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장길산을 처음 시작한 것이 1974년이었고 겨우 완성한 것은 84년이었다. 이 작품을 쓰는 데만 십 년이 걸렸으며, 처음 시작했던 때로부터 이미 삼십 년이 되었으니 한 세대가 흘러간 셈이다.
주위에서는 대하소설 <장길산>이 고증도 꼼꼼하고 당시의 민속과 생활상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어서 조선조를 공부하려면 반드시 참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누구나 한마디씩 하는 것은 젊은 대학생들이 읽기에도 어딘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독서를 많이 하지 않은 대중독자들이나 청소년층은 손쉽게 붙잡고 읽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고 했다. 삼국지 번역을 하면서 어려운 고사성어나 역사적 일화들에 주를 달다가, 장길산에도 마치 이렇게 주를 다는 것처럼 쉬운 안내서나 해설서를 써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생각은 줄거리를 간추리고 어려운 역사적 곁가지들을 쳐낸 장길산의 새로운 각색과 편집의 방향으로 뒤를 잇게 되었다. 청소년들은 우선 장길산과 주변의 등장인물들을 중심으로 기본 뼈대가 되었던 의적 일화들을 재미있게 읽게 될 것이며, 나중에는 더 깊은 의미와 사료가 풍부한 원본 장길산을 찾아보게 될 것이다. 나는 벌써 몇 해 전부터 청소년을 위한 장길산을 다시 쓰리라 기획은 해놓고도 다른 일거리에 쫓기느라고 미처 끝내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도 해를 넘길 수는 없어서 일약 용맹정진하여 끝을 맺었다.
나도 어려서는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등속의 중국 고전들을 보았지만 못내 아쉬웠던 것은 우리네 역사를 다룬 본격적인 고전들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부족했던 점이었다. 특히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아도 궁중과 왕후장상들의 음모와 암투를 그린 것들만 많고, 일반 백성들의 일상생활을 그린 이야기들은 매우 드물었다.
외국 어린이물의 홍수 속에서 장길산은 먼저 자기 안에 ‘나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정체성을 자리잡게 하는데 큰 도움을 주리라고 확신한다.
‘백성은 하늘과도 같다’는 옛말은 지금도 하늘빛이 푸르듯 생생하게 살아 있는 말이다. 오늘의 청소년들은 내일의 민주시민이며 그들이 만들어가야 할 역사가 바로 우리 후손들이 사람답게 살아갈 미래이기도 하다. 나는 어린 벗들이 스스로 자기의 운명을 굳세게 개척하며 창조적으로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