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의 대표적 교육 종합월간잡지
조선교육회는 1902년에 결성된 경성교육회를 모체로 1910년 12월에 조직된 교육단체다. 1915년 조선교육연구회로 축소 개편되었다가 1922년 조선교육령이 개정되면서 이듬해 다시 조선교육회로 확대되었다. 조선교육회는 총독부의 학무국 내에 본회를 두고 각 도교육위원회를 지회로 두었으며, 그 밑에 각 府?郡?島교육회를 분회로 설치하였다. 본회의 임원은 회장, 부회장, 평의원 및 간사를 두었다. 역대회장은 정무총감이 맡았고 부회장 2인을 두었는데 학무국장과 조선인이 각각 맡았다.
『文敎の朝鮮』은 일본어로 발행된 월간 종합잡지로 1925년 9월호부터 1945년 1월호까지 총 229호가 발행되었다. 창간호가 나온 이래 1 차례의 휴간(1943년 3월)과 3차례의 합병호를 제외하고 20년 동안 간행되었다. 휴간과 합병호 발행은 전시통제기 배급용지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현상은 발행면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처음에 150쪽에서 200쪽 정도의 분량이 1941년 이후에는 대폭 축소되어 30쪽에서 50쪽 가량 되었다. 그러나 발행부수는 1930년 13,550부, 1938년 21,495부, 1944년 35,900부로 늘어났다.
『文敎の朝鮮』은 창간호에서 지면을 권두언, 학설, 연구, 만화, 잡록, 문예, 휘보 등으로 구분하였다. 이후 강연, 논설, 창작 등이 추가되었다. 문예와 창작은 희곡, 동화, 여행기, 수필, 영화시나리오, 短歌, 하이쿠(俳句) 등으로 구성되었다. 1928년 10월부터는 총독의 훈시가 등장하였고, 이어서 칙어와 정무총감 담화가 함께 나타났다. 1929년 9월 이후에는 영역을 구분하지 않았으며 문예, 창작은 줄어들었다. 1934년 5월부터는 훈시, 御誓文, 칙어, 황국신민서사 등이 게재되었다. 발행초기에는 교육에 관한 학설, 연구 등이 주류를 이루었고, 휘보에서는 법령개정이나 강습회 소식, 논문현상모집요령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