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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

[ 개정5판, 개정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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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3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400쪽 | 524g | 133*200*27mm
ISBN13 9791167902498
ISBN10 1167902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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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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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이른 봄부터 이곡리 일대를 온통 휘젓고 다니며 마냥 으스대는 종술의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물론 종술의 성깔을 익히 아는 이곡리 주민들은 그의 행패가 두려워서 감히 맞대놓고 그를 어쩌지는 못했다. 주민들은 그저 먼발치에서 그의 뒷모습을 겨냥하며 주먹으로 쑥덕감자를 먹이기도 하고 혓바닥을 날름 내밀어 보이기도 할 뿐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는 구름 의자에라도 앉은 것같이 더욱 거드름을 피우고 다녔다.
--- p.23

고단했던 생애를 통하여 직접으로 간접으로 인연을 맺어온 숱한 완장들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종술의 뇌리를 스쳤다. 완장의 나라, 완장에 얽힌 무수한 사연들로 점철된 완장의 역사가 너울거리는 치맛자락의 한끝을 슬쩍 벌려 바야흐로 흔들리기 시작하는 종술의 가슴을 유혹하고 있었다. ……어느 시기나 다 마찬가지로 돈을 벌어보려고 몸부림치는 그의 노력 앞에는 언제나 완장들이 도사리고 있었던 셈이다. 완장 앞에서는 선천적으로 약한 체질이었다. 완장 때문에 녹아나는 건 늘 제 쪽이었다. 제각각 색깔 다르고 글씨도 다른 그 숱한 완장들에 그간 얼마나 많은 한을 품어왔던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완장들을 얼마나 또 많이 선망해왔던가.
--- pp.35-36

“못난 조상 만난 죄로 지 애비나, 애비에 애비나, 애비에 애비에 애비맨치로 한펭생 땅만 파먹고 살게코롬 맨들 수야 없잖겄는가? 가난이 웬수고 그놈 그 지긋지긋헌 가난이 도적이지. 여보게 종술이, 지발덕덕 좋은 일 조깨 허소!”
--- p.184쪽

이 세상에는 빛깔 다르고 소리와 냄새도 다른 수많은 완장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땅도 완장이었다. 없는 땅, 처자식 먹여살리는 데 턱없이 부족한 땅 때문에 여태껏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눈물을 흘려왔던가.
“돈도 완장이고, 지체나 명예도 말짱 다 완장이여.”
그런 것들도 틀림없는 완장의 한 종류였다. 남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것, 남들을 큰소리로 부리고 남들 앞에서 마냥 뻐겨댈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다 완장이었다.
--- pp.190-191

널금저수지와 거기에 딸린 모든 부속물 하나하나를 그는 마치 자기 소유인 양, 제 살점이나 다름없이 아끼고 사랑하고 있었다. 그처럼 끔찍이 아끼는 저수지를 같잖은 사장 나부랭이와 접객 업소의 여종업원 떨거지들로 하여금 손끝 하나도 건드리게 하고 싶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는 최 사장 일행의 행동을 자신의 인격이나 자존심에 가해지는 일종의 모독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 pp.263-264

“잘 간수허소. 자네도 한번 맛을 들인 담부터는 완장이란 것이 어떤 물견인지 알게 될 것이네. 완장이 없으면은 어떤 놈이 권력 있는 놈이고 어떤 놈이 권력 없는 놈인지 사람들이 알어먹을 수가 있어야지. 그렇기 땜시 세상에서는 표시가 나라고 완장 같은 물견을 맨들어서 권력을 분간허게코롬 규칙을 정헌다네. 똑같은 사람이면서 누가 누구 머리 우에 서고 누가 누구한티 큰소리를 친다는 게 그렇게 떡 먹딧기 쉬운 노릇은 아니니.”
--- p.283

운암댁은 손녀의 볼기를 가볍게 토닥거렸다. 두 줄기 뜨거운 눈물이 쪼글쪼글 시든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한 여인의 파란곡절 많았던 육십 평생이 뭉뚱그려져서 그대로 두 개의 작은 구슬 안으로 녹아든 그런 눈물 방울이었다. 비록 작은 눈물 방울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 무게는 그니가 여태껏 지녀나온 보람과 고통과 자부심과 치욕과 희열과 회한과 사랑과 미움서껀 모든 체험의 무게하고도 충분히 맞먹을 만한 것이었다.
--- p.378

