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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특별판
중고도서

교양 특별판

: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디트리히 슈바니츠 저 / 인성기·조우호·김길웅·윤순식 공역 | 들녘 | 2004년 03월 2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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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4년 03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720쪽 | 2025g | 153*225*40mm
ISBN13 9788975274206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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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   자몽향기   평점4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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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디트리히 슈바니츠(Dietrich Schwanitz)
1977년까지 함부르크 대학 영어영문학과 교수 역임. 저서로는 베스트셀러 <남자> <캠퍼스>, 대작(大作) <영국 문화사>, <샤일록 신드롬> 그리고 장편소설 <서클>이 있다.
역자
<인성기>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학에서 Dr. phil 취득. 지은 책으로 {네스트로이의 반환상극}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오스트리아 문학의 언어], [뒤렌마트의 기호극], [Nestroys Theater als Abbild und Sinnbild der Welt], [유럽 계몽주의와 독일 낭만주의], [오스트리아 비인 그룹과 그라츠 그룹의 아방가르드적 언어],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과 네스트로이의 언어극] 등이 있다.

<조우호>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독일 예나 대학교에서 독문학 박사. 현재 서울대, 홍익대, 숭실대 강사. 논문으로는 [Entsagung und Ironie in Goethes Roman 'Wilhelm Meisters Wanderjahre oder die Entsagenden'] [Kulturholismus in Weimar und Jena um 1800 und die kulturpolitische Position der literarischen Moderne um 1900] [괴테의 정치관], [빌란트 소설에 나타난 문화지형도] 등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는 (독역) {Gespraech im Atelier}(김원우 {소인국})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괴테, 공역) 등이 있다.

<김길웅>
서울대 독문과와 동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학위논문으로는 [브레히트 시의 변증법적 구조와 기능]이 있고, 최근 논문으로 [이상과 현실, 그리고 우울:18세기 말과 19세기 초 독일 시민계층의 내면의식과 그 예술적 표현], [Aesthetische Moderne und Lyrik], [모더니즘 시와 회화의 구조적 상동성:벤의 절대시론과 칸딘스키의 추상화론 비교]가 있다.

<윤순식>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동대학원 졸업(문학박사),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 수학. 공군사관학교 교수 역임. 현재 서울대 강사. 역서로는 {역사의 비밀3(한스-크리스티안 후프)} 등, 논문으로는 [토마스 만의 소설 {魔의 山}에 나타난 反語性 考察], [마의 산의 아이러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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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은 1부보다 2부가 더 재미있다. 1부가 시원치 않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인문학의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영문학자답게 그는 문학과 예술작품만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을 기술한 곳에까지 짙은 문학적·철학적 향취를 담아놓았다. 하지만 그는 2부 곳곳에서 드러나는바, 자칭 교양인들의 허위의식에 대한 점잖은 풍자와 야유는 감칠맛이 날뿐더러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해도 되겠다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좀 길지만 맛 뵈기로 한 대목만 요약해보자.

대학을 나온 교양인들의 칵테일 파티에서는 누군가가 다음과 같은 말로 참석자들을 즐겁게 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다시피, 구조주의는 신칸트주의가 옷만 갈아입고 나타난 것과 다름없습니다. 물론 당신들은 선험적 주체가 어디에 있느냐고 질문하실 겁니다. 물론 저도 그 주체가 주체가 아니라는 것은 인정합니다만, 그 주체가 선험적이라는 것은 맞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질문하겠습니다. 문화사는 궁극적으로는 구조주의의 헤겔주의화가 아닙니까? 비록 그것이 반(反)인문주의적으로 전도(顚倒)되었고, 또 이 전도가 때늦게 왔지만 말입니다."
몇몇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고 몇몇은 울려다 만 암소처럼 뭔가 소리를 낼 것이다. 이런 동작은 이 말을 심사숙고한다는 것, 그것이 아주 의미심장한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걸 의미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그 말의 뜻을 아노라고 서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사실 그 말을 대충이라도 이해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감추는 수단일 뿐이다.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누군가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겠지만 참는다. 그리고는 대신 이런 코멘트를 한다. "칸트주의에서 헤겔주의를 넘어가는 것은 한 발자국 거리밖에 안 되지요." 또는 "헤겔 자신이 모습만 다를 뿐 칸트주의자가 아니었던가요?" 이로써 그는 최초 발언자에게는 전율을 느끼게 하고 다른 참석자들의 경탄을 끌어낼 것이다.

