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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정호승
鄭浩承
풍경 달다 - 정호승님 -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 p.26 |
자살에 대하여
창밖에 펄펄 흩날리던 눈송이가 창문 안으로 슬쩍 들어와 아무도 모르게 녹아버린다. 누구의 죽음이든 죽음은 그런것이다. 굳이 나의 함박눈을 위해 장례식을 할 필요는 없다. 눈발이 그치고 다시 창가에 햇살이 비치면 그때 잠시 어머니를 생각하면 된다. 나도 한때 정의보다는 어머니를 사랑했으므로 나도 한때 눈물을 깨끗이 지키기 위해 눈물을 흘렸으므로 나의 죽음을 위해 굳이 벗들을 불러모을 필요는 없다. 나의 죽음이 너에게 위안이 된다면 너 이외에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던 나의 죽음이 너에게 기쁨이 된다면 눈이 오는 날 너의 창가에 잠시 앉았다 간다. --- p.71 |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잠이 든 채로 그대로 눈을 맞기 위하여 잠이 들었다가도 별들을 바라보기 위하여 외롭게 떨어지는 별똥별들을 위하여 그 별똥별을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어린 나뭇가지들을 위하여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가끔은 외로운 낮달도 쉬어가게 하고 가끔은 민들레 홀씨도 쉬어가게 하고 가끔은 인간을 위해 우시는 하느님의 눈물도 받아둔다 누구든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새들의 집을 한번 들여다보라 간밤에 떨어진 별똥별들이 고단하게 코를 골며 자고 있다 간밤에 흘리신 하느님의 눈물이 새들의 깃털에 고요히 이슬처럼 맺혀 있다 --- p.68 |
시인 정호승이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이후 1년 만에 내놓은 이번 시집은 그의 첫 시집인 <슬픔이 기쁨에게>를 출간한 지 20년이 되는 해에 나온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 의미가 크다.
시인은 자신의 시집 <서울의 예수> 중 <눈사람>이라는 시에서 눈사람과 교감하는 맑은 영혼의 소년을 서정적 자아로 내세워, 아침 햇살에 녹아 거리에 쓰러진 눈사람의 칼을 집어 품에 넣고 세상의 길을 떠나는 소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눈사람처럼 순백한, 그래서 눈사람과 우정을 나눌 수도 있는 소년의 내밀한 서정 세계, 정호승의 시심의 우물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순정한 소년의 감성은 그의 시세계를 특징짓는 가장 큰 미학이다. 그는 많은 시편에서 자연의 감정과 빛깔, 소리를 그려내는 과정을 통해 인간사의 슬픔과 회한을 아름답게 표현했으며, 상처와 고통의 비극적인 역사와 맞서면서도 이 맑고 아름다운 서정성을 일관되게 유지해왔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에서도 그는 결 고운 서정으로 사랑과 외로움의 숙명을 노래한다. 그에게 사랑은 처음 만난 순간 '한 그루 리기다소나무' 같은 '당신'의 '솔방울' '솔가지' '솔잎'이 되길 원하는(<리기다소나무>) 것으로 시작된다. 바로 사랑하는 이와의 합일이다. 그러나 끝까지 합일되지 못하는 비극적인 운명의 철도 레일처럼, 서로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과 기다림만이 있을 뿐, 완전한 하나됨은 불가능하다. 사랑이란 이처럼 애초부터 대상과의 합일을 향한 애달픈 기다림과 꿈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화자는 '우리 굳이 하나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기보다/평행을 이루어 우리의 기차를 달리게 해야 한다'(<정동진>)고 체념적인 어조로 진술한다. '우리를 떠나보내고 정동진이 울지 않'듯이 사랑도 지속되기 위해서는 서로 무연하게 바라만 보면서 헤어질 수 있는 내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너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면 '산으로 들어가버'(<입산>)리는 결코 좁혀지지 않는 간극은, 사랑을 찾아가는 길이란 외로움의 먼 길임을 보여준다. 다시 그는 사랑과 외로움에 대한 절창을 들려준다. '울지 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중략)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수선화에게). 결국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인간 삶의 숙명에 대한 언명은 모든 내밀한 우주적 존재원리의 속성에도 동시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숙명적인 사랑의 외로움은 걷잡을 수 없는 후회로 치닫는다. 그것은 죽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이다. '그대와 감은사에 갔을 때/왜 그대 손을 이끌고 감은사 돌탑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는지'(후회)에 대한 뼈아픈 후회는 영원한 사랑을 성취하지 못한 시적 자아의 고백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절되고 분열되고 고립된 삶의 세계에서 죽지 않는 삶이란 곧 외로움의 길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전작 시집인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에서 보여주었던 사랑의 완전한 성취와 승화에 대한 스스로의 갈망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에 이르러 한층 더 깊어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나무들의 결혼식에 초대받아 낭랑하게/축시 한번 낭송해보'고 싶다는 시인의 섬세한 시적 감수성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과 자연의 존재원리로서의 사랑과 외로움의 진경과 만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