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 가득 봄햇살
말에도 향기가 묻어나던 그때
여보, 밥 먹었어? 하며
사랑밥을 차려냈다
가늘게 부릅뜬 눈
말에도 가시가 돋아나던 그때도
여보, 밥 먹었어? 하며
종종 얼음밥을 차려냈다
콧줄로 밥을 먹는 울 여보
더운밥이든 찬밥이든
차려내고 싶다
여보, 밥 먹었어?
여보, 밥 먹자
---「김편선, 여보, 밥 먹었어?」중에서
내 도시락밥은 항상 눌려 있었다
계란이 밥을 파고들어 있었다
그 옆의 깍두기 국물은
호일 사이로 빠져나와 밥을 물들였다
동그란 소시지마저 새콤한 맛이었다
짝꿍 도시락은 밥보단 고기반찬과 과일로 채워져 있었다
매점에서 허기를 달랬던 그날
“엄마! 나도 밥 헐렁하게 싸 달라구”
양푼 비빔밥에 수저를 꽂으시며 하신 말씀이 그립다
“공부는 밥씸이여”
---「박은숙, 머슴 밥」중에서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출근 준비로 바쁜 나에게 친구는 말을 건다
“밥 한 숟가락이라도 먹고 가”
일에 지친 나에게 친구는 새로운 사람도 만나라고 한다
“밥 한번 같이 먹어요”
기분 좋을 때 친구는 나보다 더 신이 나서 말한다
“오늘 내가 밥 살게”
그러던 어느 날, 내 친구와 절교한 적도 있었다
임신했을 땐 왜 그리 밥 냄새가 맡기 싫었던 걸까
갓 지은 밥의 그 따스함조차도
하지만 엄마가 그리울 때면 내가 먼저 친구를 부른다
오늘은 유난히 엄마가 해주신 뜨신 밥이 먹고 싶다
---「김수미, 내 친구, 밥」중에서
삐~익
전자레인지가 멈췄다
오늘도 딸아이는
혼자 차린 밥상 보면서
고인 눈물 쓰~윽 하고
밥 한 술 떠 꼭꼭 씹어 먹는다
참말로 미안하구나
조금만 기다려줘
이 또한 지나갈 거야
그리고 그때
너의 눈물은 사라질 거야
---「김윤아, 눈물 섞인 국밥」중에서
힘들거나 슬프다가도
밥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처음 만나 서먹한 사이라도
밥을 먹으며 친해진다
엄마가 차려주시는 밥
하루 종일 힘들고 지쳐도
그 마음 눈처럼 사르르 녹아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지민, 마법같은 밥」중에서
한 톨 한 톨 따듯한 밥
시아버님 드시고 건강하셨다
한 톨 한 톨 따듯한 밥
남편님 드시고 힘냈다
한 톨 한 톨 따듯한 밥
아드님 따님
젊은 시절 무엇이든 해보는 자신감 갖는다
어른이든 아이든 실패해도 괜찮다고
빠르게 실패하고 실패해서
쌀 한 톨이 나의 입안으로 돌아오는
세상의 수고로움을 밥 먹으며 알 수 있다
---「정혜명, 밥을 먹는다는 것은」중에서
오늘도 정성스레 밥을 짓는다
내가 하든 당신이 하든
매일같이 밥하랴 일하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먹고사는 건 매한가지
오늘도 나는 남편에게 묻는다
밥은 먹고 일하는 거냐고
밥은 먹고 오는 거냐고
먹고살기 위해 일해야 하는 게
우리들의 숙명
---「강지민, 숙명」중에서
부지런히 일하다 보니
어느새 밥해야 하는 시간
가족들 한 끼 밥을 위해
냉장고도 분주해지는 시간
양파와 김치를 잘게 다지고 참치 통조림 넣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김치볶음밥 만드는 시간
속닥속닥 소곤소곤
하루를 풀어내며 함께 할 식사 시간
생각하며 빙그레
더 바빠지는 내 손길
우리 가족 행복을 엮는 시간
---「김미경, 밥하는 시간」중에서
고슬고슬 뽀얀 밥에
소금 참기름 깨 솔솔 뿌리고
무지갯빛 고운 재료들을
바다 내음 고소 김에 돌돌 말아
숭덩숭덩 한 입 크기로
예쁜 접시에 담아내니
“엄마 김밥 최고 맛있어!”
아이들의 한마디에
그 귀찮은 걸 또 해낸다
---「조혜련, 알록달록 고운 김밥」중에서
먹고 또 먹고 돌아서면 홀쭉해지는 옆구리
첫 끼니는 무조건 든든히
하양 노랑 예술적 달걀 위에 끈적한 고소함의 치즈 이불
멋지게 그을린 갈색 토스트 두 짝 철컥 닫아 붙이고
긴 터널 속으로 잘도 욱여넣으면
어느새 몸과 일체가 되고
분주한 새 아침 마음의 밥이 된다
---「리치영, 토스트」중에서
산타 할아버지 오시는 크리스마스이브
캐럴송에 춤을 추는 공주들 웃음소리 거실 바닥에 뒹굴고
단골집 토마토아저씨 스파게티를 좋아하는 우리 공주들 위해
눈처럼 살살 녹는 스파게티에 첫 도전한 저녁
토마토 말캉하게 삶아 껍질 벗겨
스파게티 소스 맛깔나게 끓여놓고
스파게티 면을 삶아 스윽스윽
어머나! 어떡하나!
소스는 적고 퍼져버린 스파게티
나의 이마 땀 자국 본 가족들 아무 말 없이 한 접시 꿀꺽!
“휴……. 맛있게 먹기 참 힘들다.”
남편 말에 우리 가족 참았던 웃음
뿌아앙! 방귀처럼 터져 나온다
---「추세연, 크리스마스이브 파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