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 피부염이 계속되는 동안 서영이는 가려움으로 거의 미쳐가는 것 같았다. 손톱으로 표독스럽게 자신의 살을 후벼파고 있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도 속수무책이었다. 밤새 혹은 하루 종일 앉아서 긁어주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 p.45
무엇보다 나를 초조하고 불안하게 하는 부분은 얼굴이었다. 살갗이 건조해서 약간만 비틀어도 팔다리에 주름이 생겨 보기가 흉했는데, 급기야 얼굴에도 그런 주름이 생겼다. 아이가 웃어도 예쁘게 보이지 않았다. 하얀 각질이 일어난데다 흉한 주름이 이마에 가로로 깊이 새겨졌다. 눈 주변은 항상 붉은 기가 어려 있었고, 눈 바로 아래는 진물이 흘러나와 번들거렸다. 그나마 얼굴이 괜찮아서 천만다행이었는데 얼굴에까지 번지자 정말 절망스러웠다. --- p.74
그 많은 정보를 모두 실행할 수도 없지만 그동안 그렇게 얻은 정보들을 따르면서 수없이 거듭한 시행착오 때문에 그들의 성의와 관심이 오히려 짜증스러웠다. 아이의 아토피가 전부 엄마의 잘못인양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임신 때 잘못 먹은 음식이나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었고, 산딸기를 따서 그 물로 목욕을 시키면 낫는데 왜 가르쳐줘도 듣지 않느냐고 비난하면서 오장육부를 긁어놓는 사람도 있었다. --- p.79
그 당시 나는 딸아이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내 고통이 더 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위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힘들어하는 아이보다 그 아이 때문에 지칠 대로 지친 나를 먼저 챙기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낄 때, 나는 고통받는 딸과 한마음이 되지 못했다. 아픈 아이를 치료하느라 고생하는 엄마로서 항상 나를 드러내고 싶어했다. 아이를 그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대한 변명이 우선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며 나를 합리화하느라 급급했다. --- p.83
그때 누군가가 창문을 두드렸다. 식구들이 식당으로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고개를 들어 보니 언제 오셨는지 시어머니가 차 밖에 서 계셨다. 문을 열자 안쓰러움이 가득한 얼굴로 들고 있던 밥그릇을 내미셨다. 오리탕 국물에 밥을 말아서 김치 몇 조각을 찢어 올려 가져오신 것이다.
“어여 먹어라. 너가 어떻게 사는지 한번 볼라고 왔는디 이렇게 고생허냐.”
시어머니 말씀에 눈물이 또 쏟아졌다. 큰애가 어느새 따라와 할머니 곁에서 우산을 받쳐 들고 서 있었다. 어머니는 들어가지 않고 내가 먹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셨다. 나는 어머니 앞에서 빗물과 눈물이 뒤섞인 국밥을 떠먹었다. --- p.131
그래도 내게는 희망이 있었다. 나을 수 있다는 희망. 낫기만 한다면 그 무엇도 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은 희망을 붙들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길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먼저 계획부터 세웠다. 지금까지 받은 교육, 그동안 밑줄치며 공부한 책들, 시행착오 끝에 터득한 치유법 등을 토대로 꼭 지키고 실천해야 할 항목들을 차례로 적어보았다. 그랬더니 무려 17가지나 되었다. 어느 하나 버릴 게 없고 그 무엇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것들이었다. --- p.181
나는 보습제를 바르다 말고 아이의 등을 자꾸만 쓸어보았다. 그 부드럽고 매끈한 감촉. 도대체 아이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세상에! 서영이 피부가 왜 이렇게 부드럽지?”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자 아이도 자신의 팔과 다리를 쓸어보더니 “와, 부드럽다이잉.” 하며 활짝 웃었다. 나는 아이의 배를 만져보고, 팔을 만져보고, 다리와 등을 만져봤다. 그리고 다시 배, 팔, 다리, 등을 또 만지면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거듭 확인했다. 순간 나는 기적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렸다. 딸아이가 드디어 허물을 벗고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그날 이후 아이의 피부는 윤기가 흘렀다. 더 이상 숯파스를 붙이지 않아도 되었고 보습제를 바르지 않아도 피부가 매끈하고 촉촉했다.
--- p.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