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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선행의 한글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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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선행의 한글아리랑

: ‘타슈켄트1 세종학당장’의 우즈베키스탄 한국어교육 30년 기록 199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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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5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492쪽 | 128*188*34mm
ISBN13 9791196576455
ISBN10 1196576459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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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허선행 프로필 … 005p

1965 전남 나주 출생
1992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국민윤리교육과 졸업

1994-2001 타슈켄트 한국교육원 한국어 교사
1996-1997 세계경제외교대학교 한국어 교사
1997-2001 타슈켄트 국립니자미사범대 한국어과 교사
2002-2004 우즈베스탄 한인회 한인일보 편집국장
2006-2008 러시아어판 한국어 교재 현지 집필책임자
2001-2010 우즈베키스탄 세계언어대학교 한국어 교사
2012-2020 제19-21대 총선 및 제17-20대 대선 우즈벡 재외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2013-2019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우즈베키스탄 지회장
1992-현재 타슈켄트 세종한글학교 교장 / 타슈켄트1 세종학당 학당장
2019-현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중앙아시아협의회 회장

1994 대한민국 교육부 장관 감사장 수상
2004 대한민국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감사장 수상
2005 제1회 자랑스러운 한국교민상 수상
2007 제1회 세계한인의 날 국민포장 수훈
2010 민주평통 대통령 표창 수상
2013 한글날 한글발전 유공자 대통령 표창 수상
2021 민주평통 유공자 훈장 수훈

작가의 말 … 007p

제1장 │ 들며

#01_ 2021년 12월 :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023p
#02_ 2022년 1월 : 광주광역시 월곡동 고려인마을 … 037p

제2장 │ 미지의 땅, 우즈베키스탄
1992년 3월 8일 아침, 타슈켄트국제공항 … 049p
오랜 꿈의 첫 출발 … 064p
최 스베틀라나 교장의 원대한 꿈 … 084p
알말릭 출강 … 094p
강력한 맞수 … 107p
양국 간 첫 정상회담 … 117p
지진 공포 … 126p

제3장 │ 세종, 납시다
타슈켄트 세종한글학교 … 139p
변화의 물결 … 156p
첫 한국어능력시험 … 171p
앗살라무 알라이쿰 Assalamu alaykum … 188p
가르쿠샤 안나 Garkusha Anna … 201p

제4장 │ 한글, 한류를 빚다
교민일보 편집국장 … 225p
한글아리랑 4중주 … 236p
대장금 신드롬 … 251p
자랑스러운 전남대인 … 261p
국민포장 수훈 … 271p
러시아어판 첫 교재 개발자로 발탁 … 285p

제5장 │ 타슈켄트 세종로
‘나’와 ‘그’ … 299p
타슈켄트1 세종학당 … 309p
중앙아시아 성균한글백일장 … 327p
한류 1번지 … 341p
제1회 타슈켄트 국제도서전 … 353p
국민훈장과 1992년생 박지향 … 367p

제6장 │ 나가며
재회 … 387p
함께 걷는 사람들① … 396p
함께 걷는 사람들② … 407p
편린 … 419p
헌사 … 430p

Book in Book | 러시아어판 요약본 … 445p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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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30년을 기록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이력서(履歷書)의 한자 ‘이’는 ‘신발 이(履)’다. 즉 ‘발의 내력’이 이력서다. 그가 30년 동안 걸어온 ‘발의 내력’을 통해 ‘우리 한글이 세계로 어떻게 걸어 나아갔는가’를 조명하고자 노력했다.
그가 떠난 길을 따라 한국국제협력단(KOICA) 소속 해외 교육봉사자들이 또 다른 ‘발의 내력’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가 가르친 제자들과 코이카 선생들의 제자들이 현지에서 또 다른 ‘꿈의 언어’를 확장했다. 옛 소련 지역인 CIS 국가들에선 고려인들이 모국어 공동체의 영역을 넓혀 갔다.
--- p.9 「작가의 말」 중에서

‘광주한글학교 개교 30주년 기획전’은 이번 전시를 통해 광주 전남 지역 인사들이 광주일보사를 중심으로 기금을 모아 1991년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3개국에 한글학교를 건립했다고 소개했다.
전시 자료에 따르면, 이들 한글학교는 모두 고려인들을 위한 모국어 교육기관으로 설립됐다. 당시 광주·전남 지역 인사들은 러시아 지역의 경우 하바롭스크와 이르쿠츠크에, 카자흐스탄엔 당시 수도였던 알마아타와 우슈토베에,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에는 수도 타슈켄트와 고려인 밀집 지역인 알말릭에 각각 한글학교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 한글학교에서 고려인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칠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했다.
--- p.41