“눈에 뵈는 완장은 기중 벨 볼일 없는 하빠리들이나 차는 게여! 진짜배기 완장은 눈에 뵈지도 않어! 자기는 지서장이나 면장 군수가 완장 차는 꼴 봤어? 완장 차고 댕기는 사장님이나 교수님 봤어? 권력 중에서도 아무 실속 없이 넘들이 흘린 뿌시레기나 줏어먹는 핫질 중에 핫질이 바로 완장인 게여! 진수성찬은 말짱 다 뒷전에 숨어서 눈에 뵈지도 않는 완장들 차지란 말여! 우리 둘이서 힘만 합친다면 자기는 앞으로 진짜배기 완장도 찰 수가 있단 말여!”
--- p.391

운암댁은 물문 근처로 천천히 다가갔다. 수많은 구경꾼들이 돌팔매처럼 집어던지는 경멸에 찬 눈초리, 낄낄거리는 웃음을 함빡 뒤집어쓴 채로 완장은 물문을 향해서 흘러오고 있었다. 물문에 가까이 이를수록 점점 빠르고 거세지는 물살에 실려 완장 또한 걸음을 재우치고 있었다.
운암댁은 물문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들 때까지 아들의 완장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뗄 수가 없었다.
--- p.396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호남지방 야산개발 사업에 편승하여 벼락부자가 된 최 사장은 저수지 사용권을 따내어 양어장을 만들고 그 관리를 동네 건달 종술에게 맡긴다. 적은 급료였지만 완장을 차게 해준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여 종술은 관리인으로 취직한다. “종술은 노란 바탕의 파란 글씨를 세 개의 빨간 가로줄로 장식하고 싶었다. 그리고 기왕 고치는 김에 아예 글씨도 어쩐지 약한 느낌을 주는 ‘감시’보다는 좀 더 권위가 있어 보이는 ‘감독’으로 바꿀 생각이었다.” 노란 바탕에 파란 글씨가 새겨진 감시원 완장, 그 서푼어치의 권력을 찬 종술은 낚시질을 하는 젊은 남녀들에게 기합을 주기도 하고 고기를 잡던 초등학교 동창 부자를 폭행하기도 한다.

완장의 힘에 빠진 종술은 읍내에 나갈 때도 완장을 두르고 활보한다. 하지만 종술의 아버지는 종술과 같이 완장에 집착하다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었고, 종술의 어머니인 운암댁은 완장에 집착하는 종술을 두고 종술의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완장에 미혹된 종술을 걱정한다. 완장의 힘을 과신한 종술은 급기야 자신을 고용한 사장 일행의 낚시질까지 막아서며 패악을 부리다 결국 관리인 자리에서 쫓겨난다. 하지만 종술은 해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수지 주변을 맴돌며 봄 가뭄에 저수지 물을 빼려 하는 수리조합 직원, 경찰과 크게 부딪히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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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과거 한국의 장편소설 작가들은 톨스토이를 읽고 위대한 정신을 접했고, 발자크를 읽고 예술적 방법을 배웠지만 정작 창작에 성공한 것은 종종 한국어의 속어 표현과 민담 모티프의 능숙한 활용을 통해서였다. 훌륭한 증거가 20세기 전반에는 채만식의 작품 중에, 후반에는 윤흥길의 작품 중에 있다. 『완장』은 한국인의 권력 욕망과 그 애환이라는 주제를 농경 문화가 우세한 1980년대 초반 전라도 시골의 작은 사회를 배경으로, 저마다 입담 세고 넉살 좋은 사람들의 사연 속에서 풀어간다. 한편으로 미친 듯이 권세를 쫓는 남자들의 어리석음과 우스꽝스러움을 폭로하고, 다른 한편으로 폭력 없는 세상을 갈망하는 여성들의 메시아적 힘을 상기시킨다. 『완장』은 현대 한국의 속어 혁명을 통해 성장한 장편소설 중 가장 희극적인 동시에 가장 진지한 인간 사회의 우화다.
- 황종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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