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잘 떠나보낸 후 삶은 더 풍부해지고 단단해진다
『사람 풍경』, 『천 개의 공감』에 이은 김형경 심리 에세이 3부작의 완결편
‘이별’이라고 하면 어쩌다 한 번 일상의 리듬을 깨며 느닷없이 닥쳐오는 일일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거의 매일이다 싶을 정도로 자주 이별의 상황과 맞닥뜨린다. 사랑했던 이와 헤어지기도 하고, 오랫동안 몸담았던 학교나 직장을 떠나기도 하며, 질병이나 사고로 소중한 가족을 영영 잃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선뜻 ‘이별’을 화제로 꺼내지 않는다. 이별은 가급적 피해야 할 사건, 피할 수 없다면 최대한 조용히 치러내야 할 ‘좋지 않은’ 일이라 여겨진다. 그런 탓에 실제로 이별의 상황에 놓였을 때에야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며 자신이 이별이라는 상황에 얼마나 취약한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자신의 심리 치료 경험과 정신분석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심리 에세이 《사람 풍경》《천 개의 공감》을 펴낸 소설가 김형경은 인간의 마음과 관계의 문제를 탐구해오던 지난 몇 년간의 여정을 종합하는 주제로 ‘이별’을 택했다. 이별 이후의 슬픔을 극복해내는 과정인 ‘애도’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의 모든 영역을 두루 체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별에 대해 말하지 않는 문화가 우리의 이별 과정을 더 고통스럽게 하고, 그 후유증이 자신은 물론 사회를 병들게 한다는 생각으로 이별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행동의 모든 층위를 세밀하게 그려 보여준다. 어떤 대상에 대해 잘 알게 되면 두려움이 크게 줄어들듯이 이별에 대해 충분히 알고 나면 충격을 최소화하며 건강하게 위기를 넘길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서다.
이 책은 총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이별을 말하지 않는 문화가 낳은 병적인 현상들을 실제 인물이나 문학작품 속 인물을 통해 지적하며, 상실이나 결핍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충분히 슬퍼한 뒤 그 속에서 빠져 나오는 ‘애도’가 슬픔을 치유하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본질적인 해결책이라고 제안한다. 이어지는 2, 3, 4장에서는 이별 후 나타나는 다양한 감정과 행동을 단계별로 설명해 독자가 이별 후 자신이 보인 반응을 납득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2장에서는 이별은 했지만 사랑과 열정(리비도)이 아직 상대를 향하고 있는 심리 단계를, 3장에서는 리비도를 거두어오긴 했으나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몰라 보이는 심리 및 행동 양태를 다루고 있다. 4장에서는 비로소 리비도를 자신의 회복과 변화를 위해 사용하는 단계, 즉 상실의 고통을 충분히 겪고 난 후 새롭게 태어나려 노력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상실의 시대, 그러나 이별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
최근 1, 2년 사이에 우리는 두 명의 전직 대통령과 나라의 큰 어른이었던 종교 지도자, 가족처럼 마음을 기대던 국민 여배우, 인기 작가 등 유명인의 죽음을 연달아 접하면서 전 사회적으로 이별, 상실, 죽음에 얽힌 감정을 쉴 새 없이 겪었다. 떠나간 이의 빈자리를 아쉬워하고, 그 빈자리를 곁에 두고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허무함마저 느꼈다. 그러나 충격과 슬픔 속에 온 나라가 들썩이던 며칠이 지나고는 누구도 그들의 이야기를 섣불리 꺼내지 않는다. 우울하고 꺼림칙한 이야기 혹은 조용히 혼자 정리해야 할 사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는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이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거나 오래 키우던 강아지를 잃어버렸거나 한때 전부와도 같았던 꿈이나 목표, 이념을 내려놓아야 할 때도 우리는 혼자 조용히 마음속으로 상실감을 달랜다. 사랑을 시작할 때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 다 꺼내놓던 사람들이 이별 앞에서는 “응, 헤어졌어. 다 끝났어.” 하며 입을 닫아버리고, 행여 남의 눈에 약한 모습으로 비칠까 눈물도 한숨도 꾹 참는다. 저자는 이렇게 이별의 감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태도가 우리를 병들게 하고 있다며, 불시에 찾아오는 심리적 문제의 대부분은 잘 이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평생에 걸쳐 발달 장애와 분리 불안을 겪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그 대표적인 예다.