벌써 30분이 넘었다. 하지만 아직도 타슈켄트국제공항의 수하물 컨베이어벨트는 요지부동으로 멈춰 있다. 도대체 언제쯤에나 움직일까? 집하장을 서성이는 승객 대부분은 이 지역 사람들이거나 러시아인들이었다. 유럽인들도 일부 있었지만 동양인은 이들 세 사람이 전부였다. 한국과 수교를 맺은 게 불과 40일 전쯤이었다. 대한민국 여권에 우즈베키스탄 입국 스탬프를 찍은 사람이 거의 없었던 양국 관계의 초창기였다.
--- p.58

“안녕하세요? 즈드랏스부이쩨. 저는 대한민국에서 온 허선행입니다.”
마침내 첫 수업이 시작됐다. 그는 미리 준비했던 말로 자기소개를 한 뒤 학생들을 천천히 둘러봤다. 모두가 고려인으로 스무 명쯤 되는 학생들은 연령층이 다양했다. 10대와 20대로 보이는 여학생과 남학생이 있는가 하면, 40대와 50대도 있었고, 60대 이상의 어르신도 눈에 띄어 그는 교생실습 때와는 사뭇 다른 교실 분위기에 압도됐다.
--- p.65

사실 그가 여기까지 오는 데는 많은 고통이 따랐다. 갈등과 번민의 시간을 거쳐 결단에 이르기까지, 또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을 설득하고 신변 정리를 하기까지, 그리고 자식 고집을 어떻게 꺾으랴, 한숨을 내쉬며 아버지가 자신의 몫으로 물려준 재 너머 한 뼘 밭을 팔아 여비와 일 년치 생활비를 마련해 주신 어머님에 대한 감사와 불효자가 된 아픔에 이르기까지……. 다난했던 지난 몇 개월의 과정을 몇 마디로 표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 p.75

충격이었다. 급기야 우슈토베 광주한글학교마저 문을 닫았다. 하바롭스크 한글학교와 알말릭 한글학교에 이어 세 번째였다. 러시아의 하바롭스크 한글학교는 1991년 8월 개교와 함께 제대로 시작도 못 해보고 문을 닫았다. 그가 많은 애정을 쏟았던 알말릭 한글학교 또한 우여곡절 끝에 1993년 10월 학생들과 작별했다. 이어 1995년 7월 카자흐스탄의 우슈토베 한글학교까지 사라지자 그는 한 달 내내 안타까운 마음이 가실 줄을 몰랐다.
--- p.139

1997년. 한국어능력시험이 최초로 실시됐다. 한국 거주 외국인들과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중국, 일본 등 4개국 국적자들을 대상으로 한 첫 시험이었다. 시험을 주관한 한국 교육부는 첫 시험결과를 종합 평가해서 향후 한국어 학습수요가 많은 동남아와 중남미 등으로 대상국가와 시행횟수를 늘릴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 p.171

말하자면, 지금 자신이 와 있는, 그래서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 2년 전 세종한글학교로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출발하자고 다짐했던 바로 그 ‘타슈켄트’에서, 다른 도시도 아닌 바로 그 ‘타슈켄트’ 도심 한복판에서 열린 유네스코 회의에서 훈민정음이 ‘세계기록 유산’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이라 그의 감동은 더욱 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 p.184

1996년 대우자동차 공장 준공, 1997년 아시아나항공 취항, 1998년 삼성 가전공장 본격 가동 등 굵직한 경제교류사가 매년 새롭게 씌어졌다. 그와 비례해 우즈베키스탄 젊은이들의 코리안 드림 열기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들의 첫 출발은 한국어 공부였다. 대학의 한국어과 입시 경쟁률이 점차 높아졌고, 덩달아 한국교육원과 세종한글학교의 수강신청도 급증했다. 특히 우즈베키스탄 학생들의 초급반 신청이 많아 고려인 위주였던 교실 문화에 여러 변화가 나타났다.
--- p.188~189

