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이 책을 다 읽었을까?
작게는 우표에서부터, 낚시 용품, 오디오를 비롯해 크게는 자동차까지 다양한 물건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그들의 수집품에 감탄하기도 하고 지나친 수집열을 우려하기도 한다. 그런데 책을 모으는 것이 취미라면 어떨까? 그저 점잖고 고상해 보일까? 집 안을 가득 채운 책들을 보면 존경의 마음이 들다가도 ‘과연 이 책을 다 읽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박균호는 이렇듯 책을 모으는 일이 그다지 돈이 많이 드는 취미도 아닐 뿐만 아니라 절판이 쉽게 되는 우리의 출판계의 현실 속에서 읽고 싶은 책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임을 강변한다. 게다가 지금 당장은 별 관심이 없었던 책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재밌어지는 경우도 있고, 같은 책도 다시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니 책을 귀하게 보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집안에 있는 책장에 가득한 책을 바라보며 뿌듯한 기분을 느꼈던 사람들은 공감하고, 그런 기분을 느끼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흥미로운 책 수집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단순히 책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책을 소중히 여기고, 서로 필요한 책을 나누며, 서로의 독서 정보를 나누는 커뮤니티를 꿈꾸는 박균호의 책 수집 이야기는 책을 읽는 독자를 수용자의 입장에서 주도적인 위치로 끌어올리고 있다.
무소유를 소유하라!
법정 스님이 입적하신 후 자신의 책을 절판시키라는 유언이 공개되면서 스테디셀러였던 《무소유》의 초판본 값이 100만 원까지 뛰는 사태가 있었다. 결국 판매 유예 기간을 두고 책을 한동안 다시 팔았는데 절판된 책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열망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렇듯 구할 수 없는 책에 대한 독자들의 열정은 그 책을 다시 태어나게도 한다.이 책은 남성 독자들 사이에서 ‘도본좌’라고 추앙받는 도스토옙스키의 전집이 절판되었을 때 독자들이 해당 출판사의 게시판을 마비시키는 우역곡절 끝에 결국 개정판이 나오게 되었던 ‘도스또예프스끼 전집 사태’와 같이 오래되고 구할 수 없는 책들이 오래된 새 책으로 나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희소성으로 인해 헌책방 마니아들 사이에서 최고의 블루칩이었던 신영복의 《엽서》가 개정판으로 나왔지만 개정판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여전히 원판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에 비해 개정판이 나온 뒤 사진집으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가 된 《윤미네 집》의 경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좋은 책을 다시 살리는 것도 그것을 귀하게 만드는 것도 모두 독자의 몫임을 일깨운다.
책을 구했다는 글 한 줄만 봐도…
너무나 갖고 싶은 책이 절판되어서 구할 수 없다면? 아마 헌책방부터 찾아보기 시작할 것이다. 그래도 구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출판사에 재고가 없는지 전화를 걸어보기도 하고, 재출간을 요구하며, 그래도 안 된다면 자신에게 판권을 팔라는 결투 신청을 할 수도 있다. 잘 아는 헌책방 주인에게 사정을 해보기도 하고, 얼마가 되어도 좋으니 자신에게 팔라고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방법까지 쓰게 된다. 이렇듯 책을 구하는 것은 고사하고 책을 구했다는 글 한 줄만 봐도 가슴이 설레는 책들을 구하게 된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서점에 단 하루를 전시되지 못하고 전량 회수된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 그림 자료를 따로 인쇄해서 수작업으로 오려 붙인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 20세기 상업용 책 중 가장 큰 《스팩트라》 등 다양하고 진귀한 책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책을 구하는 과정에서 겪은 고난과 귀한 인연과의 만남, 책을 구했을 때의 희열을 읽다 보면 독자들도 헌책을 구하는 묘미를 맛보게 될 것이다.
내 생애 잊지 못할 그 책을 만나다
집에 불이 났을 때 단 한 권의 책만 들고 나올 수 있다면 어떤 책을 가지고 나올 것인가. 누구나 평생 잊을 수 없는 책이 있다.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을 받았거나 인생의 좌우명이 될 구절이 있어서 책장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었던 책들…….
‘전통 사회의 그늘에서 살아온’ 분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숨어사는 외톨박이》, 영어 단어 공부의 최고의 학습서 《워드 파워 메이드 이지》, 쉽고 재밌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선방일기》와 같이 자신의 삶을 뒤흔든 책과 그 책에 대한 사연을 들려준다.
박균호는 단순히 오래되고 귀한 책이 아니라 꼭 읽고 싶고 읽어야만 하는 책들에 대한 진한 애정을 드러냄으로써 베스트셀러 위주로 돌아가는 출판 현실에 독자들의 힘과 역할을 강조한다. 좋은 책을 살리는 것도 절판으로 만드는 것도 모두 독자의 몫이다.
그런데 단순히 어떤 책이 좋다고 단순히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이 자신에게 소중하게 된 사연을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이 자신에게 맞슴 책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책이 책 수집가의 책 사냥 일지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책과 친하게 만드는 좋은 안내서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