“로빈은 1953년 10월 뉴욕에서 죽었다. 로빈의 부모는 다음 날 라이에서 골프를 쳤고, 그다음 날엔 간소한 추도식에 참석한 뒤 텍사스로 돌아왔다. 부시는 여동생이 아팠다는 사실을 동생이 죽고 나서 부모가 집으로 돌아온 뒤에야 알았다. 부시의 가족은 로빈이 코네티컷 주의 가족 묘지에 묻힐 때 집에 있었으며 장례식도 치르지 않았다.”
〔…〕애도할 줄 모르는 그들의 태도는 어린 부시에게 슬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했고, 그 일로 인해 부시는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조지는 ‘부시 테일’로 튺렸는데 항상 정신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이라는 뜻이었다. 〔…〕그에게는 또한 난독증과 언어 장애도 있었는데 그것 역시 불안 때문에 생긴 증상이었다. 〔…〕지금도 그는 신문을 읽지 않으며, 한국을 거쳐 중국에 잠깐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외국에 나간 일이 없고, 아내와 24시간 이상 떨어져 지내지 못한다. --- pp.34-36
저자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충분히 슬퍼하지 않고 지나온 뒤 ‘견딜 수 없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충동적으로 퇴사를 결심했던 자신의 예를 비롯해 연인과 헤어진 후 잠적했던 친구, 가족을 잃은 뒤 성(性)에 몰두하게 된 카사노바와 뒤라스, 여동생의 죽음 이후 방황의 길로 들어선 『호밀밭의 파수꾼』속 주인공 소년 등 실제 인물과 문학작품 속 인물을 넘나들며 이별 후의 상실감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할 경우 초래되는 심리적 문제를 보여준다. 이런 개인적 차원의 이별뿐 아니라 젊음을 바친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을 잃은 뒤 성 추문, 권력형 비리 등을 일으킨 운동권 지식인 세대, 평생 분노와 공포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참전 군인들, 식민지 시대와 전쟁, 독재와 가난이 남긴 상처를 돌보지 않아 자주 폭발하듯 감정을 분출하는 우리 국민을 예로 들며, 이별의 감정을 표현하고 함께 나누는 일이 사회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임을 시사하고 있다.
‘애도’는 성찰과 성장을 위한 생의 필수 과정
저자는 이별 이후 슬픔과 상실의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표현하여 떠나간 사람이 없는 환경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나’로 변화하는 과정, 즉 ‘애도’의 개념을 본격적으로 소개한다. 1장에서 잘 이별하지 못하면 병이 된다는 사실을 최초로 제안한 프로이트부터 시작해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에서 정립되어온 애도 이론을 찬찬히 소개한 뒤 이어지는 2, 3, 4장에서는 자신의 애도 경험과 그 과정에서 도움을 받았던 문학작품 속 혹은 실제 인물들의 사례를 빌려 이별 이후 나타나는 여러 가지 증상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이별 후의 모든 감정과 행동을 애도 반응으로서, 즉 이별의 긴 터널을 통과하기 위한 필수 과정으로서 긍정해주기 위한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애도’를 자연스럽게 말하며 상실의 아픔을 현명하게 극복하기 바라는 저자는 ‘애도’라는 말 자체가 우리 안에서 자아내는 어둡고 무거운 뉘앙스를 걷어내기 위해 그 의미와 기능을 적극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즉 애도는 단지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행위에 그치는 게 아니라 내면의 ‘상처받은 나’를 떠나보내고 한층 성숙한 ‘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애도 작업을 잘 이행하면 자기 자신을 잘 알아보게 되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게 된다. 자기를 알아볼 수 있으면 타인도 잘 알아보게 되어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 능력이 커진다. 애도 과정이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의 모든 영역을 두루 체험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과정을 지나오면 정서적으로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삶의 다양한 국면에 대한 이해력이 커진다.
그보다 좋은 것은 애도 작업을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대상 없이도 살아갈 수 있고, 혼자 힘으로도 잘해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자신감과 자율성이 강화된다. 그리하여 애도 작업이 끝나면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한결 강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화하게 된다. 생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며 새로운 자기, 새로운 비전, 새로운 생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 pp.44-45
이 책에는 우리가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난 뒤에 보이는 다양한 애도 반응이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아직 사랑의 마음이 상대에게 향해 있는 단계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는 마비 증상, 상대가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며 이별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 이유 없이 분노를 표출하는 공격성, 끔찍이도 미워했던 상대를 좋은 사람이었다고 추억하는 미화 등이 나타난다. 한편 상대로부터 마음을 거두어오긴 했지만 잘못 사용하는 단계에서는 그 모든 관심과 열정, 특히 성적 에너지를 자기 자신에게 쏟는 자기 성애(性愛), 떠나간 이를 대신할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몰두, 두문불출하며 자기 안으로 숨어드는 자폐 증상, 자살 충동과 같은 자기 파괴적 욕구 등이 나타난다.