‘광복 50주년과 한글 세계화라…….’
그는 둘의 어울림이 뜻깊다고 생각했다. 광복과 한글이 어울렸고, 50주년과 세계화가 또 다른 조화를 이루었다. 광복은 한글의 부활을 의미했고, 50년은 변방에서 중심으로 나아가고자 노력했던 인고의 세월을 의미했다. 그 시간 속에 88서울올림픽이 있었고, 소비에트연방의 해체가 있었고, 고려인과의 재회가 있었고, 자신의 현재까지 녹아 들어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이 같은 의미를 일깨워준 선배의 편지가 더욱 고맙기만 했다.
--- p.198~199

‘겨울연가’가 뿌린 한류 바람은 한국가전의 상승 몰이로 나타났다. 이 나라 젊은 사람들의 꿈은 이제 대우자동차로 귀가해서 LG 에어컨을 틀어놓고 삼성TV에서 방영되는 한국 드라마를 시청한 뒤 최지우(정유진 역)의 더플코트를 선물하거나 입고 싶은 것으로 흘러갔다. 결과적으로 삼성의 마케팅 전략은 주효했다.
덕분에 세종한글학교에도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우즈베키스탄 학생들의 전화문의가 빗발쳤다. 또한 한국어능력시험에도 좋은 영향을 미쳐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2004년도 시험에서 응시생 숫자가 무려 23%나 늘어났다. 이는 CIS 국가 중 가장 높은 비율이었다.
--- p.238~239

‘우리 한글은 어떻게 세계로 걸어 나갔는가?’
그는 먼저 제목부터 썼다. 한글날을 맞아 한국 언론매체에 기고할 글이었다. 사범대 후배의 부탁으로 원고지 앞에 앉은 그는 ‘한글아리랑 4중주’라는 부제를 붙이기로 했다. 한류 바람의 성공 요인은 어느 특정 주체만의 뛰어난 능력 덕분이 아니었다. 지구촌 시청자를 제대로 겨냥한 제작진이 있었고, 이의 보급을 도운 기업들이 있었고,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고려인들이 있었고, 해외 공관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한글이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중앙아시아로 나아가는 데는 고려인들의 역할이 컸다. 또 현지에 진출한 기업체들과 대사관의 역할이 있었고, 한국문화와 한국어를 따뜻하게 품어 준 친한파 현지인들의 도움 또한 중요했다. 그리고 교육원과 코이카 봉사단원 등 이국까지 와서 한글을 보급하고자 노력한 교사들의 역할도 소중했다.
--- p.240~241

“외교통상부가 주관한 3,500여 개의 전 세계 한글교육기관 평가에서 1등을 했습니다. 이번 제1회 세계 한인의 날을 맞아 국민훈장이나 국민포장이 상신될 것 같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재외동포재단으로부터 이 같은 연락을 받았을 때만 해도 그는 반신반의했다. 물론 그동안 열심히는 해왔다. 오직 학교 운영에만 매달렸다. 아내의 수입으로 생계를 꾸렸다. 가장으로서는 상장은커녕 반성문만 잔뜩 써야 될 영점 남편이자 빵점 아빠였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어디 자신뿐이겠는가?
--- p.274

이헌태 원장은 그가 세상과 조금만 타협했어도 편하게 살 수 있었다고 했다. 한국으로 시집오는 여성들이 많았을 때라고 했다.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그들 중 상당수가 세종학당을 찾을 때였다. 그러니 결혼정보회사를 차렸어도 큰돈을 벌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런 일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고 했다. 또 유학생을 유치하려는 한국 대학들의 유혹도 많았을 텐데 그런 것 역시 단칼에 거부한 일화를 여럿 알고 있다고 했다.
--- p.305

“허선행 학당장님의 우즈베키스탄 30년 업적 중 가장 강렬한 업적이 아마도 성균한글백일장의 성과일 겁니다. 제가 있는 AUT는 이공계 대학인데, 그럼에도 이 행사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이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성균한글백일장은 이제 가장 큰 규모의 중앙아시아 한글축제가 됐고, 중국이나 일본 같은 다른 나라에서도 이를 벤치마킹하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타슈켄트 아주대학교(AUT)의 박상우 교수는 김우중 대우 회장이 한때 ‘대우베키스탄’을 만들었다면 이명학 교수와 허선행 학당장은 중앙아시아에 ‘세종스탄’을 건설한 중요한 인물로 기록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 p.335