교양은 어려운 말을 구사하는 능력과 아무 관계도 없다. 슈바니츠에게 교양이란 사회를 복잡한 개인의 내면에 비추어보고, 또 그렇게 하여 사회를 결속시키는 도덕적 구속력을 내면에서 생성해내는 개인적인 능력을 가리킨다. 교양은 문화사의 기본적인 특징을 파악하고 미술, 음악, 문학의 대표작을 이해하는 것이다. 교양은 유연하게 훈련된 정신의 상태이며, 모든 것을 한 번 알았다가 다시 잊었을 때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교양은 문화적인 소양이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어색하게 남의 눈에 튀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다. 교양은 직업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전문가의 양성과는 반대로 보편적인 인격 형성을 핵심이념으로 한다. 따라서 교양은 지식과 능력의 총합이며 정신적인 상태다.
오늘날의 '배운 사람들' 가운데 특정한 분야에 대해 많이 아는 전문가는 매우 흔하다. 하지만 이런 의미의 교양인을 찾아보기는 도무지 쉽지가 않다. 모든 연구분야가 끝없이 세분화 전문화된 나머지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도 자기 분야를 한 발짝만 벗어나면 보통사람과 별로 다를 것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심지어는 비슷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도 원만하게 대화하기가 어렵다. 예컨대 경제학 박사들끼리 만났다고 해서 아무 경제문제에 대해서나 토론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노동경제학 전공자와 국제금융론 전공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때로는 수학자와 문학평론가의 커뮤니케이션보다 더 어렵다.
교양 있는 전문가에게 전문적 지식은 큰산의 정상(頂上)과 같다. 평지에 해발 2천 미터짜리 봉우리가 솟는 게 아니다. 낮은 구릉과 작은 산들이 이어지면서 표고를 점차 높인 연후에야 가장 높은 봉우리가 들어설 수 있다. 전문지식은 교양인의 지식과 능력의 가장 도드라진 표면에 불과하다. 그 어느 것을 전문분야로 삼든 교양인을 만드는 기본요소는 슈바니츠가 강조하는 바 역사와 철학, 문학과 미술에 대한 이해이며, 사회를 자기의 내면에 비추어봄으로써 사회를 결속시키는 도덕적 구속력을 생성해내는 유연하고 자성적인 정신인 것이다.
이러한 교양의 기초가 없는 전문가는 한 뼘도 안 되는 전문영역에 갇혀 평생을 살아야 한다. 그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그는 길을 잃고 만다. 평지에 높이 솟은 돌기둥 위에 서 있는 사람처럼 불안하다. 이런 사람들은 {교양}의 마지막 구절을 작업실 컴퓨터 모니터에 붙여두면 좋겠다. 잃어버린 교양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배운 사람들'이 언제나 가슴에 담아두어야 할 잠언이기 때문이다.

교양이 억압적 표준, 불쾌한 과제, 경쟁의 형식 또는 자신을 거룩하게 만들려는 교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양은 이른바 '교양'으로 분리되어 나타나서는 안 되며 특별한 화제가 될 필요조차 없다. 교양은 인간의 상호 이해를 즐겁게 해주는 의사소통 양식이다. 요컨대 교양은 정신과 몸 그리고 문화가 함께 하나의 인격이 되어 다른 사람들의 거울에 자기를 비추어보는 형식이다.

