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의존성, 비극, 운명과 연결 짓는 시각은 ‘장판’에서 보통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의존성이 보편적인 ‘인간의 조건’이라면,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자립과 의존의 이분법을 탈구축하고 상호의존(연립)을 재구축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의 삶은 희극으로만 구성될 수 없고, 비극 또한 소거될 수 없는 인간 삶의 한 양상이다. 이 책은 장애학의 시좌에서 그리스 비극을 읽어냄으로써 비극의 의미를 탈구축하는 동시에 운명애를 소수자적 관점에서 정치적으로 재구축한다.
-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필록테테스의 ‘불길한 비명과 신음’에 옛 기억이 소환되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극심한 통증 한가운데에서 비명을 지르던 밤. 그 밤으로부터 지금은 육체도 마음도 많이 회복되었지만, 그 이후로 줄곧, 어떤 이야기 속에서 비극적인 등장인물에게 더 마음이 쓰이곤 한다. 그들의 비극을 동정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비극이 더 이상 타인의 비극이 아니라는 연결의 감정 때문이다. 아픔과 고통이 이끄는 세계가 있고, 그 세계는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 나는 그 세계를 두려워서 피하다가, 겨우 발을 담그다가, 비로소 온 몸을 담그는 법을 익히고 있다.
이 책은 장애인 당사자를 대상으로 한 ‘장판에서 비극 읽기’ 강의를 정리한 것이지만, 저마다의 비극을 안고 살아가는 모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 나드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배우)
장애인권 활동 초창기 장애학 공부 모임에서 “만약 내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면 낳을 건가?”라는 물음이 던져졌다. 비장애인 활동가들은 “경험하지 못한 일상의 도전이라 생각하고, 낳아 보겠다”고 대답한 반면 나는 “아니, 결코 낳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나와 같은 골형성부전증을 지닌 아이를 임신했을 당시 그때의 “아니”를 소환했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았고, 그 덕분에 지금의 나는 행복하다. 아이의 뼈가 수시로 부러지고 또래 아이들보다 성장이 뒤처지는 걸 볼 때마다 밀려오는 죄책감을 외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비할 데 없이 이쁘고 건강하다. 자신의 삶을 긍정하려는 노력 속에서 내 아이가 지금의 나보다 더 강한 존재로 성장할 것을 기대한다.
중증장애인 한 명에게 지원되는 세금이 천문학적이라는 논리 속에 나치 정권의 T4작전을 소환하는 오늘날, 이 책이 모든 사람에게는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자기 삶을 긍정할 기회가 있다는 이야기로 전해지기를 바란다.
- 이라나 (장애인권운동 활동가)
정립(正立). 제대로 서는 것, 걷기, 다리의 유무는 인간의 조건인가? “아침에는 다리가 넷, 낮에는 다리가 둘, 저녁에는 다리가 셋인 것은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도, 이 상황이 지속되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누워서 지내야만 하는 사람도 많고 죽을 때까지 그런 상태로 사는 사람도 있다. 엎드려서 바닥을 닦는 중년 여성은 ‘아침, 점심, 저녁’ 모두 다리가 넷이다.
장애 범주를 포함, 모든 사람 집단에는 ‘여성이 반을 차지한다’. 하지만 가부장제는 사람의 개념에 여성을 포함시키지 않는다. 이러한 배제의 경험은 여성이 모든 소수자와 연결될 수 있도록 하며, 여성주의의 급진성도 바로 여기에서 온다. 이 책은 이 진실을 분명히 한다.
-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장애를 이유로 수십 년 간 유폐된 삶을 살았던 야학 학생들에게 교사 박정수는 질문한다. “여러분은 자신의 삶을 비극이라고 느끼나요?” 그 질문도, 이어지는 학생들의 대답도 너무나 짜릿하다.
해괴함과 막장스러움 때문에 예전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리스 비극에 이토록 깊게 공감하게 될 줄 몰랐다. 파괴적 운명에 맞서면서도 그 운명을 사랑하는 비극 속 영웅들과 내 곁에 저항하는 장애인들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비극도, 장애도, 고통도, 희망도 새롭게 보인다.
- 홍은전 (작가, 인권 동물권 기록활동가. 『나는 동물』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