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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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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6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212쪽 | 392g | 145*210*20mm
ISBN13 9788954638401
ISBN10 895463840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첫째 날, 읽다
_위험한 책 읽기

둘째 날, 읽다
_우리를 미치게 하는 책들

셋째 날, 읽다
_책 속에는 길이 없다

넷째 날, 읽다
_‘거기 소설이 있으니까’ 읽는다

다섯째 날, 읽다
_매력적인 괴물들의 세계

여섯째 날, 읽다
_ 독자, 책의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작가의 말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독서는 왜 하는가? 세상에는 많은 답이 나와 있다. 나 역시 여러 이유를 갖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독서는 우리 내면에서 자라나는 오만(휴브리스)과의 투쟁일 것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읽으며 ‘모르면서도 알고 있다고 믿는 오만’과 ‘우리가 고대로부터 매우 발전했다고 믿는 자만’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렇게 독서는 우리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흔들게 된다. 그렇다면 독자라는 존재는 독서라는 위험한 행위를 통해 스스로 제 믿음을 흔들고자 하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직접 경험하거나, 모든 것을 사실적으로 기술한 이론서나 설명서를 읽고 이해하는 세상은 정말 작은 부분이다. 지와 무지의 관점에서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우리는 라만차라는 시골 동네의 돈키호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흔히 환상에 빠져 현실을 잘못 보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환상이고, 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일까? 인간이 그것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을까? 오히려 현실에 너무 집착해 자기 내면의 정신적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 문제는 아닐까?

세상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한 대부분의 것들을 이야기로부터 배웠고, 그것을 기준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그 해석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인간이라면, 그런 인간은 과연 무엇일까? 그렇다. 인간이 바로 이야기다.

책을 읽는 매 순간, 우리는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조금 더 읽겠다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렇게 해서 한 권의 책을 끝내게 된다. 완독이라는 것은 실은 대단한 일이다. 그만 읽고 싶다는 유혹을 수없이 이겨내야만 하니까.

좋은 독서란 한 편의 소설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작가가 만들어놓은 정신의 미로에서 기분좋게 헤매는 경험이다.

우리는 화폐경제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교환이 불가능한 것들은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정말 소중한 것은 교환이 불가능하다.
한갓 독자에 불과한 내가 작가의 무의식을 파헤치려고 노력하고, 소설을 작가가 읽기를 원한 대로 읽지 않으려 애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소설을 읽는 행위가 끝없는 투쟁이기 때문이다.

독자로 산다는 것에 현실적 보상 같은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짧은 생물학적 생애를 넘어 영원히 존재하는 우주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 잠시나마 그 세계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독서의 가장 큰 보상일지도 모른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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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르면서 안다고 쉽게 믿는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를 다 읽은 사람은 몇이나 될까.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용어를 통해 어렴풋이 알고 있는 바대로 서술되어 있을까. 고전에 대한 지식은 교양의 잣대이기도 하지만 정작 고전을 완독한 사람은 찾기 어렵다. 통용되는 상식에 따라 대략의 줄거리 정도는 직접 읽지 않아도 안다. 그러나 고전을 고전이라 할 때, 그것은 그 줄거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시대와 언어, 국경을 뛰어넘어 오랜 세월 살아남은 책, 즉 고전의 생명력은 오히려 참신한 서술기법과 연출에 있다. 진부할 법한 이야기가 전혀 새로운 옷을 입고 나타나 긴 시간 동안 무한히 변주될 때 바로 그 이야기를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소설이나 영화 또한 아직 그 자장 안에 머물러 있다. 고전은 따라서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오로지 독서만이 이런 상식과 교양의 착각과 오해를 해체한다.

