고 이어서 유럽 전체에 걸쳐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입었다. 스페인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였다. 따라서 그것은 전 세계의 패션을 주도했다는 것이 그리 놀랄만한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또한 검은색 옷을 입는 것이 냉혹한 국가 종교를 이용하여 저항하는 제국 (터키,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등 외부세계와 스페인 내부의 무어인, 유대인, 프로테스탄트 같은 적)을 조직화한 정치적 변혁기에 퍼졌다. 검은색과 권력을 생각해 볼 때, 안전하게 누리는 권력보다는 정치적으로 불안한 시기에 단호하게 발휘되는 권력이 검은색과 더 잘 연결된다. 검은색은 금욕주의의 색이었고 금욕주의는 수행자가 자신에게 혹은 군주가 나라에 부여한 원칙이다. 네덜란드의 검은색 블랙과 제국의 건설 사이의 관계는 그들의 힘이 절정기에 달했던 17세기에 검은 옷을 입었던 네덜란드인에 의해 자극받아 칼뱅파의 도덕성에 기여하고 그들의 정신상태에 붙어 있는 표식으로서의 역할임을 하비는 말한다. 프랑스의 검은색 17세기 후반에 엄격함과 검은색은 권력 있는 사람들의 의상에 미치던 힘을 다소 잃었다. 스페인이 기울면서 유럽 전체에 일어난 변화는 프랑스의 부상이었다. 국가들은 국제적인 패션을 따르기도 하지만, 부상하는 국가들의 경우 스타일과 의상을 통해 자신들의 주도권을 주장하는 것이 사실이다. 프랑스의 관습을 단순화해서는 안 되는데, 프랑스에서는 학자들과 시민들 다수가 검은 옷을 입었으며 예수회와 얀센파는 영향력 있는 검은 옷의 성직자들이었다. 또한 검은색은 파리지앵의 옷과 공단을 입는 귀족들의 옷에서 거대한 모습을 드러냈다. 영국의 검은색 19세기에 들어서면 영국 또한 블랙이 상복으로 유행하였고, 하비는 최후의 가장 힘 있고 정치적인 힘의 영역으로 교회의 블랙에 대한 가장 분리된 해석의 발전으로 본다. 블랙은 통일, 일반성, 권위 그리고 훈육을 나타내며 제국질서의 상징이 되었다. 19세기 영국에서 검정의 급격한 유행에는 다른 이유들이 있었다. 디킨스의 소설에서 검정은 검은 의복, 음침한 도시풍경 그리고 어두운 집들이며 수도자, 장사하는 사람들, 검소한 색깔, 도덕의 중요성, 근면한 것으로 생각하는 중산층을 연상시키게 한다. 동시에 저자가 제시하듯 영국의 성장하는 산업화와 도시화를 반영했고, 40년 동안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상복을 입었던 빅토리아 여왕의 우울한 마음을 나타낸다. 러스킨은 블랙을 부정으로 생각하여 사회적으로 증가하는 부와 빈곤 사이의 양극화로 연관시켰고 보들레르는 변화하는 사회에서 발전하는 인류평등주의의 신호로 해석했다. 이탈리아 파시스트, 나치스친위대, 영국 파시스트인 오스왈드 모슬리의 검은셔츠단, 1960년대의 모즈족과 할리 오토바이 폭주족의 검은 가죽 재킷, 80년대의 포저스족과 뉴로맨틱족, 90년대의 고스족이나 7,80년대 펑크족의 검은색은 그들이 계급 서열 바깥에 있고자 했든 아니면 그저 그렇게 느끼든, 한편으로는 엘리트 열망하고 엘리트를 흉내 내고자 하는 그룹의 유니폼으로서 과거 15세기 부르고뉴, 16세기 스페인, 19세기 영국의 검은색이 몇 번이고 보였던 가치를 여러 가지 굴절을 거쳐 드러낸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