끝으로 뱀다리 하나. 독일 학교와 교육제도에 대한 설명은 건너뛰어도 된다. 저자 스스로 그렇게 해도 문제가 없다고 했으니, 특별한 직업적 관심이 있는 독자가 아니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너무 따분한 내용이라 자칫하면 이 책 자체에 정 떨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뱀다리 둘. 독자들 스스로 깨닫게 되겠지만 <교양>은 독일 인문학자가 쓴 책이다. 독일 교육과 독일 사회에 대한 독일 지식인의 문제의식을 반영한 책이라는 이야기다. 미국식 표준이 전일적 세계 지배를 획책하는 시대에 그 뿌리가 된 유럽적 교양을 더 깊이 이해하면, 받아들일 것과 배척할 것을 구별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교양에도 어디까지나 국적이 있음을 잊지는 말 것. 또 말미에 저자가 소개한 도서목록을 보고 기죽지 말 것. 거기에는 <춘향전>이나 <목민심서> 같은 우리의 고전이 없다. 그리고 그걸 다 읽어야 교양인이 되는 것도 절대 아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책은 기독교 성경이라고 한다. 그런데 18세기 중엽 유럽 사회의 새로운 주역으로 이미 자리를 굳혔던 부르주아지(시민계급)는 성경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다른 책을 놓았다. 디드로와 달랑베르, 볼테르 등 당대의 철학자들이 협력해 만든 백과전서Encyclop die 시리즈였다. 이미 확실한 자의식을 획득한 부르주아지의 지식과 계몽주의 사상은 이 책의 힘을 빌려 좁디좁은 귀부인들의 살롱을 박차고 드넓은 세상으로 뛰쳐나갈 수 있었다. 당시 유럽을 정치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낡은 절대왕정과 로마 교황청은 출판을 금지하고 저주를 퍼부었지만, 혁명가 로베스피에르는 백과전서에 '대혁명의 서장(序章)'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바쳤다. 중세 이래 유럽 사회를 지배했던 모든 지배적인 관념과 이데올로기를 이성의 시험대에 올림으로써 낡은 질서를 사상적으로 무너뜨린 역사적 공헌을 상찬(賞讚)한 것이다.
그로부터 약 25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바야흐로 정보통신 혁명의 시대를 만났다. 모든 지식과 정보가 인터넷을 타고 홍수처럼 흐르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팔을 뻗으면 바로 닿을 만한 서가(書架)에 백과사전을 꽂아두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루가 다르게 성능이 향상되는 인터넷 검색엔진 덕분에 두터운 백과사전의 책갈피를 뒤적이는 수고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마우스를 클릭하는 가벼운 손동작만으로 알고 싶은 주제와 관련된 정보를 순식간에 수천 건씩 불러낼 수 있다. 이런 시대에 백과사전을 종이 책으로 편찬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시대착오'라는 비아냥을 듣기 십상일 것이다.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교양Bildung}은 바로 이러한 '시대착오'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2000년 5월에 나온 독일어판 원본(제12쇄, 제1쇄는 1999년 발행)의 분량은 인명색인과 저자후기까지 다 합치면 544쪽에 이른다. 슈바니츠는 여기에 역사와 문학, 언어, 미술, 건축, 음악, 철학과 성(性) 담론에 이르기까지, 고대 그리스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무려 3천 년에 걸쳐 발전한 유럽 문명 핵심을 압축했다. 하나의 단어, 사건, 개념, 사람에 대한 설명이 길어야 두세 쪽을 넘지 않는다. 이 책을 '종이 책 백과사전'의 범주에 넣어 마땅한 이유다.
그런데 시장은 이 무모한 '시대착오'에 밀리언셀러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아마도 두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지식과 정보의 바다에서 교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믿을 만한 해도(海圖)를 원하기 때문이다. 둘째, 전문적 지식의 골짜기에 갇혀버린 지식인들이 풍요로운 교양의 전원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우선 첫 번째 성공 요인. 슈바니츠는 교양인이 되는 데 중요한 지식을 요약하고, 그것을 중요하지 않거나 교양에 방해가 되는 유해한 지식과 구분했다. 그가 1부 [지식]에서 다룬 신화와 역사적 사건, 작가와 예술가의 작품, 철학자와 이데올로기는 교양의 대륙으로 가는 항로에서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별자리와 해협, 기상(氣象)과 조류(潮流), 등대 따위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걸 모르면 항해를 할 수 없다. 이어서 2부 [능력]에서는 이런 지식을 활용하여 교양인이 되는 전략을 제시한다. 슈바니츠에게 교양이란 남에게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획득해야 하는 그 무엇이다. 물론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지 않는 것도 교양에 속한다. 유럽황실, 텔레비전 프로그램, 잡지, 축구 따위가 그런 것들이다.
슈바니츠는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위해 이 책을 썼노라고 밝혔다. 하지만 어디 그들뿐이겠는가.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 죽은 지식처럼, 자기의 삶과는 아무 상관없는 무미건조한 사실의 나열처럼 여겨져 절망감을 느껴본 사람, 학창시절의 부정적 경험이 뇌리에 깊이 남아 있어 우리 문화의 풍요로움을 뒤늦게 발견하고 눈을 비비게 되는 사람, 자기의 생생한 감각기관으로 유물처럼 진열된 모든 교육 쓰레기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사람, 우리 문화에 대한 지식에 입문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문명의 대화에 참여할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친절한 교양 길잡이가 될 수 있고, 그런 사람은 무수히 많다.
두 번째의 성공 요인은 많이 배운 사람들, '대학을 나온 교양인'들이 스스로를 얽어매고 있는 허위의식을 가차없이 깨뜨린 데서 찾을 수 있다. 슈바니츠는 교양인을 자처하는 '배운 사람들'의 행태를 무척 냉소적으로 관찰하면서 진정한 교양이 무엇인지를 설파한다. 이것은 {교양}을 다른 모든 종류의 평범한 백과사전과는 다른 책으로 만든 뚜렷한 특징인데, 아마도 그의 독특한 성장배경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슈바니츠는 1940년 독일 중서부 산업중심지인 루르 지역에서 태어났지만 11세까지 유년기를 스위스 산골마을의 좀 별난 기독교 공동체에서 보냈다. 학교는 다닌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물불 가리지 않는 어떤 교장선생 덕분에 곧바로 김나지움에 들어갔고, 이어 뮌스터, 런던, 필라델피아 대학에서 영문학과 역사, 철학을 공부했다. 영문학 박사 학위와 교수 자격을 취득한 곳은 프라이부르크 대학이었다. 대학에서 여러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다. 독일 대학은 보통 두 개의 부전공을 요구하며, 부전공을 이수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은 전공과 맞먹는 정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슈바니츠는 1997년까지 20여 년 동안 함부르크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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