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 절 외면하지 말아요
나: 그럼 고통받는 제 내면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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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관도 그랬습니다. 기어코 밖으로 게워 내는 물세례가 ‘물관’ 스스로 이름값 못 하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몸통 밖으로 쏟아져 넘칩니다. 물관은 허둥허둥 악을 썼겠지만 그렇다고 쉽게 해결될 일입니까? 노력으로만 고장 난 틈을 메꾸어 내기에는 삶이란 한계가 있지요. 과정이 어떠했든 결과적으로 물관은 물관 노릇을 하지 못했습니다. 누수되는 물을 보며 물관이 할 일은 노력하기, 부정하기, 긍정하기, 그리고 다시금 부정하기, 애원하기, 가까스로 수긍하기, 멍청하게 바라보기 정도가 다일 것입니다. 나는요, 지 할 일을 못하는 인위적 사물일지라도 물관을 애정해 보기로 했습니다.
--- p.71

교수님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저 전공이랑 안 맞는 것 같아요, 아니아니, 어쩌면 제가 전공에 재능이 없는 것 같아요, 하고 어린아이처럼 징징대고 싶었는데요. ‘교수님, 제가 얼마나 심각하냐면요, 더 이상 저 자신을 조소과라고 소개해도 되는지를 모르겠어요. 너무 속이 상해서요.
--- p.107

나는 널 너무 사랑해서/ 도마 위 널 올려 두고/ 밀대로 슬슬 밀어/ 납작하게 만들어 버린 다음에/ 그 안에 폭 잠겨/ 둘둘 말리고 싶어/ 구깃구깃 저며지고 싶어
--- p.116

눈물이 되새김질이라도 하는지 분명 어제 울었는데 오늘도 울고 있네요. 허구한 날 잊고 지내려 해도 노력이 필요한 기억은 쉽게 막을 수 없지요. 밥알 하나하나 입안에서 세 봅니다. ‘아프다.’ 아프다고 말하고 싶은데 나조차도 이 아픔이 어려워서 무척 답답합니다. 나는 더 작아지고 싶은 마음에(세상에, 여기서 더 작아질 것도 없으면서…) 몸을 웅크려 봅니다. 탄자니아에서 약 1만 킬로미터를 날아와 알을 까는 뻐꾸기처럼 나에게도 평생을 귀찮게 할 기억들이 있어요. 남 둥지에 기생하는 요 얄궂은 친구들처럼 내 마음에도 방해꾼이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겉으론 이 내 마음 포근해 보여도, 실상은 무척 고된 것을. 내 마음속 이곳은 무척 전쟁터여요. 곧 나를 쪼아 댈 기억들이 밤 귀신처럼 나타나겠지요. 부득부득 쪼아 가슴에 핏덩이를 내어 쓰라린 가슴팍 쥐어 들고 오늘 밤 잠 못 이루도록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