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이며, 무엇을 할 것인가?
삶의 근본적인 물음에서 시작된 동양철학의 정수
동양철학이란 무엇일까. 영어로 필로소피(philosophy),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의 서양철학과 달리 일반적으로 동양철학이라 불리는 중국철학은 엄밀한 의미에서 도학에 가깝다. 도를 깨닫는 것이 목적인 동양의 사유들은 도를 깨우치는 데 필요한 것은 지혜가 아닌 수양을 통한 덕이라 믿었다. 동양철학의 주축이 되는 이 사유들은 춘추전국시대에 탄생하였으며, 이는 중국 문화의 틀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현재까지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른바 ‘제자백가’, ‘백가쟁명’이라 일컬어지는 사상이 왜 이 시기에 탄생했을까.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나. 이것이 《동양철학 에세이》1권에서 말하는 핵심이다.
중국 역사상 사회·정치적으로 가장 큰 혼란기였던 춘추전국시대. 그 격변기의 무질서함을 바로 잡고자 몇몇 사상가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한다. 그 시작이 바로 소크라테스, 예수, 석가와 더불어 세계 4대 성인으로 꼽히는 공자. 공자의 사상은 2500여 년에 걸쳐 인류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그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아시아 여러 나라 문화의 중심을 이끈 유가 사상의 대표자이다. 그 사상의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를 필두로 사상가 노자, 묵자, 장자, 맹자, 순자가 자신의 실천적 철학을 제시하였고, 더불어 법가, 명가, 농가, 주역의 사상이 시대마다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궁극적인 뜻은 단 하나, ‘어떻게 살 것이며, 무엇을 할 것인가’였다. 그들의 사상 속에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논리와 함께 강한 실천 의지가 담겨 있다. 이 책은 올바른 시각으로 동양철학을 쉽게 이해하고,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이 공간을 좀더 살 만한 곳으로 바꿔 보려는 사람들에게 정신을 단련하고 주변 사람들을 깊이 이해하는 데 밑거름이 되어 줄 교양서이자 필독서이다.
시리즈로 재탄생한 동양철학 입문의 고전 《동양철학 에세이》개정증보판 출간
1993년에 처음 출간되어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독자가 찾고 있는 스테디셀러 《동양철학 에세이》1권의 개정판이 2권 출간과 더불어 시리즈로 새롭게 선보인다. 대학 신입생과 일반인들의 동양철학 입문서로 기획되었던《동양철학 에세이》1권은 세월이 흐르면서 독자 연령층이 점차 낮아져 이제는 중고등학생들이 즐겨 읽는 책, 중고등학교 교사들이 추천하는 책(‘전교조’ 추천도서,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권장도서 등)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동양철학 에세이》1권 개정판에서는 편집과 디자인에 변화를 주었다. 《동양철학 에세이》가 동양철학(정확히는 중국 고대철학)에 입문하고자 하는 일반인은 물론이고 중고등학생에게까지 널리 사랑받아 온 것은 지은이들의 균형 잡힌 시각과 친절한 ‘강의체’ 때문이다.
지은이들은 책에서 우리 의식과 생활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지만 자세히 알지는 못했던 공자 맹자 노자 장자 순자 법가 주역을 비롯하여, 비교적 덜 알려진 묵자 명가 농가 같은 제자백가의 주요 사상을 차근차근 소개한다. 하나의 사상이 탄생하게 된 사회역사적 배경과, 그 사상에서 중심 역할을 한 인물의 일생을 소개한다. 또한 사상의 핵심 주장과 당대에 그 사상이 가졌던 의미를 설명하는 동시에, 견해가 편향되지 않도록 오늘날의 시각에서 본 사상의 한계와 모순을 짚어낸다. 또한 공자와 맹자, 공자와 노자, 노자와 장자, 공자와 묵자, 맹자와 허행(농가), 순자와 한비자(법가) 등 각 사상의 다른 점과 공통점도 이야기하여 각 사상을 비교한다. 한 편 한 편 읽어가다 보면, ‘동양철학은 고리타분하고 지루하다’, ‘동양철학은 뭔지 몰라도 신비롭고 심오하다’와 같은 편견이 조금씩 사라지고, 2500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 여기’에서의 생생한 철학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책속으로 추가
춘추 전국 시대의 혼란은 이기심에서 왔습니다. 이기심은 본질적으로 차별적인 사랑을 낳으며, 차별적인 사랑은 자기 자신, 자기 집안, 자기 나라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묵자는 지배 집단의 차별적 사랑 때문에 생긴 침략 전쟁의 물결을 거슬러서 무차별적 사랑에 기초한 전쟁 반대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사실 묵자의 전쟁 반대론은 겸애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쟁을 반대한다고 외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강력한 구호도 작은 실천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묵가 집단은 그러한 전쟁에 맞서는 방어 전쟁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고, 방어를 위한 무기들을 새롭게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어떤 학자는 묵가 집단의 이런 모습을 가리켜 방어전을 위한 전쟁 청부업이라고도 했습니다.
묵자가 전쟁을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전쟁이 파괴적이고 비생산적이며, 개인의 사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묵자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전쟁을 벌이는 지배 집단을 도둑에 비유했습니다. 남의 집에 들어간 좀도둑이 처벌을 받는 것과 달리, 남의 나라를 침략한 큰 도둑은 오히려 칭찬을 받는다고 비난했습니다. 또 죄 없는 사람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고 열 사람을 죽이면 인간 백정이 되는데, 전쟁을 일으켜 수만 명을 죽인 자는 도리어 영웅이 되니 어찌 된 일이냐고 했습니다. ……
묵자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집단을 만들었고, 강자에 맞서 싸우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묵자는 혁명을 꿈꿀 수 없었습니다. 이 점은 그의 사상에 혁명적 요소가 있다는 사실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묵자가 피지배 계층에 의한 혁명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공격 전쟁을 의미하게 되고 공격 전쟁은 겸애에 어긋나는 것이니, 스스로 자기 철학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부정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 점이 묵자의 꿈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내부 요인입니다.
그러나 더 큰 원인은 다른 데 있는 것 같습니다. 묵자 사상은 사회주의는 아니지만 사회주의와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우리는 1990년을 전후하여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을 보았습니다. 사회주의는 인간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면서, 헌신적인 자기희생과 꿋꿋한 도덕성을 바탕으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인간 내면에는 또 다른 욕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기심입니다. 사회주의는 강한 조직력과 이성적 판단에 근거하여 지탱되었고, 경험과 실천이 그 사회의 추동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직력에 틈이 생기고, 그 틈을 이기적인 욕구가 뚫고 나왔을 때 사회주의는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묵자도 이성에 호소함으로써 묵가 집단을 강철 같은 대오로 이끌어 갔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하늘의 뜻이라는 외피도 있었지만, 주된 동력은 이상 사회에 대한 갈망과 꿈이었고, 이를 통해 내적 성실성과 아울러 외적인 배척력을 함께 가질 때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즉 팽팽한 긴장이 강한 단결력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춘추 전국의 혼란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었습니다. 혼란의 종말은 지배 집단의 몰락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강화하였습니다. 혁명 이론이 없는 묵자의 철학이 이런 상황에서 더는 지탱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틈을 이기적 욕구가 그대로 놓아둘 리도 없었습니다. 결국 2500여 년 전 중국의 획기적인 사상은 꿈으로 남았던 것입니다. (본문 94~1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