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곧 진리요, 진리가 곧 아름다움이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또한 알아야 할 전부다.
-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 _ 시인 키츠Keats -
우리는 -진리, 순수, 신앙심, 최고의 선 등과 같이- 초월적인 의미의 아름다움에 찬양을 아끼지 않지만,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외관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타고난 사람들은 언제나 특별한 관심을 받고, 때로는 숭배나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잘생긴 사람들이 누리는 불공평한 이익과 못생긴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지독한 불이익을 두고 불평이 끊이지 않는다.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현대적인'관점이 나타난 것은 근래의 일이다. 이 관점의 등장으로, 아름다움은 성적 매력을 포함하지만 더 이상 성적 대상과 직결 되지 않는 신체적 특성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지위와 부는 여전히 사람을 판단하는 주요 기준이지만 이제 ‘아름다움'은 지위나 부와 동등한 가치를 지니는 독립적인 특성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 책 「미모의 역사」는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신체적인 아름다움을 통해 행사되고 있는 힘의 본질과 크기를 밝히고, 매력 있는 외모가 그렇지 못한 외모와 비교할 때 공적인 영역에서든 사적인 영역에서든 얼마나 중요한지를 파악한다. 플라톤과 아우구스티스등 철학자들이 바라본 인간의 아름다움에서 출발하여 왕과 그들의 아름다운 정부들, 미모를 통해 성을 파는 고급 매춘부, 세기의 미남과 미녀 배우들, 위대한 정치가들 등 외모가 성공과 실패에, 그들의 운명에, 군주나 정치가의 경우 그들과 관계된 다른 이들의 운명에, 또 평범한 사람들의 경우 부와 사회적 출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추적한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플라톤과 아우구스티누스
플라톤은 신의 아름다움이 ‘퇴색’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아름다움을 무색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영혼의 고귀한 아름다움과 육체의 유혹적인 아름다움 사이의 차이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매력적인 상대를 소유하고 이를 도덕적으로 설명하려는 욕구도 적지 않게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육체를 껍데기와 뼈대로 보았다. 실제로 그는 이런 문화의 형성 및 전파에 있어서 대리인 역할을 했다. 특히 인간의 아름다움에 관한 논의 에서는 더욱 그랬다. 그는 인간의 육체를 ‘단지 껍데기일 뿐이며 최후의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계속 썩어간다'고 말했다. 물론 그의 말은 사실이며, 영원과 덧없는 인간의 생을 대조적으로 바라보는 크리스트교적 시각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이런 사실이 인간의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고려 사항이었다. 우리는 짧은 시간 동안 이 세상에 머물러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아름다움이 주는 기쁨도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인정하는 셈이 된다. 아름다움은 영원이 아닌 젊음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왕과 그들의 정부
왕이 스스로의 권한으로 지배권을 갖게 되는 경우에는 왕족의 혈통이 중요했던 반면, 배우자의 경우에는 외교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있느냐에 따라 선택 받을 수 있었다. 왕들은 헨리 8세의 말처럼 결혼에 있어서 -대개 스스로 상대를 선택할 수 있었던- 평민들보다 훨씬 불행했다. 대신 그들은 정부들을 둠으로써 미인에 대한 욕망을 눈에 띄지 않게 충족했다.
퐁파두르 부인은 루이 15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밝은 색의 마차를 타고 정기적으로 사냥을 나가는 그의 행렬의 뒤를 따랐다. 그녀는 파리에서도 같은 수법을 이용하여 극장에서 왕의 눈에 잘 띄는 곳에 앉았다. 1745년 황태자의 결혼 기념으로 가면무도회가 연이어 열리면서 그녀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다. 얼마 후 그녀는 공식 정부로 인정되고 후작부인이라는 칭호도 얻었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20년간, 그녀는 사실상 프랑스의 왕비와 같은 존재로서 국가의 정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처럼 왕들의 수많은 정부들은 그들의 외모를 이용하여 최고의 권력으로 접근했고 죽을 때 까지 영화를 누렸다. 유명한 왕의 정부로는 루이 14세의 몽테스팡 부인과 맹트농 부인, 루이 15세의 퐁파두르 부인과 뒤바리 부인 찰스 2세의 넬 그윈, 캐슬마인 백작부인(바바라 빌리어스)등이 있다.
