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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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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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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9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00쪽 | 364g | 122*188*20mm
ISBN13 9791192579061
ISBN10 119257906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Ⅰ. 롯코산 1952년 여름 〔1〕
Ⅱ. 아이다 마치코 1935년
Ⅲ. 롯코산 1952년 여름 〔2〕
Ⅳ. 구라사와 히토미 1940년~1945년
Ⅴ. 롯코산 1952년 여름 〔3〕
Ⅵ. …… 1952년
Ⅶ. 롯코산 1952년 여름 〔4〕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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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루는 롯코산의 호리병 연못가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그 애는 열네 살로 나와 가즈히코와 동갑이었다. 성격이 좋은지 나쁜지 가늠하기 어려운 아이였다. 얼굴도 약간 귀엽게 생긴 정도지 눈길을 잡아끌 만큼 특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웃을 때 묘하게 매력적인 입매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와 가즈히코 둘 다 가오루를 단번에 좋아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고꾸라졌다가 함께 데구루루 굴러떨어진 것 같은, 그런 첫사랑이었다.
--- p.8

회장이 멈춰 선 이유를, 나와 데라모토 씨는 금세 알아차렸다. 웅성거리는 독일어 대화가 난무하는 실내, 붉은색을 도드라지게 사용한 기둥과 벽면, 그 안쪽 구석에 자리한 작은 테이블에 그녀가 혼자 앉아 있었다. 뒤에서 보기에는 비스듬한 각도였지만 틀림없었다. 목 뒤로 머리카락을 묶은 검은색 리본. 모자와 코트는 벗고 있었고, 검정 스웨터를 입은 상체를 꼿꼿이 세운 채 벽에 걸린 자수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요리는 아직 나오지 않았는지 테이블에 아무것도 없었다.
--- p.66

그때 내 머리에 뭔가가 닿았다. 사람의 손이다.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머리를 뒤로 젖혀 확인할 필요도 없이 그건 가오루의 손길이다. 틀림없다. 누운 채로 손을 뻗어 내 머리카락을 갖고 노는 것이다. 내 옆에서 눈을 감고 있는 가즈히코의 머리에는 가오루의 손이 뻗어 있지 않았다. 내 머리만 만지작거리는 거다. 나는 가즈히코보다 몇 배는 더 흡족한 기분으로 눈을 감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누가 광석 라디오를 켰는지 음악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에리 지에미의 〈테네시 왈츠〉다. 초봄부터 유행한 이 노래의 인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오루는 내 머리카락을 만지는 걸 그만두고 휘파람으로 나지막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엊그제와 마찬가지로 나도 같이 휘파람을 불었다. 휘파람을 불면서 눈을 뜨고 가즈히코를 쳐다보니, 녀석도 눈을 뜬 채 부루퉁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가즈히코는 휘파람을 불 줄 모른다.
--- p.107

창가의 긴 의자에 앉아 있던 나는 고개를 돌려 바깥에 시선을 두었다. 그 창가에서는 대문과는 별개로 난 자동차 출입구를 내려다볼 수 있다. 창문 아래 자갈이 깔린 마당에 검은색 자동차가 한 대 서 있었고, 잠시 후 그 차를 향해 우산 하나가 다가갔다. 기모노 차림의 마쓰 아줌마가 자기 몸은 비에 반쯤 젖어가면서 누군가가 비를 맞지 않도록 우산을 받치며 걷고 있다. 우산을 쓰고 있는 사람은 연한 색깔의 여름 정장을 입은 남자로, 아마 히토미 고모의 남편일 것이다. 하지만 우산 아래에 있어 얼굴은 안 보인다. 한쪽 다리를 약간 끄는 것 같은 걸음걸이다.
--- p.128

