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 후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난 다음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낙관할 만한 이유도 많지만 그만큼 절망할 일도 많았다. 20년 전의 갈등 중 많은 것이 지금도 갈등으로 남아 있다. 나는 여전히 내적인 평안을 찾고 있고 다른 이들과의 창조적인 관계를 추구하며 하나님을 체험하기를 갈망한다. 지난 세월 동안에 일어났던 작은 심리적 변화들이 나를 얼마만큼 영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나 자신에게도 없고 누구에게도 없다.
하지만 이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습니다. 종종 해가 바뀌어도 짜증이 날 정도로 매한가지였던 걱정과 근심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몇 가지 양극점들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그 양극점 사이를 오가면서 그 중간에 불안하게 매달려 있습니다. 이 양극점들은 영적인 삶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배경을 제시해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삶을 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은 모두 그 양극점을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양극점은 우리가 자신과 맺는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이 양극점은 ‘외로움’과 ‘고독’ 사이의 양극입니다. 둘째 양극점은 우리가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의 기본을 이룹니다. 이것은 ‘적대감’과 ‘따뜻한 환대’ 사이의 양극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가장 중요한 양극점은 우리가 하나님과 맺는 관계의 바탕을 이룹니다. 이것은 ‘환상’과 ‘기도’ 사이의 양극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뼈아픈 고독에 대해서 더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마음의 고독을 참으로 갈망하고 있다는 점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우리와 같은 피조물인 인간에 대한 모진 적대감을 고통스럽게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따뜻하게 받아들이고자 하는 우리의 바람을 깨닫게 됩니다. 또 이 모든 것의 바탕에서 우리가 운명의 주인처럼 행동하게 만드는 끝없는 환상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자아 가장 깊숙한 곳에 감추어져 있는 미덥지 않아 보이는 선물인 기도를 발견합니다.
그런 이유로, 영적인 삶은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양극 사이와 적대감과 환대의 양극, 환상과 기도라는 양극 사이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움직임입니다. 고통스럽지만 우리에게 외로움과 적대감과 환상이 있음을 고백하면 할수록 우리는 고독과 따뜻한 환대와 기도를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설사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예전보다 더 외로워하고 더 적대적이고 더 환상으로 가득 차 있음을 자주 느낄지라도, 이런 모든 아픔을 통해서 고독과 따뜻한 환대와 기도의 삶을 향해 발돋움하려는 우리의 마음이 깊어지고 분명해졌음을 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삶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마치 네거티브 필름에서 사진을 인화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마도 고독에 대해 머뭇거리면서 첫 줄을 쓸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외로움에 대한 체험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을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길을 진정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적대감을 품고 있는 자아와 우리가 맞부딪쳤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환상을 불안한 마음으로 발견하지 못했다면, 기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용기도 절대 못 찾을 것입니다.
보통 우리가 탁 트인 들판에 대해서 말할 때는 어두운 숲에 있을 때입니다. 또 많은 경우 감옥이 우리로 하여금 자유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고, 배고픔이 음식에 대해 감사하게 해 주고, 전쟁이 우리에게 평화에 대해 말하게 합니다. 미래에 대한 이상은 현재의 고통에서 생기는 경우가 결코 적지 않으며 다른 사람에 대한 소망은 자신의 절망에서부터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피 엔딩’이 정말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경우는 거의 드물며, 오히려 누군가 신중하고 솔직하게 삶의 애매모호한 점과 불확실한 점, 고통스런 상황에 대해서 분명히 이야기해 준 것이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을 줍니다. 참으로 역설적인 사실은, 새로운 생명은 옛것의 아픔에서 생겨난다는 점입니다.
이런 세 영역의 움직임이 분명하게 구별되는 것이 아님은 강조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어떤 주제는 색조를 달리한 채로 다른 움직임 속에 되풀이해서 나타나며 마치 교향곡의 서로 다른 악장처럼 서로가 서로를 향해 흘러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구분을 통해서 우리가 영적인 삶의 서로 다른 요소들을 더 잘 깨달을 수 있고,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자아와, 다른 사람들과, 하나님께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프롤로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