고급 매춘부들
외모를 이용해 이익을 얻은 모든 여성들과 일부 남성들이 주로 썼던 방법은, 유력한 위치에 있는 사람의 성적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여성이 그렇지 못한 여성에 비해 차지하기 쉬운 직업은 많이 있었지만, 20세기까지만 해도 가장 큰 물질적 이익을 보장해주는 것은 결국 성적 거래였다. 16세기 이탈리아, 특히 베네치아에는 고급 매춘부라는 특별한 성 노동자 계층이 있었다. 국가의 인정 하에 활동하던 그들은 성 접대를 통해 돈을 벌었지만, 동시에 고객에게 교양 있고 지적인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기도 했다. 특히 살롱이 인기를 끌었는데 여주인인 ‘살로니에르' 들은 당대의 주도적인 지식인과 예술가들을 살롱으로 초대하여 접대를 했다. 이들은 전체적으로 보면 빼어나게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그중 몇몇은 비슷한 지성과 재능, 교양을 갖춘 다른 여성들에 비해 매력적이거나 아름다워서 특별한 명성을 얻었다. 17세기 프랑스의 고급매춘부, 니농 드 랑클로는 매춘부이자 살로니에르로서 몰리에르, 베일, 생테브르봉과 파스칼 등 당시에 위대한 지식인들과 친분을 쌓았다. 17세기 파리의 자유주의 및 반권위주의 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며 저술활동을 한 그녀는 크리스티나 여왕에 버금가는 명성을 얻었다.
19세기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아름다운 여성들이 부와 명성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매춘을 해야 했다. 이 시기에는 유명한 고급매춘부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았다. 그 중 다수는 연예계와도 관련을 맺어 명성을 얻었고, 일부는 살롱을 운영하여 명성을 얻었다. 고급 매춘부들의 국적과 사회계급은 점점 다양해졌다. 26명의 가장 유명한 파리의 화류계 미녀들 중 3명은 이탈리아인이었고, 3명은 영국인, 1명은 오스트리아인, 그리고 1명은 러시아인이었다. 고급 매춘부들에 관한 현대의 전문가 케이트 힉먼은 ‘성공한 매춘부들이 모두 그렇듯 남성들이 그녀를 아름답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타고난 재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저자인 아서 마윅은 ‘그녀들의 타고난 재능은 아름다움'이라고 말하고 있다.
외모가 정치인들에게 미치는 영향
'키 큰 자가 승리한다'는 유명한 말은 에이브러햄 링컨이 등장한 시기에 처음 생겨났다. 이 말은 20세기 이후부터 통용되었으며, 키가 작고 외모가 다소 특이한 마이클 듀카키스의 낙선 이후로 유명해졌다. 1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의 역대 25명의 미대통령 가운데 11명에 대해서 ‘키가 크다', ‘체구가 크다' 혹은 ‘180cm 이상'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키가 작고 통통하다', ‘땅딸막하다' ‘몸집이 작다' 등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키의 중요성을 짐작 할 수 있다.
뛰어난 외모가 대세를 결정짓는 요인은 아니지만 외모가 중요한 주제가 된 것은 선거권이 확대되고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케네디가 험프리를 누르고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을 때 언론의 관심은 전적으로 케네디의 아름다운 부인 재키에게 집중 되었다. 케네디와 닉슨이 사상 처음으로 TV 토론에서 대면하고 나서야 잘 생긴 외모의 특별한 매력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TV를 시청한 시청자 집단에서는 케네디가 우세했고 라디오를 들은 청취자 집단에서는 닉슨이 우세했다고 한다. 대통령 취임 후 캐나다를 첫 방문한 당시에도 여전히 대부분의 관심은 영부인의 미모에 쏠려 있었지만, 한 캐나다인은 케네디를 보고 “마치 살아 있는 인형 같다”고 말했다. 케네디의 승리와 그의 활기 넘치는 외모는 아름다움과 성공의 연관성에 힘을 실어주었다.
