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은 ‘경제적 독립’과 ‘심리적 독립’으로 나누어진다. ‘경제적 독립’은 말 그대로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받지 않고, 내가 필요한 돈은 스스로 벌어서 쓸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상태가 되면 부모님과의 관계가 훨씬 좋아지고 자유로워질 수가 있다. 왜냐하면, 부모님은 돈이 적게 들어서 좋고, 자녀는 자신이 부모님에게 맞추기 싫은 부분에 억지로 맞추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나이는 아직 이러한 경제적 독립을 이루기에는 이른 나이이니 ‘심리적 독립’ 이야기를 할까 한다. ‘심리적 독립’은 부모님과의 심리적인 분리 상태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부모님들끼리 부부싸움을 할 경우, 자녀인 우리가 걱정되고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부모님들의 부부싸움에 계속해서 관여하게 되면 여러분들도 경험했듯이, 정서적으로 매우 힘들 것이다. 부모님들의 부부싸움은 부모님들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많은 부모님은 부부싸움에 자녀들을 함께 참여시킨다.
“○○아 이리 와봐. 이런 상황에서 아빠가 맞니? 엄마가 맞니?”
이러한 행동을 심리학적 용어로는 ‘삼각관계’라고 표현을 하는데,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문제는 더 깊어질 뿐이다. 따라서 자녀들은 쉽지 않겠지만, 부모님들의 문제는 부모님들께서 해결할 수 있도록 거리를 두어야 한다. 또 다른 의미의 심리적인 독립은 부모님과 떨어져서 혼자 지낼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부모님과 떨어져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으면서 부모님이 보고 싶으면 자연스럽게 왕래를 하는 상태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30살이 넘어서도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지 못하고, 어떤 일이든지 부모님과 함께해야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만큼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줄어든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심리적인 독립’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 p.33~35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어떤 것도 그러하듯이 우리가 어떠한 것을 얻고자 한다면 그 얻고자 하는 것의 정의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행복을 바라지만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한다. 여러분들에게도 묻겠다. ‘행복’이 무엇인가?
여러분들에게서 다양한 답이 나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어사전에서 이야기하는 ‘행복’의 정의를 보자. NAVER 국어사전에 행복을 검색하면 이와 같은 정의가 나온다. [1. 복된 좋은 운수. 2.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행복은 ‘1. 복된 좋은 운수’보다는 ‘2.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이다.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은가? 행복은 기분이 좋은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가 고작 기분이 좋은 상태를 위해 살고 있다고?”라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우리들이 하는 모든 행동은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서 한다. 우리들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럼, 어차피 기분이 좋아지고자 하는 것이 인생이니까 막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되겠네요?”라는 청소년이 있을지 모르겠다. 뭐, 그러한 마음이 들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주변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게 된다.
예를 들어서, 내가 내 기분을 좋아지게 한다고 집안을 마음껏 어지르면 어떻게 되겠는가? 부모님의 행복도가 떨어진다. 마찬가지로 내가 내 기분을 좋아지게 한다고 물건을 훔치면 어떻게 되겠는가?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의 행복도가 떨어질뿐더러, 나중에 행복도가 떨어진 채로 교도소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행복해지는 것’은 간단해 보이지만, 간단하지 않다. --- p.84~85
동물의 이러한 습성을 이용해 서커스 단원들은 코끼리를 같은 방법으로 훈련시킨다. 코끼리가 태어나면 새끼 코끼리 때, 발목에 쇠사슬을 묶어놓는다. 물론, 새끼 코끼리는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친다. 그러나 쇠사슬은 풀리지 않고, 계속된 실패경험이 쌓인 채 도망가기를 포기한다. 그리고 이 코끼리가 어른이 되었을 때에는 이 쇠사슬을 충분히 풀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코끼리는 도망가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들 중에 이러한 개나 코끼리처럼 ‘나는 발버둥쳐봐야 소용이 없어. 나는 희망이 없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그 마음을 위로하고 싶다. 청소년기 시절 저자도 그러했다.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겐 희망이 없어 보였다. 이럴 때 나에게 도움을 준 것이 심리학이었다. 그리고 특히나 나에게 도움을 준 심리학은 상담심리학이었다.
나는 청소년기 시절에 상담을 잘 몰라서 심리학 서적으로 나의 마음을 달래곤 했었지만, 대학교 심리학과에 진학해서는 상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상담을 통해서 혼자 끙끙 앓던 문제들을 상담 선생님과 나누면서 많이 내려놓을 수 있었고, 많은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대학원 시절에 상담을 많이 받았었는데 만약, 이 시절 상담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을까 싶다. 그래서 앞에서도 계속 이야기했지만 여러분들도 기회가 된다면 상담을 꼭 받아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 p.153~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