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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건축 여행

: 시간을 건너 낯선 눈으로 서울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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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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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4년 03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550쪽 | 702g | 128*200*27mm
ISBN13 9791198593559
ISBN10 1198593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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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10년째 전국의 건축물을 답사해온 김예슬 저자가 서울의 집, 학교, 병원, 박물관을 걸으며 도시가 겪은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살펴본다. 이 책은 도시의 풍경이 스마트폰 화면보다 훨씬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며, 당신의 시선을 세상으로 향하게 해줄 것이다. - 손민규 인문 PD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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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간은 멈춰 있고, 어떤 시간은 계속 매끈해지고 있다. 병원 벽에 붙어 연명하고 있는 경교장을 보며 불편했던 마음이 정동길을 걸으며 증폭된다. 덕수궁까지 걸어 나와 구 서울시청사와 신 서울시청사 사이를 서성여 본다. 서울을 흐르는 역사의 시간은 어디쯤 와 있는 걸까.
---「경교장」중에서

손때 묻은 살림살이 덕에 장면가옥에는 더욱 생활감이 묻어난다. 이 집을 가장 사랑하던 사람은 김윤옥이 아니었을까. 자식 7명을 키우며 집안 구석 구석을 가장 많이 쓸고 닦은 사람이었을 테니 말이다. 오래 머무른 사람보다 많은 수고를 들인 사람이 공간을 더 애정하게 된다. 매일 빨래를 하고, 바닥을 닦고, 가족들이 남긴 흔적을 정돈하며 늘 하는 생각이다.
---「장면가옥」중에서

근대 한옥을 구경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건 무늬 유리다. 홍건익 가옥도 올 때마다 살얼음을 닮은 무늬의 간유리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이것 역시 옛날 사진에 그대로 남아있다. 옛날 건물에 남아있는 무늬 유리를 보면 오월화, 모루, 모란, 구름모양 모란 등 종류도 다양하다. 약 100년전 누군가가 장인 정신으로 만든, 그냥 유리가 아니라 공예품이다.
---「홍건익가옥」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삼대가옥이다. 1956년에 지어진 집인데 보존 상태가 좋아서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다고 한다. 집 안 창문 테두리, 문 손잡이와 장식 곳곳에서 곡선으로 멋을 냈다. 특히 소뿔을 연상케 하는 묵직한 손잡이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디자인이라 계속 봐도 질리지 않는다.
---「돈의문박물관마을」중에서

회현동 미쿠니아파트 건물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3층 건물로 여전히 공동주택으로 사용되며 이름도 약 100년 전 그대로다. 외부와 내장재를 새로 공사한 탓에 멀리서 보면 요즘 지어진 빌라 같지만, 곳곳에서 예사롭지 않은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건물 현관에서 고개를 들면 벽에 원형 장식이 보인다. 요즘 건물이라면 대리석으로 되어있을 현관문 아래 바닥에는 돌이 깔려 있다. 현관과 창문 길이에 맞춰 돌출된 장식도 신축 빌라에는 없는 요소다. 곡선인 양 끝 모양을 유심히 관찰해 본다.
---「명동에서 회현역, 아파트 투어」중에서

부엌에 난 유리 창문을 빼꼼 들여다본다. 심우장은 마루에도 유리문이 달려 있다. 나는 심우장 마루 위 천장을 좋아한다. 갈색 사각형 나무 틀 안에 꽃 모양이 천장을 덮고 있다. 암자처럼 규모가 작은 집이지만, 이 천장을 볼 때마다 커다란 대웅전 안에 걸려 있는 연등이 떠오른다.
---「심우장」중에서

이사 없이 이 집에 오래 사셔서 그런지 소파와 가구, 조명, 피아노 등 모든 게 세월에 비해 새것 같다. 문학관에 전시되어 있던 사진 중 집에서 찍은 사진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더 놀라운 건 벽에 추사 김정희, 운보 김기창, 운창 임직순, 천경자 등의 작품이 아무렇지 않게 놓여있다는 점이다. 펄 벅, 가와바타 야스나리 같은 유명한 문인들과 어울린 공간에 내가 와 있다니.
---「한무숙문학관」중에서

빠르게 변하는 영화 소비 방식만큼이나 서울은 변화무쌍한 도시다. 그렇기에 더욱 익숙한 장소가 사라지는 게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라고 여기는 태도가 필요한 건 아닐까. 외관부터 고풍스러웠던 국도극장,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 단성사, 원형으로 돌출된 건물이 독특했던 스카라극장을 포함해 서울에 있던 수많은 영화관을 잃은 것이 못내 아까워 동부극장 주변을 한동안 서성여 본다.
---「동부극장」중에서

흙과 불이 사라진 작업실은 낙엽이 지고 있는 초겨울 같다. 그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테이블이며 의자, 사용했던 가구들은 가지가 앙상한 나무처럼 보인다. 깨끗한 바닥이지만 발을 떼는 순간마다 낙엽이 바스러지는 듯하다. 권진규는 뒷마당에 있던 큰 가마를 없애고 이 작업실에서 생을 마감했다. 1973년 5월 3일, 고려대학교 박물관 현대미술실 개막식에서 자신의 작품들을 본 다음 날이었다. 계단에는 유서와 작품을 팔고 받은 돈 30만 원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권진규 아틀리에」중에서

작품이 만들어진 배경, 예술가가 작업하고 살았던 공간은 작품만큼이나 중요하다. 사람들은 오베르 성당이나 밀밭을 보기 위해 고흐 마을을 가고, 모네의 정원을 보기 위해 모네가 살던 집에 간다. 예술가가 보고 느꼈던 모든 것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서 찾는 여행지일 것이다. 서울은 어떤가. 창신동에서 예술가들의 흔적을 따라 조금 더 걷고 싶은데, 금방 갈 길을 잃고 말았다.
---「백남준기념관」중에서

