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로스가 지닌 약점의 위치는 생물학적으로 정해졌다. 기원전 410~400년 무렵에 히포크라테스가 방혈防血에 대해 저술한 바에 따르면, 발목의 굵은 혈관은 환자의 혈액을 고의로 방출시키기에 알맞은 자리였다. 이런 방혈은 전통적 치료법이었다. 또한 기원전 345년 무렵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저술에는 인간의 주요 혈관이 머리에서 발목까지 이어지며, 외과의는 방혈을 위해 발목을 고른다는 의학 저술가 폴리보스의 글이 인용돼 있다. (…) 기원전 5세기에 이미 신화 기록자들과 예술가들은 탈로스의 ‘혈관’을 봉인하는 못을 가장 논리적인 자리에 위치시켰다. 인간의 혈관 체계에 따르면, 발목은 피가 가장 잘 흐른다고 알려진 곳이다. 그래서 메데이아가 그곳을 파괴하자 로봇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피를 잃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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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불사를 얻는 것은 심각한 불안을 야기한다. 인간과 달리 불사의 신들은 변하거나 무엇을 배우지 않는다. “불사의 존재에게는 모든 것이 쉽다”고 고전학자 데보라 스타이너는 말한다. 몇몇 예외를 빼면, 신들은 “눈에 띄는 노력이나 압박이 없이” 행동한다. 위험과 죽음의 위협이 없는데 자기희생, 용맹함, 영웅적인 노력, 영광 등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공감 능력과 마찬가지로 이런 미덕들 역시 분명히 인간의 이상理想이다. 이런 이상들은 고대 그리스와 같은 전사戰士 문화권에서는 특히 중요하다. 그리스 신화에서 불사의 신들과 여신들은 강한 권능을 지녔지만, 아무도 신들을 용감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본성상 죽지 않는 신들은 어떤 일을 해도 위험을 감수할 수가 없고, 대처하기 어려운 역경이 없으므로 그에 맞서 영웅적으로 싸울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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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다이빙 벨과 비행 기계를 ‘조종하는’ 그림은 1000년부터 1600년까지의 필사본, 모자이크, 조각상, 태피스트리 등에 수백 가지 모습으로 등장한다. 쇠와 유리로 제작된 다이빙 벨의 기술적인 구조와는 달리, 그의 비행 기계는 독수리나 그리핀 등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하얀 새 두 마리가 끄는 힘으로 움직이는데, 이들은 자기들의 머리 위로 뻗은 창槍에 매달린 말의 간을 먹으려고 날아오른다. (…) 알렉산드로스는 점점 더 높이 날아오르고 공기는 점점 더 차가워진다. 그가 땅을 내려다보자, 땅은 푸른 대양이라는 주발 속의 작은 공과 같으며, 하늘의 광대함에 비하면 정말로 하찮아 보인다. 이 장면은 놀랄 정도로 예지력이 있는 것으로, 현대 우주 비행사들 및 우주 공간에서 작고 푸른 행성 지구를 찍은 사진을 처음으로 본 사람들의 겸손한 반응을 미리 보여 준다.
--- p.144~145
기원전 44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당하면서 로마는 혼란에 빠졌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의 난자당한 시신이 보이지 않게 잘 가려 놓은 관대 위에 올라가서 저 극적인 추모 연설을 했다. 역사가 아피아누스는 『내전』에서 이 연설이 대중에게 미친 영향을 서술했다. “극단적인 열정”에 휩쓸리고 “일종의 광신적인 열광에 빠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가 몸에 걸쳤던 옷을 창끝에 꽂아 높이 들어 올려서 단도에 찔려 구멍나고 유혈이 낭자한 천 조각을 모두가 볼 수 있게 했다. 조문객들은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하지만 연극적 연출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모습을 감춘 배우 한 사람이 카이사르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자기를 살해한 사람들의 이름을 차례로 불렀고, 이는 청중을 더욱 애끓게 만들었다. 그런 다음 난자당한 카이사르의 시신이 천천히 관에서 몸을 일으켰다. 밀랍으로 만든 이 모형은 스물세 군데에 달하는 잔인한 칼자국을 고스란히 보여 주었다. 이 카이사르 모형이 “기계 장치에 의해 회전하면서 그 가엾은 모습을 보여 준” 것이 이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슬픔과 분노로 미쳐버린 청중은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원로원으로 달려가 불을 지르고, 이어서 암살자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불을 질렀다. 피가 흐르는 카이사르의 모습을 한 밀랍 인형이 등장하는 장면은 그의 지지 세력이 민중을 조종하려고 꼼꼼히 연출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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