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알에 숨겨진 상상 그 이상의 이야기
그림책『알』은 병아리를 사 달라고 조르는 아이와 말리는 엄마의 실랑이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이는 엄마 몰래 달걀을 품어서 직접 병아리를 키우려고 한다. 시간이 흐리고 달걀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뜨드득 뜨득…… 딱! 마침내 알을 깨고 나온 것은? 놀랍게도…… 호랑이, 코끼리, 사자, 코뿔소, 기린, 얼룩말 들. 아이는 엄마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아기 동물들을 키운다. 동물들이 커 갈수록 방 안은 엉망진창이 되고, 엄마는 아이를 나무란다. 깊은 밤, 아이는 훌쩍 커 버린 동물들을 데리고 동네 근처 호수로 달려간다. 호수에 떠 있는 오리배 위에 올라탄 동물들과 아이가 물놀이를 즐기는 사이 먹구름이 점점 몰려들더니 후두두 비가 쏟아진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어느새 빨라진 물살에 오리배는 아래로 휩쓸려간다. 결국 저수지로 떨어진 오리배는 바다로 흘러들어 거센 파도에 부딪혀 풍덩 바닷속으로 빠져버린다. 점점 가라앉은 오리배는 어마어마한 고래 입속으로 빨려들어 갔다가 고래의 숨구멍 사이로 빠져나온다. 하늘 높이 더 높이 날아가는 오리배는 하얀 날개가 돋아난 채로 하늘 속으로 사라진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아이가 보이지 않자 망연자실한다. 그런데 멀리서 하얀 새 한 마리가 창가로 점점 다가온다. 창가에 내려앉은 것은 오리 한 마리. 오리는 살며시 엄마를 쳐다보더니 알 하나를 두고 다시 날아간다. 고개를 든 엄마는 알을 발견하는데! 알을 두고 간 오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엄마는 알을 어떻게 할까? 알은 또 어떻게 될까?
독자의 상상으로 완성되는 그림책
이기훈 작가는 이야기의 결말을 독자에게 맡기고 싶다고 밝혔다. 이야기의 시작은 있지만, 이야기의 끝은 무한한 그림책을 독자들에게 선보인 것이다. 독자가『알』을 보고 느끼는 대로 오롯이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독자가 이야기의 결정권을 가지는 만큼 읽는 사람마다 이야기의 끝이 달라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좋은 책이다. 친구끼리 가족끼리 같이 보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를 권한다.
언어를 초월하는 압도적인 그림 연출력
이 책은 표지부터 뒤표지까지 치밀하고 완벽한 그림 연출로 언어를 초월하는 그림책이다. 표지를 넘기는 순간 글 없는 그림 이야기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섬세한 선과 역동적인 구도로 장면과 장면 사이에 빈틈없는 그림으로 이야기를 전한다. 이기훈 작가가 엮어 놓은 그림의 흐름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다. 특히 이야기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잘 들여다보면, 표정과 동작마저 캐릭터의 감정이 고스란히 실려 있어 탄성이 터진다. 달걀에서 무엇이 나올까 궁금한 아이의 설렘, 쑥쑥 자라는 동물들을 돌보며 느끼는 즐거움과 어려움, 오리배에 올라탄 아이와 동물들이 물살에 휩쓸려 가면서 느끼는 두려움, 처음 보는 고래 뱃속의 놀라움까지 직접 경험한 것 같은 생생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