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감정, 판단, 행동을 지배하는 편견, 선입관, 망상의 메커니즘
남과 늘 비교하고 열등감에 괴로워하면서도 내심 자신이 낫다고 자위하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상식과 관습에 딴지를 거는 심리학과 인지과학의 이론들을 유쾌한 언어로 풀어낸 인간 심리 매뉴얼이다. 당신 뇌 속에 숨어 있는 39가지 착각의 기제를 알게 되면 당신 자신과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꿰뚫어 보게 될 것이다.
내가 해 봐서 아는데, 착각하지 마라!
어느 날 소개팅으로 한 쌍의 남녀가 만났다. 둘 다 체조 금메달리스트 양학선을 보고 [천방지축 하니]를 떠올렸단다. 알고 보니 어린 시절 둘 다 하니의 열혈 팬이었던 것. 이렇게 반가울 데가! 그와 그녀의 혈액형은 똑같이 B형. 어라, 쓰고 있는 핸드폰 기종도 같다. 점입가경으로 그의 모친 이름도 ‘영자’이고 그녀의 모친 이름도 ‘영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하늘이 맺어 준 천생연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 보자. 또래세대의 문화적 경험은 비슷할 수밖에 없고, 혈액형은 1/4의 확률로 같고, 세상에 같은 핸드폰을 쓰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고, 어머니들의 이름은 어머니 세대에 있어서는 흔한 이름일 텐데, 그 구슬들을 모두 하나의 줄에 꿰어 ‘인연’이라는 목걸이를 만든 게 아닐까? 다시 말해 같은 점에만 주목하고 다른 점에는 주목하지 않은 나머지 천생연분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논리적 오류인 ‘텍사스 명사수 오류’이다. 어설픈 총잡이가 헛간 벽을 향해 총탄을 갈긴 뒤, 총탄이 많이 맞은 곳을 중심으로 페인트로 과녁을 그려 명사수가 된다는 우화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우리 앞에는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무수한 정보가 펼쳐져 있는데 몇몇의 정보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면, 비로소 ‘의미’라는 과녁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뇌는 지름길을 아주 좋아한다. 성질 급한 우리의 뇌는 정보 처리속도를 늦추는 무질서한 상태를 가장 싫어한다. 그렇기에 무의미 속에서 의미를,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고야 마는 것이다. 텍사스 명사수 오류는 일례에 지나지 않는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즐비한 착각의 기제들이 삶 속에 태연하게 숨어 있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합리적이며 계산적이고 객관적인 이성의 힘을 자신한다. 그러면서 편견과 망상이 더께로 내려앉은 주관이라는 우물이 생긴다. 우물 속에서 맴도는 생각들은 우리를 점점 더 쉽고 편한 사고방식에 머물도록 길들인다.
왜 착각과 오해에 빠지는 걸까?
우리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우리는 기억이 녹음기처럼 재생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실상 기억은 너무도 쉽게 오염되는데도 말이다. 살면서 마주치는 새로운 정보는 우리의 기억을 변조하기에 열심이어서 법정의 증언 역시 100% 정확한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증인이 아무리 정직해도 그의 뇌가 기억을 조작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오정보 효과)
무의식의 영향도 크다. 내가 따뜻한 찻잔을 손에 쥐고 있다면, 맞은편 상대의 인상은 온화한 것으로 조작된다. 차가운 찻잔은 반대로 냉정한 인상을 심어준다. 청소용품 냄새가 나는 공간에서 사람들은 뒷정리를 훨씬 잘하고, 무거운 클립보드에 끼워 제출한 이력서는 면접관에게 더 진지하게 검토될 가능성이 높다.(체화된 인지 오류) 의식하지도, 계산에 넣지도 못하는 것이 바로 무의식의 영향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은 스스로에 대한 긍정적 자아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견고한 정신적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의 책꽂이도 웹브라우저의 즐겨찾기 목록도 트위터의 타임라인도 바로 그 결과물이다.(확증편향) 당신은 그것이 편협한 취사선택의 결과물이라고는 생각지 못한다. 인간은 모든 정보를 합리적으로 검토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친숙한 정보와 기존의 믿음을 뒷받침해 줄 만한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이고 나머지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 책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삶을 좌우하는 39가지 착각의 기제를 속속 파헤친다.
우리의 두뇌와 가슴을 뜨끔하게 만들 착각 사례들
■ 제3자 효과 : 최근 우리나라 행정안전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운전자 중 DMB 시청 경험이 있는 사람은 89%, 이에 대한 처벌에 공감하는 사람은 87.3%에 이른다. 운전 중 주의사항을 요하는 공익광고를 심드렁하게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대체 저토록 기본적인 사항도 지키지 않는 자가 누구인지 늘 궁금할 것이다. 결론은 이렇다. 다른 이들도 모두 당신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 우리는 타인을 관찰하듯, 자신을 관찰하지 못한다. ‘왜 대중은 저렇게 정치인과 광고, 바람둥이의 빤한 거짓말에 속는 걸까?’ 여기에 그 답이 있다. 당신도 대중의 일부라는 것.
