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지도 싸지도 않고, 털도 안 빠지는 고양이가 단돈 삼백 원?!!
어때요? 하나쯤 갖고 싶지 않나요?
생명이 생명을 위로하지 않는 메마른 시대,
자동판매기에서 팔리는 고양이와
그 고양이를 사는 아이가 들려주는
진정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
어느 날 밤, 한 아이가 편의점 옆 어두운 골목에서 엉뚱한 자판기를 발견한다. 자판기에서 귀여운 애완동물을 판다고? 그것도 단돈 몇 백 원에? 아이라면 누구나 솔깃할 만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 솔깃한 유혹의 대가는 생각보다 더 비싸다.
이 작품은 자동판매기에서 파는 ‘컵 고양이’를 우연히 사게 된 아이가 겪는 하룻밤의 사건을 통해 생명의 가치와 진정한 관계의 의미를 묻는 문제적 동화다. 『귀서각』, 『뿔치』 등 새로운 영역의 판타지 작품을 선보이며 문학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작가 보린이 이번에는 컵 고양이라는 충격적인 소재와 외로움이 일상이 된 요즘 아이들의 정서를 그대로 살려 낸 생생한 문장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진짜 자기 마음을 숨기는 법을 먼저 배운 아이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컵 고양이 후루룩을 만나고 나서야 자기 마음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외로운 아이의 마음을 가득 채워 버린 고양이의 마지막 모습은 아이뿐 아니라 독자들까지 얼어붙게 만든다. 살아 있다는 건, 그리고 살아 있는 생명과 생명이 만난다는 건 어떤 거냐고, 컵 고양이는 조용히 우리에게 묻는다.
1. 작품의 줄거리
일주일에 서너 번씩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을 사다가 저녁밥 대신 먹는 진이. 이모가 알면 잔소리 폭탄이 떨어지겠지만 밥보다 컵라면이 맛있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라며 어두워진 길을 따라 편의점으로 향한다. 그런데 그날따라 편의점 옆에 알롱달롱한 불빛을 내뿜는 자판기 한 대가 눈에 띈다. 자판기에는 컵라면처럼 뜨거운 물만 부으면 3분 만에 귀여운 애완동물이 나온다는 엉뚱한 글이 붙어 있다. 호기심에 고양이가 그려진 컵 하나를 뽑아 집으로 돌아와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리자 정확히 3분 뒤, 컵에서는 주먹만 한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나온다. 진이는 컵에서 나온 아기 고양이에게 ‘후루룩’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동생처럼 돌보기로 한다. 컵에서 나온 고양이 후루룩은 과연 어떤 고양이일까?
2. 작품의 특징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고양이에게 숨겨진
날카로운 발톱 같은 이야기
『컵 고양이 후루룩』은 가장 완벽한 애완동물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애완동물은 컵에서 나온 아기 고양이다. 컵라면처럼 컵에 뜨거운 물을 붓고, 3분을 기다리면 나오는 고양이라니, 당연히 인형이나 장난감 비슷한 것이겠거니 생각하지만 3분 뒤 모습을 드러낸 고양이는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다. 주먹만 한 크기에 생긴 건 말할 것도 없이 깜찍하고, 말을 걸 때마다 꼬박꼬박 “야웅.” 하고 착하게 대답도 한다.
그런데 이 고양이를 지켜보다 보면 장난감 고양이로만 여겼던 처음의 마음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마치 살아 있는 고양이와 함께 있는 것 같은 신기한 기분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이 고양이의 주인인 진이만 느끼는 특별한 감정이 아니다. 작가는 고양이와 진이를 바라보는 독자까지 이 이야기 속으로 깊숙이 끌어들여 결국에는 진이가 느꼈을 만큼의 강한 충격으로 ‘컵 고양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 고양이는 왜 자판기에서 나왔을까?
편리함 속에 가려진 생명의 의미
『컵 고양이 후루룩』은 편의점과 그 옆에 놓인 자판기, 그리고 컵라면과 같은 일상적인 소재와 배경을 통해 편리함 속에 가려진 ‘관계의 부재’를 드러내는 이야기다. 편의점에는 저녁에 혼자 와서 컵라면을 사 먹는 아이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뭐든지 파는 편의점은 끝없이 이어지는 소비만 있을 뿐, 따뜻한 관계는 찾아보기 힘든 공간이다. 이처럼 도시의 편리함 뒤에는 차가운 무관심이 동시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차가운 무관심은 생명의 의미마저 무감각하게 만든다. 작가는 24시간 언제라도 소비가 가능한 편의점과 자판기를 통해 생명조차 쉽게 소비되는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한다. 지금도 마트에 가면 빗자루와 같은 생활 용품과 나란히 애완동물들이 진열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휴지를 반값에 팔듯, 어느 날은 거북이나 달팽이가 반값에 팔리기도 한다. 자판기에서 나오는 컵 고양이는 장난감이 되어 버린 애완동물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암울한 판타지다.
살아 있는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생각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그래서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생명이 있는 애완동물은 쉽게 사서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아니라는 것을 작가는 자판기에서 나온 고양이를 통해 이야기한다.
털 안 빠지는 고양이와 말 잘 듣는 아이의 상관관계
맨날 혼자 있는 게 싫어 고양이 한 마리만 키우면 안 되느냐고 말을 꺼낸 진이에게 이모는 ‘먹지도 싸지도 않고, 털도 안 빠지는 고양이가 있다면 또 모를까, 꿈도 꾸지 말라’며 잔소리를 퍼붓는다. 문장은 경쾌하고, 이야기는 가볍게 흘러가지만 ‘먹지도 싸지도 않고, 털도 안 빠지는 고양이’가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아빠와도 헤어지고 이모에게 얹혀사는 진이는 집 안을 어지르거나 떼를 쓰는 것과 같은 아이다운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모가 집에 들어올 시간에 미리 알람을 맞춰 놓고 집 안을 정리한 뒤, 컴퓨터를 끄고 책 읽는 시늉을 하며 ‘말 잘 듣는’ 조카로 변신한다. 그래야 하루가 평화롭게 끝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이의 모습은 마치 이모가 바라는 ‘털 안 빠지는’ 고양이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둘 다 누군가의 뜻에 따라 본래 자기가 갖고 있던 모습을 바꾼 자연스럽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진이가 ‘털 안 빠지는’ 고양이 후루룩에게 마음을 주면 줄수록, 진이의 외로움은 더 진하게 드러난다. 어느 누구한테도 자기 마음을 풀어놓을 곳 없는 외로운 아이를 보며, 진정한 관계는 자기가 편한 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그대로 봐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단순한 진리가 아프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