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대의 텍스트들이 선대의 텍스트에 대한 해설과 비판을 제공하게 된다는 점에서 텍스트는 일련의 지적체계를 이룬다. 어떤 것도 무(無)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축적된 지식은 후세로 전해지면서 변화하고 재해석되며 변형되기도 하지만 결코 뒤집히거나 폐기되지 않는다.
--- p.5
나는 이 책을 통해 일반 독자들이 그들이 마땅히 해야 할 만큼 여기 위대한 정치학 이론의 고전들을 접하는 데 도움을 얻기 바란다. 정치학 이론은 특별하지 않다. 인간은 정치적 삶이 겪는 현실의 딜레마를 통해 정치학 이론에 직면한다. 나는 정치학에서 이뤄지는 논변에 독자들을 자연스레 유도하려고 일상적인 표현, 거의 대화체에 가까운 문체로 글을 썼다. 특히, 수업시간에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더 잘 살리려고 종종 멈춰서 나를 가르치셨던 교수님들, 내가 가르친 학생들과의 경험을 즐겁게 돌아봤다.
--- p.8
당파적 관점에서 학생들의 정치적 견해는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나는 이 책의 독자들도 같은 태도로 대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견해가 어떻든지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게 이를 옹호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그 차이를 설명하지 않은 채 어떤 논제들(예를 들어 낙태)에 대한 개인적 선택의 자유를 극찬하면서 다른 논제(예를 들어 포르노)에 대한 개인적 선택의 자유를 거부할 수 없다. 만약 누군가가 사람들에게 정치적 권리가 평등하게 부여돼야 하지만, 소득, 건강, 교육에는 그런 평등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어디에 선을 그을지를 설명하는 평등에 대한 이론이 필요하다.
--- p.9-10
정치이론 연구는 정치 이상과 정치 현실을 구분하는 잘못된 기준선을 부정하지 않는다. 사실 정치이론 연구는 권력을 소유한 자들에게 어떻게 책임을 물을지에 관한 대화가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자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떤 사람, 심지어 가장 이기적인 정치적 목적이 있는 사람이라도 특정한 정치철학, 즉 권력을 추구하고 행사하는 목적에 대한 특정한 비전이 있다는 점이다.
--- p.13
정치철학자들은 정치인의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용어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사람들의 더 나은 본성을 향한 호소야말로 가장 강력한 정치적 힘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정의는 사람을 움직이고, 명분은 자극하며, 신념과 가치는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정치철학이란 결국 정치학의 실질적인 방향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사건이 계속해서 벌어지면, 시민은 사건의 가치가 무엇인지, 어떻게 꾸준히 이상을 실현할지 고려할 여유를 찾지 못하지만, 정치이론은 정의가 요구하는 일련의 질문을 제기할 공간을 제공한다.
--- p.14
정치이론의 성격은 본질적으로 현실 만족적이라기보다는 체제 전복적이다. 내가 논하게 될 위대한 철학자들은 모두 정치에 사람들의 힘겨운 선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사고한다고 해서 그런 선택이 조금이라도 쉬워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위대한 철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사고하려면 그런 선택은 불가피하다. 아마도 그것이 오늘내일의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연구가 끝나기도 전에 정치로 인해 언젠가 자신도 행동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연구한다.
--- p.18-19
정치학은 플라톤의 동굴에 깊숙이 묻혀 있었고, 때로는 그럴 운명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어두운 곳에 빛이 비치기를 바라며 우리는 오랫동안 그 동굴의 지도를 만든 고전을 살펴본다. 이런 공부가 절망이나 체념일 필요는 없다. 모든 동굴에는 출구가 있다고 약속하는 대안 관점이나 비평을 가능케 할 수 있다.
--- p.519
정치철학 연구는 첫 번째로 언제나 소크라테스의 운명을 기억하고, 플라톤이 걸었던 길, 즉각적인 정치 참여를 피하는 우회로로 인도한다. 그러나 우회로로 간다고 해서 우리를 동굴에 가두거나 상아탑에서만 살게 할 필요는 없다. 정치적 주장을 하려고, 그리고 그에 따라 살려고 우리는 정치적 주장을 공부한다.
--- p.520
홉스는 종교 내전으로 상처 입은 영국을 위한 치료책을 탐색했다. 그러나 그는 선조가 자기 시대에 평화를 어떻게 추구했는지를 연구하면서 그의 시대가 겪는 병폐에 대한 통찰력을 심화했다. 루소는 자기 고향인 제네바의 엄격한 삶의 방식에 대한 동경과 새롭게 파리가 제공하는 사치를 수용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이 모범으로 스파르타나 아테네 사이에서 결정한 선택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듯이, 그는 금욕적인 제네바와 미학적인 파리 사이의 선택이 정치사에서 어떻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 p.553
정전(正典)은 새로운 것과 과거의 것 사이에서 대화를 유지하는 한 살아남는다. 플라톤이나 아우구스티누스 혹은 마키아벨리의 글을 읽는 것은 예컨대, 도시국가의 정치 세계, 제국, 신, 황제, 자연권, 사교 예법, 귀족 규범과 같은 친숙하지 않은 세계로 들어간다는 점에서 언제나 어떤 의미-좋은 의미-를 갖는다. 사람들은 계속되는 정치적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고전 정치이론 작업에 기대고 또 기대지만, 이때 이상하거나 거리감이 느껴지거나 친숙하지 않은 모든 것을 배제하려는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도전적이고 불안정한 대안을 동반하는 널리 퍼진 지혜를 직면함으로써 인간을 흔들어놓는 고전학자들의 ‘타향성(foreignness)’이다.
--- p.554
정치이론의 대단한 장점은 정치적 이상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여러 관점을 서로 마주하게 한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이상을 실현하는 실천적 어려움에 닥치기도 전에 자신의 믿음이 어떤 것인지, 그 이상을 실현하려 할 때 부딪히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용감히 맞설 만한 가치가 있는 정의로운 사회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찾아야 하는 개념적 어려움에 직면한다.
--- p.559
학생도 선생도 다가왔다가 사라진다. 이전 세대가 활용하거나 창조한 지식을 이후 세대가 토론하고, 비판하고, 도전하고, 보호하고, 또한 풍부해진다. 로크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우리가 전 세대들로부터 받았던 것처럼 미래 세대의 학생과 선생들에게 “그만큼 좋은 것을 그만큼의 양”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항상 그랬듯이 좋게든 나쁘게든 변화할 것이다. 그리고 밝히고자 하는 사건에 따라 정전도 변해야 한다. 그러나 때때로 새로운 것을 평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래된 것을 연구하는 것이다. 헤겔은 퇴임하면서 철학이 늦을 수밖에 없다는 비극을 지적하며,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진 후에야 날개를 펴며, 우리는 시행했던 정치가 점점 질 때가 다 돼서야 그 정치를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우선 새로운 것에 눈을 뜨고 있어야만 오래된 것으로부터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 선생은 지혜의 이런 간극을 좁히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학생들은 그럴 능력이 있고 언제나 그랬듯이 해냈다.
--- p.5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