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예술은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세상에 질서를 만들기 위한 시도였다. 이해할 수 없는 이 세상에 대해 그는 확고한 이론에 기초한 예술가의 단호한 의지로 맞섰고, 개성이 결여된 세상에 대해 섬세한 감성과 자신만의 열정으로 맞섰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과 멀어지려고 하거나 현실의 고통에 굴복하고 체념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현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그에게는 예술이야말로 자신에게 그토록 냉혹했던 세상을 받아들이는 수단이었다.
--- p.7, 「반은 수도자, 반은 예술가|초기 네덜란드 시절 1881-1885」 중에서
1885년 11월 말에 반 고흐는 〈감자 먹는 사람들〉만 가방에 넣은 채 안트베르펜에 도착했다. 파리로 가기 위해 벨기에의 유명한 항구 도시인 이곳에 잠시 머무른 것이다. 그러나 이 체류는 반 고흐의 창작 활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 시기에 반 고흐는 그를 둘러싼 칼뱅주의적인 엄격함에서 벗어나 한껏 창조적으로 도약한다. 이후 2년 동안은 초기에 그렸던 어둡고 우수에 잠긴 농촌을 벗어나, 새롭고 진보적이며 전위적인 그림을 그리게 된다.
--- p.17, 「파리의 수련 기간|안트베르펜과 파리 시절 1885-1888」 중에서
그림의 배색 효과는 색조의 미묘한 차이에 근거를 두었지만, 그림에 나타난 붓 자국은 현실의 모습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풍요로운 노랑, 빛나는 빨강은 이제 더 이상 외양을 그리는 차원이 아니다. 색은 현실에 대한 화가의 인간적 표현이고, 그 자체만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인 것이다. 빛과 그림자, 색의 반사와 굴절이 의도적으로 부드럽게 표현되는데, 이는 단순한 상상이 아닌 실제의 지각 작용과 연결되어 그림에 나타난다. 어떤 색을 선택하게 되는 이유는 실제의 색과 똑같아서가 아니라 표현의 강렬함을 부각하기 때문이다.
--- p.35~36, 「색채의 폭발|아를 시절 1888-1889」 중에서
반 고흐에게는 그림만이 그를 삶에 연결시켜 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이 시기에 그린 그림은 병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강렬한 느낌을 준다. 그는 격렬한 창조의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으려는 의지로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이고, 그도 그런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 그림들은 고통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고, 지속적인 작업으로 발작을 막아보려는 시도이며, 자신의 격렬한 감정들을 배출시킬 안전판이기도 했다.
--- p.66, 「삶 자체인 그림|생레미와 오베르 시절 1889-1890」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