■ 정상화 편향 : 홍수로 대피명령이 떨어졌을 때, 건물의 화재경보기가 울릴 때,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까? 살고자 남을 짓밟고라도 탈출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통계에 따르면 재난현장 인구 75%는 즉석에서 얼어붙고, 대피하지 않은 채로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극단적인 현실부정 상태에 이르는 것. 눈앞의 현실은 모조리 거짓이라고, 곧 괜찮아질 거라는, 지푸라기보다도 보잘것없는 한 가닥 믿음에 의존해 탈출을 거부하는 것이다. 탈출은 현실을 인정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 선택 지원 편향 : 아이폰과 갤럭시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이들은 과연 객관적이고 냉철한 비교분석을 근거로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첫째, 우리는 우리가 물건에 투자한 비용을 포기할 수 없다. 또 어떤 물건을 사용하는지가 나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덧없는 믿음을 품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느새 그 누구도 시키지 않은 대기업의 열혈 홍보대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 현재 편향 : 몸에 좋은 야채는 냉장고에 처박아 두고 레토르트 식품으로 저녁을 때운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정리의 유혹을 떨치지 못해 당장 해야 할 업무를 미루고 책상정리를 하느라 시간 내에 마감을 못한 경험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게 시간이 부족해서라고 믿는다면 잘못 짚은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욕망’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시기에 따라 선호하는 대상이 달라진다. 현재의 뇌는 어린아이와 같아서 미래를 앞당겨 생각할 줄 모른다. 미래의 시점이 현재로 다가왔을 때 다시금 우리는 일을 미룬다. 그러니 우리는 “뇌 속에 ‘현재’라는 색깔과 ‘미래’라는 색깔을 모두 가진 팔레트”를 지니고 미래의 열망을 깨닫는 사고에 능숙해야 한다.
■ 카타르시스의 오류 : 19C 말 20C 초, 과학과 대중문화의 슈퍼스타 프로이트는 정신이란 기묘한 대상을 관측하기 위해 개인적 이론과 추측으로 연구의 빈틈을 메워야 했다. 그의 대표적 이론 중 카타르시스 효과는 ‘화’를 일종의 수압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화는 흘러나갈 구멍이 생길 때까지 안에 계속 쌓이기에 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로 그럴까?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카타르시스에 대한 믿음 자체가 사람을 더욱 폭력적인 행동으로 이끈다고 한다. 뿐 아니라, 카타르시스는 마약과 같아서, 화를 표출하는 방식은 반복될수록 강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 초정상 해발인 : [플레이보이] 표지에 관한 놀라운 한 가지 비밀! 표지모델은 해가 갈수록 말라 가는데, 허리 너비가 엉덩이 너비의 70%를 이루는 비율은 반드시 유지되고 있다. 0.70은 진화 과정에서 자연스레 획득된 성적 매력의 기준점이다. 기묘한 건 0.60, 0.50의 비율에는 더욱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 정도 비율은 임신도 불가능하지만 가는 허리와 큰 엉덩이라는 섹스심벌에 익숙한 남성의 두뇌는 일종의 지름길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처럼 과장된 자극 요인을 ‘초정상 해발인’이라 부른다. 한 연구에 따르면 초정상 해발인으로 인해 인류는 점점 대식가가 되어 가고 있다. 20년간 오렌지 주스 한 잔은 40%, 접시는 25%까지 커졌다.
당신의 착각을 역이용하는 자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착각을 이용하려는 무리들이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점화효과는 가장 흔히 사용되는 상술이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에 불을 지피는 수많은 ‘점화 상술’이 세상에는 가득하다. 개개인의 내면에 호소하는 불분명한 언어들, 점술, 성격테스트, 혈역형 분석은 자기 얘기라면 솔깃해지는 인간의 ‘자기 위주 편향’을 노린다. 자기가 쓰는 물건은 비판하지 못하는 성향을 역이용해서 브랜드 충성도를 부추기는 대기업의 물밑공작도 빼놓을 순 없다. 통계보다는 스토리텔링에 약한 인간의 마음을 자극해 인기를 얻는 정치꾼도 그러하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우리가 착각의 메커니즘을 타고난 이상, 착각을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허약한 인간이 자신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존본능이며 필살기이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삐딱하게 세상을 보길 멈추지 말라고. 그를 통해 당신의 감정, 판단, 행동을 지배하는 편견, 선입관, 망상의 작동 방식을 감지하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