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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것을 꿈의 수정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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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176쪽 | 224g | 120*190*11mm
ISBN13 9791197981074
ISBN10 1197981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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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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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날들은 지고 있었다. 뉘엿뉘엿 서쪽을 향해 넘어가는 해처럼, 나는 우리의 짧았던 이 생활이 끝나 간다고 생각했다. 그 배경에는 내가 어릴 적부터 곧잘 가졌던 고갈의 익숙함이 깔려 있다. 매번 에너지가 다하지 않게 핫식스와 커피를 번갈아 마시며 출발과 멈춤을 반복하던 여정이 어느새 신탄진 즈음에 와 있었다.
--- p.17

우리의 대화는 별게 없었다. 애써 에둘러 표현하는 적이 없었던 처음 만난 때의 우리와 다르게, 둘의 대화는 하나의 구심점을 놓고 컴퍼스로 원을 그리듯 먼 곳에서 빙빙 돌기만 했다. 그럼에도 더 멀리 떨어져 나가진 않을 정도의 원심력만 유지한 채, 적당한 애정과 아직 다 벗어젖히지 못한 적당한 어색함으로 서로를 대했다. 사실 이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 정도의 거리감은 당연히 존재하리라 여겼고, 그것과 별개로 진심은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도 불현듯 나타나 전해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술을 따라 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조금씩 꺾어 마시는 너의 모습을 보곤 나도 더 이상 권하지는 않기로 했다.
--- p.29

돌돌 말려 있는 페스츄리의 찬란한 증발이었다. 영국이가 말하던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쭈욱 떼서 먹다 보면 어느샌가 사라져 있는 빵’이 딱 맞는 말이었다. 우유를 곁들여 먹으면 좋다는 것도 정확했다. 아직 4분의 1가량밖에 먹지 못했을 때부터 배가 차기 시작하지만, 결국 한 개를 완전히 소화해 버린다. 나의 식욕이 이 정도였나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건 분명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겉에서 보기엔 속의 촉촉함과 순간순간 배어 나오는 달콤함이 잘 보이지 않는다. 먹기 시작해야 비로소 진가를 알게 되는 빵. ‘보문산 메아리’를 처음 먹었던 나의 소감이다.
--- p.67

A는 J를 잡지 못한 채 무덤덤하게 이별을 받아들였다. 그날 밤 둘은 둘의 방식대로 눈물을 쏟아 냈다. ‘애정의 정도에는 다름이 없으나, 서로 생각하는 사랑의 모양이 다르다’는 결론이 다시 한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다름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틈을 만들고 거리를 넓히는 것은 현실이라는 수분이었다. 수분이 끼어 버린 둘의 사랑의 모양은, 그 수분이 얼어붙기 시작하면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도 모르는 시작점이었으며,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과정이었다. 동갑내기였던 둘은 이 연애를 마지막으로 서른을 맞이했다. 서로는 이십 대의 마지막 사람으로 남았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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