우즈베키스탄에는 아직 한국문화원이 없다. 그런 점에서 타슈켄트1 세종학당의 한국문화 프로그램은 고려인 청년들과 이 나라의 젊은이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한 나라의 언어를 배우려면 그 나라의 문화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 한국어를 공부하러 오는 학생들도 그 점을 잘 안다.
--- p.347~348

한편 이 시기 한인사회도 큰 규모로 발전했다. 우즈베키스탄에 진출한 우리 기업체 수가 900개를 넘어섰다. 우리 기업들의 우즈베키스탄 누적 투자액도 70억 달러를 상회했다.(이상 2021년 말 기준) 1995년의 1억 달러 규모에서 26년 동안 70배 이상 성장한 수치였다. 한인회원 수도 3천 명으로 늘어났다. 한인회가 결성되던 2000년 당시보다 3배 이상의 규모였다.
우즈베키스탄 인구도 3천 5백만 명 시대를 맞았다. 그가 처음 왔을 때는 2천만 명 정도였다. 그 사이 1천 5백만 명이 늘어 중앙아시아 최대 인구수가 됐다. 여전히 다산의 가치를 추구하는 이슬람 국가의 특성상 인구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 p.361

그의 업무 공간인 ‘학당장실’은 30년 전 그가 처음 왔을 때 숙소로 썼던 그 방이다. 당시 그는 이 방을 ‘관사’로 불렀다. ‘관사’가 ‘학당장실’로 바뀌면서 그가 누웠던 자리에는 대형 책상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가 식사하던 자리는 조그만 탁자 1개와 의자 2개를 들여 응접실(?)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지금 이대로가 좋았다. 추억이 가득한 공간이라 이 방에 들어설 때면 늘 27세의 청년 허선행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때론 천장 얼룩 지도를 바라보며 영산강과 봉황천을 그리던 자신의 옛 모습을 만날 수도 있었다.
--- p.390

‘고려인의꿈’은 앞에서도 소개했듯 한영수 이사장과 외교부의 구광일 서기관, 그리고 허선행 학당장의 합작품으로 출범해 지난 10년 동안 훌륭한 성과를 냈다. 그사이 1,800명의 중앙아시아 고려인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고, 2017년부터 2019년까지는 중앙아시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백일장’도 개최했다. 2020년과 2021년은 코로나-19로 행사가 취소돼 아쉬웠다.
--- p.408

제자들과 함께했던 그의 30년 세월 속엔 기쁜 일도 많았다. 몇 년 전에는 한국으로 가던 비행기에서 제자를 만났다. 스튜어디스로 취직한 제자였다. 마침 아내와 함께 가던 길이었다. 비행 내내 제자로부터 특별 서비스가 이어졌다. 평생 고생만 시켰던 아내에게 체면이 서는 것 같아 고마웠다.
--- p.422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우리 한글은 어떻게 세계로 뻗어 나아갔는가?

1992년, 사범대 졸업 직후 27세의 나이로
고려인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미지의 땅’으로 떠났던
해외 자원 1세대 한국어 교사의 30년 인물 기록집



1992년 3월, 전남대 사범대 졸업 직후 은사의 권유로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났던 한 인물의 30년 기록을 통해 ‘한글 세계화’의 과정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직조한 책이다.

당시 27세였던 청년은 이제 57세의 중년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지구촌 변방의 언어였던 한국어는 세계 중심의 언어로 바짝 다가서며 ‘꿈(Korean dream)의 언어’로 확장됐다. 그가 떠났던 길을 따라 KOICA 교사들이 미지의 땅으로 파견됐고, 30년 동안 그가 가르친 8,000명가량의 제자들 중 상당수가 한국어 교사가 되어 ‘한글 세계화’의 토대를 만들었다.

‘허선행’이란 인물을 중심으로, 고려인의 디아스포라 역사와 한-우즈벡 수교 30년 발전사, 현지 한인사회 형성사 등을 밀도 있게 다루면서 중앙아시아 한류 열풍과 현지 청년들의 한국어 학습 열기 등도 자세히 담아냄으로써 ‘제2의 허선행’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하는 책이다.


한글아리랑 4중주

책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 ‘월곡 고려인문화관 결’에서 열리고 있는 ‘광주한글학교 개교 30주년 기획전’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행사는 1991년 광주·전남 지역 인사들이 십시일반 기금을 모아 옛 소련 지역에 한글학교 6곳을 만들었던 기록전이다.