김수근은 누이 김순자로부터 집을 지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내가 설계하면 불편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수근이 추구한 공간은 편안하고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공간 사옥 역시 한옥적인 분절 구조를 추구하지만 편리함과는 거리가 멀다. 공간 사옥에는 계단이 두 개 있다. 둘 다 폭이 좁지만 하나는 미로 속으로 빨려갈 것 같은 세모난 계단이고, 다른 것은 창도 없이 비좁은 공간에 난 원형 계단이다. 이 두 계단을 통해 공간은 반복적으로 연결되고 쪼개진다.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구 공간 사옥)」중에서

그 순간 눈앞에 본관 문을 열고 키 178센티의 호리호리한 건축학도 이상이 들어오는 것만 같다. 시인 김기림이 회고록에 쓴 청년 이상은 ‘흰 피부에 긴 눈, 짙은 눈썹, 덥수룩한 머리’를 하고 다녔다. 건축학과 실기실에서 찍힌 사진과 비슷한 묘사다. 김기림이 보았던 이상보다 건축학도 시절은 더 어렸으니 얼굴은 앳되고 눈에는 반항기가 조금 더 서려 있었을 것이다. 오가는 학생들과 일본어로 시끄러운 복도를 아주 무심한 표정으로 서있다가 삐그덕대는 마룻바닥 위를 큰 키로 저벅저벅 걸어갔을 이상을 그려 본다.
---「구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 청사」중에서

이 건물들을 사용하는 사람은 부자도, 고위 간부도, 개인도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전쟁을 겪고 겨우 살아남아 대학생이 된 청년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의뢰받았을 때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건축가마다 설계를 통해 다른 대답을 할 것이다. 김중업이 내놓은 대답은 조형적 아름다움이었다. 전후 복구 중이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단순히 예쁜 건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를 건축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닌지 짐작해 본다.
---「건국대학교」중에서

자신의 건축 철학을 이야기하며 벽돌과 함께 ‘빛’을 언급했던 만큼 김수근은 다채로운 방식으로 빛을 이용한다. 벽돌을 돌출시키거나, 건물 벽과 창틀 주변을 분절시켜 햇빛에 의해 벽돌에 그림자가 지는 방식이 그 예다. 단순한 재료인 벽돌이 김수근이 설계한 건축 안에서 단조로워보이지 않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이런 특징은 도서관 건물에서 정확히 느껴볼 수 있다.
---「덕성여자대학교」중에서

창밖으로 단풍나무가 보인다. 국립기상박물관 마당에는 관측표준목으로 벚나무와 단풍나무가 있다. 뉴스에서 벚꽃이 피거나 단풍이 들었다고 할 때는 이 나무에 생기는 변화를 기준으로 말한다. 100년은 더 된 나무라 크기가 크고, 수형이 풍성하다. 국립기상박물관과 함께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국립기상박물관」중에서

광희문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 3번 출구에 있다. 성벽이 있던 자리에는 사차선 도로가 들어섰다. 끊어진 도성을 광희문부터 도로 건너편까지 눈으로 이어 본다. 그 끝에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구 서산부인과 병원(1966)이 있다. 죽은 사람들이 드나들던 문 옆에 지어진 산부인과 건물이 생과 사의 대비처럼 느껴져서 기분이 묘하다.
---「구 서산부인과 병원」중에서

도시에서 시간은 초와 분 단위로 빠르게 흩어지는 듯하다. 1초만 늦어도 지하철 문이 닫혀 버리고, 1분만 늦게 일어나도 지각이다.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 느낄 새도 없이 무수한 풍경을 지나치는 일상의 연속이다. 하지만 오래된 건물 안에서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건물 속 벽돌, 창문, 천장을 보며 과거를 또렷하게 느낄 때 건물 안에 있는 현재의 나도 선명해진다. 서울에서 건축 여행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신아기념관」중에서

태양의 집은 펼쳐진 건물 구조를 따라 수많은 원들이 굴러다니고 떠있는 동적인 인상을 준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건물인 만큼 생동감을 부여한다. 건물 곳곳에 녹아 있는 원은 마치 공동체를 상징하는 것 같다.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이 손님에 머물지 않고, 하나의 동네 또는 이 도시를 사는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태양의 집 썬프라자」중에서

예배당 벽과 천장은 성화로 가득하다. 혼자 빈 예배당을 둘러보고 있으면 그림 속 모든 눈동자가 나를 따라다니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든다. 마치 2D 세상에 잠입한 불청객이 된 것만 같아 긴장되기도 한다. 정교회에서는 성화를 ‘이콘icon’이라고 부른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성경을 전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를 사용하는 천주교 성당과 대비되는 형식이다.
---「한국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중에서

길상사에는 일반적인 절 같은 화려한 단청과 공포가 없다. 대신 한옥 별장 같은 형태로 곳곳에 아기자기한 멋이 배어 있다. 건물을 잇는 다리의 곡선이나 담장에 기와로 낸 꽃무늬 같은 부분 말이다. 원래대로 음식점으로 사용되었다면 그것도 운치가 있었겠지만, 절이라 더욱 특별한 분위기를 풍긴다. 불자와 시민들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정원 같은 절이다.
---「길상사」중에서

건축 여행을 하는 동안 문고리나 창틀 같은 작은 부분을 들여다보며 감탄하고, 슬퍼했다. 부러워하고, 미워하고, 또 사랑했던 도시 서울을 이해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내가 만나는 풍경, 사용하고 가꾸는 공간의 작은 부분을 의미 있게 바라보게 되었다.
---「에필로그: 가장 서울다운 건축 여행」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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