이런 비정상적인 일탈의 시간 속에서 내면의 열정을 잘 추슬러 회복과 변화를 위해 사용해야 새롭고 건강한 ‘나’로 거듭날 수 있다. 저자는 목 놓아 울거나 슬픈 노래를 부르거나 글, 그림, 춤 등으로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고, 용서할 수 있는 것들은 용서하기를 권한다. 그렇게 서서히 떠나간 사람으로부터 나를 분리해낸 뒤 그와의 추억은 물론이고 애도 과정에서 겪은 고통과 슬픔까지도 내 일부로 간직해 새로운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까지가 진정한 애도라고 말한다. 독자들은 저자? 그려 보이는 애도의 전 과정을 따라가며 이별 이후 자신이 보인 감정과 행동의 정체를 확인한 뒤 이별을 한층 강하고 아름다운 나로 성장하는 계기로서 긍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실천적인 지침이 돋보이는 문학적인 심리 에세이
『좋은 이별』은 심리학과 정신분석학 이론을 바탕에 두고 있으나 저자의 실제 애도 경험과 그 과정에서 도움을 받았던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예를 활용해 한 편 한 편의 이야기로 풀어낸 다분히 문학적인 심리 에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별 후 나타나는 다양한 감정과 행동을 생생하게 예시하여 독자들이 자신의 애도 반응을 긍정하며 치유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도움을 준다. 또한 각 글의 제목으로 쓰인 시구절과 문장은 애도 감정을 놀랍도록 충실하게 압축해낸 것들로, 단 한 문장에서 위안을 얻고 시각이 바뀌는 인상적인 경험을 안길 것이다.
한편, 이 책에는 또 하나의 얼굴이 있다. 문학의 향기를 짙게 풍기면서도 매우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Tip을 담고 있어 이별 지침서나 처방전으로 활용한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저자는 도입의 역할을 하는 1장을 제외하고는 모든 글의 뒷부분에 ‘Recipe’라는 별도의 페이지를 만들어 Tip을 실었다. 이 부분에는 ‘이별은 존재 전체의 상실이 아니라 부분 상실이다’,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을 인식하라’ 등등 생각을 전환할 수 있게 하는 포괄적인 조언에서부터 ‘물을 많이 마시고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라’, ‘추억의 장소를 찾아가라’, ‘1년 후의 모습을 적어보라’ 등처럼 일상에서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는 사항까지 이별의 여러 고비에서 꺼내볼 수 있는 지침들이 폭넓게 제시되어 있다. 이 책이 단지 지식을 제공하거나 감성을 자극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별의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는 이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진심 어린 바람을 엿볼 수 있다.
‘괜찮아’라고 말하지 않기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느냐고 인사할 때 ‘괜찮다’는 의례적인 답을 건네지 말고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한다. 여전히 좀 슬프다, 무거운 마음이 걷히지 않는다 등등. 감정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내면의 문제가 조금씩 해결된다.〔…〕형식적으로 질문한 후 솔직한 답변 앞에서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질문해줘서 고맙다고 말한 후 화제를 바꾸면 된다. --- p.88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이별이나 상실 앞에서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묻지 않는다. 사건의 내막이나 헤어진 이유를 낱낱이 파헤치려 하지 않는다.〔…〕왜냐고 묻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아픈 마음을 다스리며 현실 속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일이다. 사실 떠난 사람조차도 자신이 왜 떠났는지 명확한 이유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 p.107
몸을 안아주기, 몸을 쓰다듬기
“고통을 견디려면 하루 세 번 포옹하고, 아픔을 치유하려면 하루 다섯 번, 마음이 성숙해지려면 하루 여덟 번 포옹하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과 손을 잡거나 안아주면서 신체적 접촉의 치유 효과를 느껴본다. 친밀한 사람과 가까이 앉아 그들의 사랑 에너지를 느껴본다. --- p.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