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대한 마음속 이미지를 모방해 현실의 이미지로 바꾸고 그 이미지와의 교감을 통해 현실을 바꾸는 것, 주술은 이러한 관념을 모태로 출발한다. 주술에서 태어난 예술은 이미지를 현실로 바꿔주는 매개 장치인 셈이다. 아니, 어쩌면 현실을 바꾸는 부적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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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는 존재하지만 쉽사리 개념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개녀므이 틀을 끊임없이 벗어난다. 이러한 점 때문에 개념의 틀로 보아서는 하나의 모순, 또는 아이러니로 드러날 뿐이며 그 의미를 포착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한낱 말장난 이나 유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부처가 들어올린 연꽃을 보고 웃었던 가설을 생각해보자. 말할 수 없는 것을 보고 웃었던 가섭을 생각해보자. 부처는 존재하는 것의 본체를 느꼈을 뿐 설명할 수 없었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부처는 한 송이 연꽃을 들어올린 것이다. 이것이 상징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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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금속에서 황금을 얻는 방법으로, 화학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연금술은 흔히 지상에서 고귀한 금속을 얻는다는 물질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생겨난 비과학적인 화학 체계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오늘날의 관점을 과거에 접목시킨 반쪽의 이해에 불과하다. 물론 연금술의 목적은 황금을 추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황금은 물질적인 황금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황금, 곧 영적인 완성을 의미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연금술의 원리와 과정은 물질계에 사로잡혀 있는 영혼이 어떻게 스스로를 극복하고 다음 단계로 상승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16세기의 연금술사인 파라켈수스는 모든 종류의 물질은 수은과 유황, 소금 이 세 가지 물질로 환원될 수 있으며 이들의 결합을 통해 황금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은과 유황은 모두 휘발성 물질이다. 그러나 수은은 물로 화하고 휘발되지 않으며 안정되어 있는 물질이다. 연금술사들은 이 세 가지 물질에서 정신과 영혼과 육체, 그리고 물과 공기와 흙을 보았다. 수은과 유황은 각각 달과 태양, 여성과 남성, 음과 양, 수동성과 능동성 등의 대극을 나타낸다. 수은과 유황의 결합이란 서로 반대되는 속성을 가진 물질의 결합이면서 그것으로 상징되는 우주의 두 가지 힘의 결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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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이 부여하고 있는 예술의 존재방식이란 그것이 '오로 지' 예술이어야 하며 인간 문화의 다른 영역과는 관계없는 것이 어야 한다는 결벽증적인 것이다. 예술의 이러한 자기 규정은 소위 예술의 자율성, 순수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그리고 순수성을 지키지 못하고 다른 영역을 넘보는 예술은 저급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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