독서는 왜 하는가? 세상에는 많은 답이 나와 있다. 나 역시 여러 이유를 갖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독서는 우리 내면에서 자라나는 오만(휴브리스)과의 투쟁일 것이다. 나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읽으며 ‘모르면서도 알고 있다고 믿는 오만’과 ‘우리가 고대로부터 매우 발전했다고 믿는 자만’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렇게 독서는 우리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흔들게 된다. 그렇다면 독자라는 존재는 독서라는 위험한 행위를 통해 스스로 제 믿음을 흔들고자 하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_본문 28~29쪽

어디까지가 환상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일까

‘돈키호테 같다’는 말은 환상이나 비현실적인 것을 좇아 무모하게 도발하는 인물이나 성격을 가리킬 때 쓰인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애초에 ‘책에 미친 자’였다. 기사소설이라는 기사소설은 모조리 읽은 후 그것을 현실로 착각하기에 이른 자. 『마담 보바리』의 주인공 에마 보바리 역시 로맨스 소설에 푹 빠져 소설처럼 달콤하면서도 치명적인 연애를 꿈꾸다 비참한 최후를 맞는 인물이다. 에마 보바리도 돈키호테처럼 이야기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다. 미드 [빅뱅 이론]의 오타쿠적 캐릭터들은 또 어떤가. 그들 역시 마블코믹스에 푹 빠져 그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하려 든다. 지나치게 책에 빠져든 나머지 현실과 이야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자들은 그저 정신병리학적 증세에 시달리고 있는 것일까? 이야기는 독서하는 인간의 삶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책은 온순한 사물이 아니다.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서운 사물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간을 감염시키고, 행동을 변화시키며, 이성을 파괴할 수 있다. 책은 서점에서 값싸게 팔리고, 도서관에서 공짜로 빌릴 수 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은 물건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떤 책에는 주술적인 힘이 서려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책은 곳곳에서 금지당하고, 불태워지고, 비난당했다. _본문 56~57쪽

읽기의 기쁨과 고통

우리는 소설을 읽을 때면, 첫 장을 넘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전개될 이야기를 예측하고 결론에 어서 다다르고자 조급해한다. 예측은 맞을 때도 틀릴 때도 있다. 예측대로 이야기가 풀려갈 때 기뻐하기도 하지만 예측과 다를 때면 내용 전개가 비현실적이라 분노하며 책을 덮기도 한다. 그러나 책이 우리의 예측을 조금씩 빗겨나갈 때 우리는 스릴을 맛보기도 한다. 독자인 우리는 처음부터 의심하며 읽는다. 작가 혹은 작품의 의도를 짐작하기도 하고, 작품에 압도당하기 원하면서도 쉽사리 설득되려 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다 읽기를 포기하고 덮어버린 책과 마지막 페이지에 닿을 때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책이 있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소설 읽기는 그런 의미에서 끝없는 정신적 투쟁이다.

한갓 독자에 불과한 내가 작가의 무의식을 파헤치려고 노력하고, 소설을 작가가 읽기를 원한 대로 읽지 않으려 애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소설을 읽는 행위가 끝없는 투쟁이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소설은 일종의 자연이다. 독자는 그것의 일점일획도 바꿀 수 없다. 그 자연을 탐험하면서 독자는 고통과 즐거움을 모두 느낀다. _본문 132쪽

우리의 작은 우주는, 우리가 읽은 책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 김영하는 우리의 내면을 크레페케이크에 비유한다. “일상이라는 무미건조한 세계 위에 독서와 같은 정신적 경험들이 차곡차곡 겹을 이루며 쌓이면서”(102쪽) 정신적 세계가 형성되어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읽은 책이, 이야기가 결국 한 사람의 사고와 행동을 결정한다고 한다면 “인간이 바로 이야기”(67쪽)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내가 읽은 것들이 작가로서 내가 쓸 수 있는 것을 결정했다”고 고백한다. 작가이자 무한한 ‘책의 우주’를 탐사하는 독자로서 김영하는,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로 이어지는 책들의 미로에서 기분좋게 길을 잃어보자고 우리를 매혹하고 있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 그것은 인간이라는 어떤 우월한 존재가 책이라는 대량생산품을 소비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라는 이야기가 책이라는 작은 틈을 통해 아주 잠깐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세계와 영겁의 시간에 접속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인간이 바로 이야기이고, 이야기가 바로 우주다. 이야기의 세계는 끝이 없이 무한하니까.
_본문 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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