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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6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412쪽 | 140*210*30mm
ISBN13 9791193358948
ISBN10 1193358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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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손을 잡고 현관으로 걸어갔다. 가브리엘이 문을 열자 아이리스가 빨리 들어가고픈 마음에 바로 문턱을 넘으려 했다. 그 순간 가브리엘이 팔을 훅 뻗어 가로막았다.
“우편물이 없어.”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리스는 인상을 쓰다가 그 말뜻을 알아차렸다. 대개는 2주가량 집을 비우면 현관문 앞에 우편물이 쌓여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하나도 없었다.
“불을 켜봐.” 아이리스가 속삭였다.
가브리엘이 문 안으로 손을 뻗어 스위치를 찾았다.
“내 카디건.” 아이리스가 아래쪽을 가리켰다. 파란 카디건이 계단 밑 기둥에 걸쳐져 있었다. “저기에 둔 적 없어. 저것도 마찬가지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인 캔버스화를 가리키며 그녀가 덧붙였다.
--- p.18

아직도 믿기 어려웠다. 피에르가 딱 한 번 같이 잤던 여자와 길에서 우연히 마주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여자가 데리고 있던 아이가 아이 엄마가 아니라는데도 자기 아이라고 철석같이 믿을 확률은? 피에르는 어떻게 그렇게 딱 한 번 재회한 자리에서 여자가 거짓말을 한다고 확신했으며, 또 아이의 머리칼을 가져다 유전자 검사를 할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그 여자가 진짜 숨길 게 있었다면 과연 옛정을 생각해 순순히 카페로 따라갔을까? 말이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 p.53

그 일 이후 가브리엘은 ‘만약에’란 말을 수도 없이 되뇌었다. 만약에 그날 채석장 코스를 택하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30분 늦게 출발했더라면, 그랬으면 그가 도착했을 땐 찰리가 이미 숨을 거둔 뒤였을 테니까. 그런데 그걸 정말 바란 걸까? 그때 찰리는 그를 알아보곤 “펠리 아저씨” 하고 불렀다. 그랬기에 가브리엘은 자신이 찰리를 발견할 운명이었다고, 힘든 선택을 할 운명이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저 위에서 누군가 가브리엘의 삶이 너무 수월하게 풀려간다 싶어, 그가 뭘 해도 잘못되는 상황을 안겨줘서 살짝 망쳐놓기로 한 건지도 몰랐다. 해도 망하고, 안 해도 망하는 상황 말이다. 그러고 그 앞으로 편지 한 통이 왔다.
그는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냈다. 아이리스와 스코틀랜드에 가 있는 사이에 온 편지였다. 이 편지를 읽고 나서 도움이 된 거라곤 단 하나, 피에르 걱정이 뒤로 밀려났다는 것뿐이었다. 가브리엘은 방금 파놓은 흙을 내려다보며 편지를 땅속 깊이 묻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는 편지를 다시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 pp.73~74

로르가 와서 함께 지낸 지 6주째였다. 그사이 아이리스는 길을 잃었다. 전에는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았다. 아이리스 펠리, 가브리엘의 아내이고 베스의 엄마이자 주택 개선 전문가였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랐다. 여전히 가브리엘의 아내였지만 전과 같지 않았다. 두 사람의 육체적 관계는 끊겼고 그가 그녀를 거부하는 상황이 심상치 않은 여파를 미치고 있었다. 전에는 그 누구에게도 환상을 품은 적 없었으나 요즘은 꿈에 조지프가 자꾸 나타났다. 솔직히 말해 그를 두고 헛된 공상에까지 빠지곤 했고, 그런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녀는 가브리엘을 사랑했고 그것으로 만족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러지 못했다.
--- p.175

“경찰은 수만 가지를 고려하고 그게 그들의 일이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밝혀지기 전까지 우리 모두 용의자일 수 있어.”
아이리스가 고개를 들어 가브리엘과 눈을 마주쳤다. “순경이 당신에 대해서도 물어봤어. 자전거를 타러 갔다가 몇 시에 돌아왔냐고. 내가 목욕을 시작한 직후인 4시 15분쯤에 돌아왔다고 대답했어. 실은 5시였지만.”
가브리엘이 얼굴을 찡그렸다. “왜 그런 거짓말을 했어?”
“왜냐면 혹시…… 설마 그럴 리 없겠지만…… 범죄와 관련 있기라도 하면 이상하게 비칠까 봐서.”
그가 잠시 빤히 쳐다보더니 턱을 문지르며 낮게 중얼거렸다. “젠장. 그렇긴 하지.”
--- p.231

잠재의식 속에서 그것이 당시 그들의 관계를 나타낸다고 생각한 걸까, 그와 아이리스는 거울을 교체할 생각을 좀처럼 하지 않았다. 둘 사이가 회복되어야만 새 거울을 걸게 될 것 같았다. 이따금 아이리스와의 관계가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고 느낀 가브리엘은 거울을 부숴버려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베스가 대학 입학을 위해 떠나고 나면 분명 그들 부부도 버티지 못하리라 싶었다. 베스가 둘 사이의 정적을 메워주고 있었다.
초인종이 울리자 가브리엘의 두 발이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는 애써 두려움을 떨쳐냈다. 지난 몇 주 동안 겪은 모든 일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며.
--- pp.281~282

“왜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 난 그냥 가설을 제시한 것뿐이야.”
가브리엘이 고개를 저었다. “다음에는 에스메를 범인으로 몰겠네. 실은 그때 병원에서 아이를 낳은 게 아니다, 로르와 조지프가 사귀는 걸 시기해서 밖으로 나와 그녀를 죽였다, 그러면서. 아니면 휴는 어때? 에스메와 조지프의 관계를 알고서 조지프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그들의 인생에서 쫓아낼 요량으로 로르를 죽인 거야. 이런 가설은 어때?”
아이리스가 뒤로 홱 돌아섰다. “자기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내가?” 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정말이지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야 해, 아이리스. 이렇게 죽치고 앉아 허공만 바라보는 건 좋지 않아.”
그는 낮게 욕설을 내뱉으며 자리를 떴다.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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