뛰어난 외모가 일반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고, TV를 통해 안방에서 정치인들을 볼 수 있는 시대인 만큼 그런 매력이 득표로 직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우리는 정치인들이 스캔들을 뿌리고 대중들을 기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결국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능력이다. 그러나 잘생긴 외모가 능력 있게 보이고 자신감 있다는 첫 인상을 심어줄 수 있고 못 생긴 외모가 결점을 더 부각 시킬 수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 외, 외모의 덕을 톡톡히 봤던 대통령으로 키가 193cm에 달했던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친척으로 탁월한 외모 덕에 일찍 정치계에 입문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배우 같은 외모로 37세에 영국 외무부 장관을 지내고 마침내 수상이 된 앤서니 이든 등이 있다.
대중의 관심과 세기의 미남 미녀 배우들
아름다운 여성이 그렇지 못한 여성에 비해 차지하기 쉬운 직업은 많았지만, 20세기까지만 해도 가장 큰 물질적 이익을 보장해 주는 것은 결국 성적 거래였다. 매춘이나 내연 관계, 경우에 따라서는 결혼도 그 안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대중의 찬사를 받는 직업적인 미인들이 등장했고. 현대사회에 이르러, 물론 아름다움이 여전히 그 성적인 자극성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소비자이자 관찰자, 관객인 대중의 호응을 기반으로 하는 아름다움의 상업적 가치는 더 이상 성적 거래에 의존하지 않게 되었다. 사라 베르나르, 그레타 가르보, 매리 픽포드, 루돌프 발렌티노, 비비안 리, 베티 데이비스, 등은 당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스타들로써 대중의 힘을 바탕으로 영화의 전성시대를 열었고, 아름다운 외모는 막대한 부를 가져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1950년대 할리우드 여성스타들은 물론 아름다웠다. 그러나 마릴린 먼로를 제외하면 그들은 미국인들의 이상형과 일치하는 한정된 유형을 따르는 경향이 있었다. 먼로에게 관능적 배우로서 도전장을 내민 사람들은 유럽의 스타들이었다. 먼저 지나 롤로브리지다, 그 다음에 브리지트 바르도가 섹스 심벌로 떠올랐다. 이처럼 새로운 유형의 아름다움을 가진 남녀 배우들이 영화와 상업 광고에 진출함에 따라, 할리우드는 국제적인 영화제작의 이점을 취하게 되었다.
문화의 혁명기이며, 자유분방한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다양한 유형의 아름다움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의료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50년대 말 60년대 초에 성장한 젊은이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건강했다. 훌륭한 골격 구조와 균형 있는 몸매를 타고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질환에 걸릴 가능성도 적어졌다. 따라서 선진사회에서는 미인의 비율이 증가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눈에 띄는 외모보다 건강한 젊음이나 생기로 인해 매력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비율도 증가 했다는 점이다. 당대 젊은이들이 따르던 유행은 타고난 신체적 특성을 보여줬고, 타고난 신체적 결점 또한 무자비하게 드러냈다. 따라서 문화 혁명은 외모를 바라보는 정직하고 투명한 관점을 키워주었다. 가수 비틀즈, 복싱선수 무하마드 알리, 축구선수 조지 베스트, 영화배우 로버트 레드포드, 모델 트위기는 각 분야에서 1960년대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아이콘의 전형이었다.
아름다움은 늘 고유의 특별한 힘을 갖고 있다고 인정되어 왔지만, 아름다움이 내포하는 의미는 전통적인 관습의 존속으로 인해 엄격하게 제한 되어왔다. 기술의 혁신과 종교적 신앙의 약화, 대중사회의 성장으로 이러한 관습은 점점 더 도전을 받게 되었으나,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전통적인 접근은 계속해서 되살아났다. 즉, 역사적으로 이데올로기와 제도, 계급구조, 여성의 역할과 지위 등 많은 것들이 변화했고, 아름다움의 기준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전통적인 견해가 지배적이었지만 아름다움은 인간이 가진 또 하나의 재능으로서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상대적으로 일정'하고 '상대적으로 보편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