세월이 갈수록 모국어를 잃어가고 있는 현지 고려인들에게 한글과 한국문화를 복원시켜 주기 위해 설립된 이 한글학교들은 그러나 자금 지원이 중단되며 1998년 이전에 모두 문을 닫았다. 그중 한 곳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아 이 특별전의 의미를 빛나게 했다. 바로 그곳이 이번 책의 주인공인 허선행이 운영하는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1 세종학당’이다.

이렇듯 ‘모국어 공동체의 확장’과 ‘한글 세계화’에는 먼저 민간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있었다. 당시 전남대 사범대 졸업반이던 청년 허선행은 옛 소련 지역으로 들어가서 한국어 보급을 위해 헌신할 자원봉사자를 찾는다는 말을 듣고 교사 발령 직전, ‘가지 않은 길’을 택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났다. 급여 한 푼 없고, 생활비 보조는 물론 현지로 가는 항공권조차 자신이 부담해야 했던 험난한 길이었다.


사실 그가 여기까지 오는 데는 많은 고통이 따랐다. 갈등과 번민의 시간을 거쳐 결단에 이르기까지, 또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을 설득하고 신변 정리를 하기까지, 그리고 자식 고집을 어떻게 꺾으랴, 한숨을 내쉬며 아버지가 자신의 몫으로 물려준 재 너머 한 뼘 밭을 팔아 여비와 일 년치 생활비를 마련해 주신 어머님에 대한 감사와 불효자가 된 아픔에 이르기까지……. 다난했던 지난 몇 개월의 과정을 몇 마디로 표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 75p


책은 국내 지식인들의 이 같은 기금 마련과 열혈 청년들의 자원 봉사로 시작된 ‘한글의 세계화’ 과정을 다루면서, 현지 한인사회 및 고려인 사회의 역할과 대사관을 중심으로 펼친 정부의 역할, 그리고 대우자동차 등 현지에 진출한 기업들의 역할이 모국어 공동체의 확장은 물론 ‘한글 한류’를 빚어내는데 있어 매우 중요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이를 ‘한글 아리랑 4중주’라고 표현했다.


한국어능력시험 첫 대상국,
훈민정음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유네스코 회의 개최지, 우즈베키스탄


1997년 한국어능력시험(TOPIK)이 처음 실시됐다. 또 같은 해에는 훈민정음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한글 세계화’와 관련 기념비적인 이 두 가지 역사적인 사안과 우즈베키스탄은 모두 깊은 관계가 있다. 첫 한국어능력시험 해외 대상국은 일본과 중국,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4곳뿐이었다. 그리고 훈민정음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결정한 유네스코 회의가 열렸던 곳도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였다.

책은 허선행이 우즈베키스탄 체류 5년 만에 현지에서 직접 접한 이 두 사안의 감동을 깊이 조명하며, 이 시기와 맞물려 대우자동차가 진출하고(1996), 아시아나항공 직항편이 개설되고(1997), 삼성 가전공장이 본격 가동되는(1998) 과정 속에서 고려인들의 모국어 복원 차원을 넘어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현지 청년들에게도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게 되는 여정을 심도 있게 풀어간다.

또 주인공 허선행이 심각한 생활고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속에서도 ‘번역 일’과 ‘교민신문 편집국장’, ‘대학 출강’, ‘현지 기업체 한국어 연수’ 등 1인 5역의 역할을 통해 어떻게든 한글학교를 유지하고자 하는 열정을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많은 감동을 주고 있다.


아리랑요양원의 기초를 세운 이헌태 초대원장은 그가 세상과 조금만 타협했어도 편하게 살 수 있었다고 했다. 한국으로 시집오는 여성들이 많았을 때라고 했다.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그들 중 상당수가 세종학당을 찾을 때였다. 그러니 결혼정보회사를 차렸어도 큰돈을 벌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런 일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고 했다. 또 유학생을 유치하려는 한국 대학들의 유혹도 많았을 텐데 그런 것 역시 단칼에 거부한 일화를 여럿 알고 있다고 했다.…… 305p



CIS 지역 첫 러시아어 판 한국어 교재 개발자로 발탁

허선행은 2006년 장원창 타슈켄트 교육원 부원장, 남 빅토르 국립니자미사범대 교수 등과 함께 교육부로부터 CIS 지역에서 사용할 첫 러시아어 판 한국어 교재 개발자로 발탁됐다. 책은 교재를 개발하는 과정과 교재에 대한 CIS 지역 한국어 교사들의 호평, 그리고 초급에서 시작해 중급과 고급 교재까지 개발해 나가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사료적인 가치까지 지닌다.

