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명사의 세계
『명사의 초대』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첫 장에서는 고개만 돌리면 쉽사리 마주치는 ‘이곳(近)’의 명사를 초대한다. 만년필, 종이, 컴퓨터, 명함 등이 얼굴을 내밀 것이다. 그다음 장에서는 집안을 채우고 있는 ‘여기內’의 명사들을 둘러본다. 창문, 의자, 접시, 액자 등이 눈에 띌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우리와 다소 떨어진 거리에 있는 ‘그곳遠’의 명사를 만나러 밖으로 나간다. 신호등, 광장, 우체통 등이 저멀리 모습을 들어낼 것이다. 이 중에 어떤 것들은 과거부터 만나왔고, 어떤 것들은 어느 틈에 서서히 사라진 탓에 미처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멀어지기도 했다. 반면 어떤 것들은 지금도 부지런히 쓰고 있고, 또 어떤 것들은 새로 나타난 명사들인데 마치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처럼 일상에 깊숙하게 들어왔다. 이렇게 드넓은 명사의 바다를 노닐다보면, 우리의 일상과 세계를 이루는 사물에 호기심으로 가득한 눈길을 건넬 수 있을 것이다.
명사의 이름을 불러 우리의 삶을 묻는다
인간의 역사는 계속해서 새로운 명사를 만들어내며 성장하고 발전했다. 더 많은 명사를 손에 쥐기 위해 싸웠다. 때론 눈에 보이지 않는 명사를 차지하기 위한 역사도 반복됐다. 이를테면 ‘명예’나 ‘권력’을 얻기 위해, 혹은 지키기 위해 목숨을 터럭처럼 버리기도 했다. 저자는 각 명사의 이름을 불러 초대한 뒤, 그 명사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그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는지, 시간을 관통하면서 그 모습과 쓰임새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등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살아온 삶을 묻는다. 예를 들어,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신용카드’가 불과 1950년에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사연과 한국에서 한때 ‘신용카드’가 사회적 위치를 과시하는 수단이었던 까닭을 파헤친다. 또한 제2의 몸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안경’을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정조도 썼으며,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택시 첫 손님으로 ‘안경’ 쓴 사람을 피할 정도로 안경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한편 이제는 서서히 퇴장을 준비하는 명사의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물성을 지닌 사물의 퇴장이 아닌, 거기에 담겼던 한 사람의 시간과 추억도 함께 기억의 건너편으로 물러나는 것이라고, 그렇기에 우리는 그 뒷모습을 바라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체통’이 바로 그 대표적 예이다. 아직은 기념비처럼 길거리에서 간혹 마주치는,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걷는 빨간 우체통의 이야기를 읽으며, 편지를 보내고 난 뒤에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설렘을 소환할 수 있다. 이처럼 『명사의 초대』는 옛 향수가 그리운 5060세대에게는 추억을 소환하는 여행이, 2030세대에게는 부모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따뜻한 동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