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를 뒤흔든 최대의 정치·외교적 사건이었다. 한반도는 6월 13일 오전 10시 27분 평양 순안공항에서 이뤄진 김대중-김정일의 악수로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진입했다. 대외적으로도 정상회담은 6.25 이래 계속된 한-미, 한-일 관계는 물론이고 한-중 ,한-러 관계 등 한반도 주변국과의 관계를 뒤흔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정상회담을 둘러싼 서울-도쿄-워싱턴과 평양-베이징-모스크바의 또 다른 운명의 대차대조표를 담고 있다. 한국은 남북정상회담 타결 소식을 미국에게 그리 빨리 알려 주지 않았다. 베를린 선언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상대방을 놀라게 하지 않는 것이 우방간의 원칙"이라고 불편한 마음을 표현했고, 정상회담 설명차 워싱턴을 방문한 한국의 고위급 인사에게 "갓뎀"이란 상스런 말을 하기도 했다. 그 동안 북한과의 관계는 '선 북·미 합의 후 남한 추인' 패턴이었으나, 정상회담을 계기로 김대통령은 대북 주도권을 가져왔고, 워싱턴은 조수석에 앉게 된 것이다. 이것은 주한미군의 입지와도 연결된다.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해서도 서울은 뜨거웠던 반면 워싱턴은 미지근한 반응을 보인 것도 이것 때문이다. 일본도 겉으론 환영하지만 속으로는 다소 우려를 하고 있다. 평양-도쿄 고리기 느슨해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평양을 향해서는 베이징과 모스크바의 구애 작전이 시작되었다. 중국과 러시아의 남한 수교 이후 멀어졌던 관계가 호전되면서 한반도에 대한 두 나라의 영향력도 확대되고 있다. 김정일은 김정일-장쩌민 회담에서 주변 4강이 지지하는 '한반도 당사자 해결 원칙'으로 무게를 집중시키면서 중국과의 전략적 제휴로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가져 가려고 하였으며, 김정일-푸틴의 회담도 이러한 맥락이다. 이 책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미·중·일·러 4강의 외교 각축장이 된 한반도의 변모된 역학관계를 한 눈에 깊이 있게 파악하게 한다. 남북정상회담에는 한반도를 둘러한 국제관계의 모든 요소가 집약되어 있다. 이 책은 다른 한반도 정치관계서 여러 권을 읽는 것보다 명쾌하게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현실을 냉철하고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또 그 동안 설명할 수 없었거나 잘못 바라보던 개별적인 국내외 정치 사건들을 일목요연하게 하나의 큰 흐름 속에서 파악할 수 있는 시각을 마련하게 한다. 또 한반도에 대한 깊이 있는 현실 인식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발생하는 정치적인 사건을 보는 새로운 해석의 잣대를 마련할 수 있게 한다.
회담을 준비한 남북 실세들과 막후 인물들의 생생한 이야기
이 책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해방이래 한국사회에서 가장 오랫동안 '용공분자' 취급을 받으면서도 끝내 평양행 꿈을 버리지 않은 '지독한 인물'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이야기다. 동시에 남북정상회담이라는 大드라마를 연출해 내기 위해 무대 뒤편에서 가슴 졸여 가며 기꺼이 조연과 엑스트라를 맡은 사람들에 대한 리포트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남북정상회담이 남한의 정치적인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한 단순한 핫이슈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30년 넘게 모색해온 통일론에 입각하여 김대중이라는 한 인물이 지독하게도 통일을 추진해온 결과가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그 여정은 어떠하였으며 얼마나 치밀하고 열정적이었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또 앞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추진해 나갈 남북관계에 대한 큰 그림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또 정상회담의 기획자 임동원 국정위원장과 청와대, 통일부, 문화관광부, 재경부와 농림부, 해양수산부 등 정부 부처가 총망라되었으며, 그 속에서 이루어진 박지원 장관, 박재규 통일부 장관, 황원탁 외교안보수석, 이봉조 국장 등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은둔자에서 슈퍼스타로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으며, 화려한 수사와 자신 있는 모습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새로운 면모를 상세히 소개하였다. 북한 내 최고 권력자로서 군까지 장악하고 있다는 점 등 정상회담을 통해 새롭게 파악한 김정일 위원장의 정치력과 퍼스낼러티도 상세히 분석하였다. '인간 김정일'과 '정치가 김정일'의 새로운 면모를 밝혀낸 것이다. 또 대남 정책 사령탑 김용순 비서, 남북대화의 북측 간판 전금진 등 남북문제를 쥔 북한의 파워 엘리트들과 그들의 상세한 내면, 업무 추진 방식, 성격까지도 망라되어 있다.
정상회담 자체와 그 배경, 정상회담을 둘러싼 남북관계와 국제관계, 정상회담에 대한 낙관주의와 비관주의 사이에서 철저하게 균형을 맞춘 리포트 - 이 책은 '균형된 시각'으로 서술되었다. 2박 3일간 평양에서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생생한 재구성은 물론 그 전에 이루어진 남북 물밑 접촉 과정과 배경, 그리고 정상회담 이후까지도 담음으로써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볼 수 있게 하였다. 또 정상회담의 두 정상뿐만 아니라, 그 드라마를 기획하고 연출한 막후인물에도 주목했다.
한반도 문제는 남북문제인 동시에 국제문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정상회담을 둘러싼 남북문제와 국제문제간의 균형을 유지하였다. 한반도 문제의 열쇠를 쥐고 있는 서울-워싱턴-베이징 관계를 상세히 설명했다. 남북정상회담이 감동적이긴 하지만 자칫 그 감동에 허우적대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낙관주의와 비관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했다. 정상회담은 남북관계의 출발점이지 종착점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 책의 객관적인 서술은 한반도의 운명을 둘러싼 정확하고 냉정한 현실을 이해하는 훌륭한 단서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