또 허선행이 현지에서 관심을 갖고 지켜본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 사업의 진행 과정과 남북 관계의 긴장 국면 속에서 멈춰 있는 안타까움을 담아내고 있는가 하면, 우즈베키스탄에서 만난 북한식당 사장과의 우정 및 탈북자 사업가와의 깊은 인연 등을 소개하며 통일에 대한 열망과 모국어 공동체의 완전한 복원을 꿈꾸는 허선행의 간절한 소망을 묘사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문화원이 개설돼 있지 않은 우즈베키스탄에서 그의 한글학교가 한류 1번지로 기능하며 활동하는 ‘한복체험 및 떡국체험’(1월 설날), ‘한국문화 축제’(6월), 세종학당재단이 후원하는 ‘세종문화아카데미’(7월), 추석 민속축제(9월), 중앙아시아 성균한글백일장 등의 한국어백일장(10월), ‘세종학당 한마음 체육대회’(10월), ‘김치축제’(11월), ‘세종문화의 밤’(12월) 행사 등에 대해서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1호 기록 유난히 많은 인물
국민포장과 국민훈장 수훈도


허선행에게는 ‘1호’라는 별칭이 많이 붙는다. 먼저 1992년 우즈베키스탄과의 수교(1월 29일) 이후 첫 입국한(3월 8일) 현지 교민 1호다. 또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떠난 제1호 해외 자원봉사 한국어 교사이자 우즈베키스탄 한인회가 수여하는 제1회 ‘자랑스러운 한국교민상’ 수상자다.

이밖에도 제1회 ‘세계한인의 날’을 맞아 한글 세계화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포장을 받는 영예를 누렸는가 하면, 대한민국 교육부가 위촉한 러시아어판 첫 한국어 교재 개발자로 발탁된 1호 기록도 갖고 있다.

이번 책을 쓴 조철현 작가는 허선행(許先行)의 외길 30년을 ‘선행(先行)의 선행(善行)’이라고 표현했다. 그 선행(先行)의 결과로 2007년에는 대한민국 외교부가 주관한 전 세계 3,500개 한글학교 평가에서 당당하게 1등을 차지해 ‘제1회 세계한인의 날’을 맞아 국민포장을 수훈했다. 그리고 ‘한글발전 유공자’(2013)로 대통령 표창을 받는 등 두 차례의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고, 2021년도에는 ‘평화 번영의 한반도 기반 조성’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27세의 젊은 나이로 시작한 허선행의 ‘외길’은 실로 외롭고도 험난했다. 하지만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우즈베키스탄의 한인사회가 그를 돕기 시작했고, 전라남도 지방의회 및 경기도 등의 지방자치단체들과 여러 NGO들이 그의 선행(善行)을 알아주기 시작했다.

특히 그 과정에서 전남 보성군청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타슈켄트 한글학교 사랑회’(회장 허호행)와 장학재단 ‘고려인의 꿈’(이사장 한영수), 퇴직 교사들과 현직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한글사랑샘’(회장 고선옥) 같은 단체들은 지속적으로 그의 한글학교를 지원하고 있어 책을 통해 이 같은 따뜻한 기록들을 보는 감동 또한 크다.

책은 또 그에 대한 제자들의 존경심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 한국기업에 취직한 뒤 첫 월급을 탔다고 찾아오는 제자들이며, 매년 스승의 날이면 꽃다발을 들고 찾아오는 수많은 제자들이며, 한국으로 유학 와서 ‘스승에 대한 기사’를 꼬박꼬박 찾아 보내주는 제자들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그가 배출한 8,000명의 제자들은 모두가 30년 외길을 걷고 있는 그에게 있어 ‘피로회복제’이고 ‘비타민’이고, ‘활력 영양제’들이다.


