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내린 눈이 운동장을 하얀 눈밭으로 만들었습니다. 학교 지붕에도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였습니다.
교실로 들어간 아이들이 남겨 놓은 발자국은 운동장에 촘촘히 예쁜 길을 만들었습니다.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셋 넷…….”
하얀 눈밭을 가로지르는 목소리는 바람에 실려 느티나무 가지를 흔들었습니다. 가지에서 쉬고 있던 참새들이 화들짝 놀라 포롱 포로롱 날아갔습니다. 느티나무 가지에 쌓인 눈도 솜털처럼 흩어졌습니다.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셋 넷…….”
복만이는 구호를 외치며 운동장의 큰 원을 따라 뛰었습니다.
“이게 열 바퀴째니까 이제 두 바퀴 남았다.”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을 붙일 때마다 코와 입에서 하얀 김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운동장 열두 바퀴를 모두 돌고 온 복만에게 키가 큰 담임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복만아, 숙제를 안 해 올 때마다 운동장 돌기가 한 바퀴씩 올라간다는 거 명심해라.”
“네. 다음에 숙제를 안 해 오면 열세 바퀴를 뛰어야 한다는 말씀이잖아요, 헉헉…….”
“그렇게 잘 아는 녀석이 왜 숙제를 안 해 오는 거야. 추운 날 운동장 돌기가 힘들지도 않냐?”
“춥지 않고 더워요. 보세요, 이렇게 땀이 나는걸요.”
팔짱을 낀 담임 선생님 앞에서 복만이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습니다.
“복만아, 숙제를 잘 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구구단을 모두 외워야지요.”
뒷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복만이가 말했습니다.
“그래, 그럼 구구단 다 외울 수 있겠니?”
“그럼요, 모두 외워야지요.”
“녀석, 말이라도 시원스럽게 하니 다행이다.”
“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그렇고말고, 네가 꼭 해야 할 일이지.”
선생님은 복만이의 어깨를 툭툭 치고 함께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자, 모두 조용! 다음 주에 서울시에서 개최하는 백일장이 열리는데 참가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 보렴.”
웅성거리던 아이들이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희망자가 없으면 선생님 마음대로 뽑을 거야.”
아이들은 서로 얼굴만 바라볼 뿐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무조건 백일장에 나가는 거다.”
선생님은 반 아이들을 쭉 한번 둘러보더니 이름을 불렀습니다.
“초롱이, 하영이, 신애 세 사람이 우리 반 대표로 백일장에 나가는 걸로 하자. 이의 있는 사람?”
궁금증이 많은 진수가 손을 들었습니다.
“진수, 말해 봐.”
“선생님, 그런데 왜 다 여자예요?”
“그럼, 진수 너도 나갈래?”
“아 아니요, 저는 백일장 같은 곳엔 취미가 없어요.”
아이들이 또 웅성거렸습니다.
“초롱이는 지난번 백일장에서 상을 탔잖아.”
“신애도 몸은 불편하지만 글은 잘 쓰지.”
“하영이는 책을 많이 읽으니까 잘 할 거야.”
백일장에 나갈 친구들의 이야기로 교실은 다시 시끌시끌해졌습니다.
“선생님, 저도 백일장에 나가게 해 주세요.”
그 때 복만이가 벌떡 일어서더니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일제히 복만이를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복만이를 보며 고개를 흔들기도 하고, 한숨을 쉬기도 했습니다. 킥킥거리며 웃기도 했습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