이론 교육, 운전 실습, 견습 탑승을 거쳐 정식으로 기관사 임명을 받자, 히토미가 긴쓰바(밀가루 반죽에 팥소를 넣어 만든 일본 전통과자를 사와 조촐한 축하 파티를 해줬다.
“기관사님, 유니폼 입고 경례해 봐요.”
나는 말 같지도 않은 주문을 하지 말라며 히토미의 요청을 무시했다.
“아이, 그러지 말고 한번 입어봐요. 친구네 오빠한테 카메라 빌려왔단 말이에요. 사진 찍게 해줘요.”
하도 졸라대는 통에 못 이기는 척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호큐전철의 남색 유니폼에 달린 새 기관사 배지. 히토미는 그것을 자신의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자, 그럼 찍겠습니다. 경례 부탁해요. 와, 늠름하다, 멋져요, 반하겠어요!”
사진을 찍으며 히토미는 혼자 신나서 떠들어댔다.
--- p.143

“그럼 혹시 네 엄마가 흑백합 오센?”
내가 물었다. 결혼 후에 다시 내연 관계가 부활한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었으나, 가오루는 부정했다.
“아냐, 우리 엄마는 그런 불량한 생활과는 거리가 멀어. 애초에 집이 가난해서 여학교에는 다니지도 못했대.”
“그럼 그 후엔…….” 하고 가즈히코가 물었다.
“흑백합 오센은 어떻게 됐어?”
“글세, 거기까지는 못 들었어.”
머릿속에 가오루가 며칠 전에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아빠는 매사에 그런 면이 있었어.’
기일 다음 날이었다. 카메라, 쌍안경, 그 밖의 여러 가지 물건을 사는 데 돈을 쓰는 아버지.
‘그런데도 한번 싫증 나면 눈길도 주지 않았다니까.’
히토미 고모가 했던 그 말에 흑백합 오센에 대한 비정함이 더해져 가오루가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 p.200

사람들의 입방아?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이따위 협박은 무시하자. 처음엔 그렇게도 생각했다. 그러나 응하든 무시하든, 상대는 앞으로도 계속 집요하게 나를 따라다닐 것이 뻔하다. 손전등 불빛이 만든 원 안에 기요지의 모습이 보였다. 상대도 손전등으로 날 비춘다. 그가 내게 다가와 걸음을 멈춘다. 무언가를 말하기 전,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머리를 향해 두 발. 서Walther P-38. 독일어를 할 수 있는 기쿠오는 이걸 ‘발터’라고 발음했지.
--- p.257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재미와 문학성, 완성도를 음미하다 보면
숨은 반전에 꼼짝없이 당할 것이다!


1952년 고베의 롯코산. 산 아래 지역보다 기온이 낮아 더운 여름을 보내기에 제격인 이곳에, 도쿄에 사는 데라모토 스스무가 여름방학을 맞아 놀러 온다. 스스무는 아버지 친구인 아사기 아저씨네 별장에 짐을 풀고 난 후 그의 아들인 가즈히코와 호리병 연못가에 갔다가 자신을 연못의 요정이라 칭하는 가오루라는 소녀를 만난다. 셋 다 열네 살 동갑내기. 스스무와 가즈히코는 가오루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마음을 빼앗겨 “두 사람이 동시에 고꾸라졌다가 함께 데구루루 굴러 떨어진 것 같은”(p.8) 첫사랑을 경험한다.

이들은 여름 내내 롯코산 곳곳에서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면서 우정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쌓아나간다. 그러는 사이에 고시바 이치조 회장, 롯코의 여왕, 히토미 고모, 기요지 삼촌 등 주변의 어른들이 등장해 아이들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부추기는 한편 이 어른들의 이야기 또한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작품을 이끄는 큰 축을 이룬다. 독일 베를린에서 만나는 고시바 이치조 회장 일행과 아이다 마치코의 이야기,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비밀스럽게 사귀는 호큐전철 차장과 히토미의 사연, 폭격이 이루어지는 선로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 등 어둡고 냉혹한 줄거리가 아이들의 풋풋한 이야기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까닭은 작가의 노련한 필력과 단단한 문장력 덕분이다. 흐르는 물을 따라가듯 쉽게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작가의 노림수에 꼼짝없이 당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청량한 청춘소설을 읽는 사이
어느새 흑백합의 비정한 향기에 사로잡힌다