제자들과 함께했던 그의 30년 세월 속엔 기쁜 일도 많았다. 몇 년 전에는 한국으로 가던 비행기에서 제자를 만났다. 스튜어디스로 취직한 제자였다. 마침 아내와 함께 가던 길이었다. 비행 내내 제자로부터 특별 서비스가 이어졌다. 평생 고생만 시켰던 아내에게 체면이 서는 것 같아 고마웠다.…… 422p


5월 14일과 15일 광주와 서울에서 출판기념회
5월 17일엔 중앙대 대학원 특강도


이번 책의 출판을 기념하며 그동안 그의 한글학교를 후원했던 단체들이 그를 한국으로 초청했다. 5월 14일엔 이번 책의 첫 머리를 장식한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귀향 인사를 겸한 출판기념회를 열고, 15일 세종대왕 탄신일 겸 스승의 날을 맞아서는 한국에 나와 있는 그의 제자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서울 종로구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북콘서트를 개최한다. 그리고 5월 17일엔 방현석 중대 문창과 교수의 초청으로 중앙대 대학원 수업 시간을 통해 ‘우리 한글은 세계로 어떻게 걸어 나아갔는가?’를 주제로 특강을 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허선행의 한글아리랑》의 책 표지 글씨는 캘리그래피 1세대인 이상현이 재능기부로 썼다. 영화 ‘타짜’와 드라마 ‘해를 품은 달’, 구글의 ‘한글로고’ 등을 쓴 국내 최고 수준의 손글씨 작가 이상현은 ‘한글에 표정을 입히고, 감성이란 옷을 입히는 작가’라는 말로 자신의 캘리 23년을 소개했다.

허선행 역시 ‘한글에 희망을 입히고, 가능성이란 날개옷을 입히는 교사’라고 자신의 역할론을 정리한다. 둘의 만남이 잘 어우러져 빚어낸 ‘책의 표지’ 글씨가 ‘우리 한글의 세계화’를 제대로 상징했다는 평가라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번 책을 펴낸 도서출판 라운더바우트는 이번 책의 판매 수익금 10%를 타슈켄트1 세종학당의 발전기금으로 기부한다. 특히 출판사 측은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수교 30주년과 중앙아시아 고려인 정주 85주년을 맞아 이번 책을 출판한 기념으로 판매 수익금과 별개로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 지원을 약속해 《허선행의 한글아리랑》에 대한 출간 의의를 더욱 뜻깊게 하고 있다.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허선행 학당장님의 30년 여정은 바로 우리 우즈베키스탄 한인사회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평생 한글 보급과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공헌하신 허 학당장님의 삶을 배워가고 싶습니다.
- 김희상 (주우즈베키스탄 대한민국 대사)
학당장님과는 1997년 니자미사범대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로 처음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상담자로, 때로는 한국어교육 분야의 동료로 관계해 왔습니다. 학당장님은 숱한 고통 속에서도 오직 학생들만을 바라보고 걸어왔습니다. 그 30년 역사를 담은 책이 출간돼 매우 기쁩니다.
- 남 빅토르 (타슈켄트 부천대학교 총장)
프로스트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언젠가 숲에서 두 갈래 길을 만났을 때 사람들이 잘 가지 않은 길을 갔었노라고. 그래서 모든 게 달라졌다’고. 한국과 우즈벡 교류의 머릿돌을 세운 그가 있었기에 양국 발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그의 선구자적 길은 진행 중이다.
- 유병욱 (순천향대 국제교류처장·국제진료센터장)
열정청년 허선행은 한국어로 우즈베키스탄 동포들의 가슴에 고국을 환기하는 희망의 씨앗을 심었다. 늘 새롭게 가꾸고 다듬은 세종학당은 타슈켄트 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한국어학교로 자리 잡았다. 희생과 인내로 버무려진 30년 세월은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표상이 되었다.
- 고선옥 (한글사랑샘 회장)
코로나-19 등 여러 사정으로 한동안 못 갔던 칸영화제를 5년 만에 다시 찾는다. 아마도 이번 영화제에서는, 부탄 최초의 2022년 아카데미상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작 ‘교실 안의 야크’ 같은 영화들이 한층 더 내 관심을 끌 것 같다. 칸으로 향하기 전 읽은 『허선행의 한글아리랑』에서, 그 감동의 영화 속 ‘외딴 벽지학교 교사 유겐’과 그의 제자들 모습이 적잖이 겹쳐져서다.
- 전찬일 (영화평론가·문화콘텐츠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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