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과의 경주 7
엄마의 인생 56 죽음을 응시하며 81 촛불이 꺼지듯 120 신 앞에서의 침묵 183 산자와 죽은 자 191 영원한 이별 196 실존, 혹은 공허 208 옮긴이의 글 |
저시몬 드 보부아르
Simone de Beauvoir
나는 존경스런 마음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는 아주 오랫동안 스스로가 아주 젊다고 믿어왔었다.
언젠가 사위가 엄마의 나이를 두고 말실수를 하자, 엄마는 심술궂게 쏘아 붙였다. “그게 몹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나도 안다네, 내가 늙엇다는 걸. 하지만 자네가 그걸 알려주려고 애쓸 필요는 없어.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야.” 엄마는 사흘 동안이나 마침 안개 속에서 헤매듯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오갔었다. 그리곤 갑자기 일흔여덟이라는 당신의 나이 앞에 과감하게 그리고 똑바로 설 수 있는 힘을 찾아냈던 것이다. ‘이제 내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칠 때야.’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놀라운 용기로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를 펼쳤었다. --- p.24~25 엄마가 마흔 살 때인가, 어쩌다가 가구에 가슴을 살짝 부딪치기만 해도 엄마는 겁에 질려서 이렇게 말했었다. “유방암에 걸릴지도 몰라.” 지난 해 겨울, 내 친구 한 명이 위암으로 수술을 받았을 때는 “아마 나도 위암에 걸릴 것 같아.” 하고 말했었다. 그때 나는 단지 어깨를 움찔해 보였을 뿐이다. 사실 타마린드잼으로 치유되는 변비와 암 사이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엄마가 가지고 있던 강박증이 언젠가 현실로 나타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 p.43 윗입술 부근에 솜털이 살짝 덮힌 엄마의 얼굴은 어떤 뜨거운 관능을 드러내고 있었다. 두사람의 애정은 확실하고 완전해 보였다. 아버지는 엄마의 두 팔을 안고 애무하면서 귀에 대고 달콤한 말을 속삭이곤 했다. 내가 예닐곱 살쯤 되었을 때다. 어느 날 아침, 엄마는 하얀 천으로 된 하늘거리는 긴 잠옷을 입은 채 붉은 양탄자가 깔린 복도에 맨발로 서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흰 목덜미 위로 흘러내렸고, 입가에는 눈부신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엄마의 모습은 이제 막 나온 침실과 어떤 신비로운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싱싱하 모습의 여인이 바로 내가 존경하는 커다란 사람, 곧 나의 엄마라는 것은 겨우 깨달을 수 있었다. --- p.59~60 지난 수요일에는 수술이냐 안락사냐, 하는 양자택일을 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당연히 의사들은 안락사를 거부하고 수술을 했을 것이 빤하기 때문에, 수술이 끝나면 엄마의 심장은 다시 활기를 찾고, 힘차게 뛸 것이다. 그리하여 엄마는 오히려 오랫동안 장폐색증을 견뎌내고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 p.111 “잠만 자느라고 오늘을 살아가지 못한 셈이야.” 삶을 그토록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죽음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토요일 밤 의사들은 우리에게 엄마다 두 달 아니면 석 달쯤 지탱할 수 있을 거라거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시간표를 정해 놓고 생활해야 할 것이고 엄마는 우리가 없어도 몇 시간은 지낼 수 있도록 습관을 들여야 할 것이다. --- p.160 |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자전적 소설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6주!! **전 세계 40여개 국에 번역 출판되어 2천 5백만 여성 독자를 사로잡은 세기의 베스트셀러!! 어떤 죽음을 선택할 것인가? “암에 걸린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알려줄 것인가, 감출 것인가. 가망 없는 상황일지라도 단지 얼마간의 시간을 연장하기 위해 수술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조용히 죽음을 기다릴 것인가, 하는 선택을 두고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된다.” 《아주 편안한 죽음》은 프랑스 실존주의 지성 시몬느 드 보부아르가 암과 맞서 싸우는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는 자전적인 소설이다. 발표 당시 56세라는 나이에서 보듯, 보부아르는 이제, 삶이 지식으로 이해하기에는 불가능한 그 무엇이라는 것을 담담한 필치로 고백하면서 죽음 앞에서 무화되어가는 삶의 의미를 우울한 눈으로 응시한다. 또한 죽음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며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숙명, 암과 싸우는 엄마의 고통과 죽음을 통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우울한 공감과 철저한 고독을 동시에 확인하게 해준다. 소설은 욕실에서 엉겁결에 넘어지는 바람에 대퇴골 골절로 입원하게 된 엄마가 아이러니하게도 암 진단을 받고 고통스러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6주 동안의 시공간을 두고 일어나는 사건과 사색의 과정이다. 엄마의 마지막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엄마와 함께했던 지난날을 돌아봄으로써 실존적 삶의 의미를 짚어보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무엇보다 인상인 것은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고통스러운 투병의 나날을 이어가면서도 최후의 순간까지 죽음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삶에 끈질기게 집착하는 엄마의 모습일 것이다. 또한 죽음을 마주하면서, 혹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두고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혹은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습일 것이다. 즉 우리 또한 암에 걸린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알려줄 것인가, 감출 것인가. 가망 없는 상황일지라도 단지 얼마간의 시간을 연장하기 위해 수술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조용히 죽음을 기다릴 것인가, 하는 선택을 두고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된다.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삶을 마감하는 죽음 또한 그러하다. 보부아르는 어머니가 편안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결론짓는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삶을 사랑했던 어머니가 죽음에 맞서 용감하게 싸우는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 또한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죽는다. 그러나 자연사란 없다. 개인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돌발 사건이다. 죽음은, 그가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무엇으로든 정당화할 수 없는 폭력이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