『흑백합』의 또 다른 매력은 과거의 혼란스러웠던 특정 시기를 대변하는 장소와 인물들에 있다. 작품의 주된 배경인 롯코산은 전쟁 후 황폐해진 세상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솟아나는 장소를 상징한다. 지금의 롯코산은 나무 심기 운동 등으로 빼곡한 푸르름을 자랑하지만 전쟁이 막 끝난 당시의 롯코산은 “산의 표면이 여기저기 희끄무레하게 드러나 있”(p.15)는 애처로운 광경이다. 철재 공출로 로프웨이 역은 철거되는 등 황폐하기 이를 데 없는 산이지만 알고 보면 들꽃이 사방에 피어 있고 연잎이 표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연못이 곳곳에 위치해 사람들의 새로운 시작을 돕는 장소로 기능한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낯선 관계와 감정을 발견하고, 어른들의 사연은 생각지도 못했던 결말을 맺는다. 이는 과거의 묵은 일이 마무리되고 새로운 시작으로 나아간다는 상황을 암시한다.

또한 이 작품은 추리 소설치고는 그리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 않지만 인물마다 지닌 매력과 신비감이 상당한 소설이기도 하다. 당차고 솔직한 성격 이면에 복잡한 가정사로 외로움을 간직한 가오루와 표현력이 다소 부족해도 가오루와 가즈히코 사이에서 묘한 감정선을 드러내는 스스무, 약간의 허세와 유머 감각이 매력적인 가즈히코 세 아이들뿐 아니라, 여행도 유학도 아닌데 베를린에 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묘령의 인물 아이다 마치코, 전쟁 시기에 자신의 신념을 지켜가며 사업을 확장해가는 고시바 이치조 회장,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으로 운영 중인 찻집이 늘 호황을 이루는 미지의 인물 ‘롯코의 여왕’, 밝은 표정 이면에 불륜을 저지르는 남편을 쓸쓸히 바라보는 히토미 고모, 어린 히토미와 애정을 나누면서 히토미의 오빠인 기쿠오를 살해하는 미지의 인물 ‘차장’ 등 단순한 듯 보이는 대화와 문장에도 여실히 드러나는 매력적인 인물들이 작품을 한층 입체감 있게 만든다.

곳곳에 깔렸다가 말끔히 회수되는 복선,
읽을수록 새롭게 발견되는 상징


작가는 길지 않은 분량에도 독자를 옴짝달싹 못 하도록 붙들어놓을 만한 트릭을 곳곳에 치밀하게 심어놓았다. 인물들이 처음 만나는 장면 묘사부터 주고받는 대화, 무심히 지나치게 되는 설정까지 가볍게 읽히는 모든 문장이 알고 보면 치밀하게 구성한 반전을 수식하는 곁가지 역할을 한다. 아이다 마치코는 대체 누구이고 이 사람은 독일에서 올 어떤 관계의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롯코의 여왕은 어떤 인물인가? 현재 시점에서 히토미 고모의 곁에 과거 호큐전철의 차장이라 짐작되는 사람이 존재하는가? 두 번이나 벌어지는 살인사건의 범인은 누구이며 살인의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것은 감추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거듭된 반전은 처음부터 촘촘히 배치해놓은 복선으로 확인해볼 수 있으며,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홀린 듯 처음부터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지마 도시유키는 두 소년과 한 소녀의 사랑과 우정 이야기에 독자의 주의를 묶어둠으로써 마지막에 모든 것을 뒤집는 반전이 더욱 극적으로 다가오는 영리한 트릭으로 독자들의 뒤통수를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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