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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상자의 크기처럼 소원의 크기도 골고루
네 번 환승해서 탄 전철에는 웹툰 읽는 할머니 눈 조금 내릴 수 있을까요 따뜻한 꿀물을 주머니에 넣으면 천천히 식는다 빔포인터 수영하고 나서 읽는 문장 심장처럼 생긴 과일 기적이 일어났는데도 모르고 기억 경쟁 개화 시기 주문 굴뚝빵 아무리 여름을 좋아해도 어쩔 수 없어, 가을에서 좋은 점을 찾아봐야지 2부 연둣빛 소설을 꺼냈다 번화가에 사람이 진짜 많이 지나간다 곰에게도 안경을 씌워주었다 언니가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그사이에 생긴 일 오로라를 보러 간 사람 그라운딩 거대한 건물이 아이들을 위해 냉방을 가동하고 있지만 가방을 선물 준 친구 가까운 미래 공원 3부 어떤 말은 잠깐만 비밀 토마토 빙수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못 본 척 지나갔다 굿즈 나눔 게시물 보관 크리스마스 타임 이즈 히어 미움받을 용기 냈다가 진짜로 미움받을 때 계절의 셋째 저작권이 있는 패턴 숫자 병합 게임 중심의 생활 “나 어떻게 할까” 고양이 등장시키기 4부 내가 전에 말했잖아요 퇴고 못해도 자꾸 쓰게 되는 우산 며는 돌고래도 장미를 좋아할 것인가 뒷모습을 천천히 용기 낼 시간 무릎 보호대 디지털자료실에서 썼으니까 디지털자료실에서 읽으면 좋겠다 존댓말을 하지 못한 통화 쇼츠 접시 아주 커다란 잔에 맥주 마시기 입장권 로봇 중독 발문 지은이가 은지에게 - 임지은 |
김은지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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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은 좋고 책갈피는 싫어요
메모지를 잘 쓰고 있지만 쓰는 것이 받는 것을 따라가질 못해요 모임에서 열심히 굿즈를 나눔합니다 미니멀리스트이고 에코이스트입니다만 구름 위에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선물을 제작하는 상상을 한 적은 있어요 당신이 좋아할 만한 걸 생각하다가 밤을 건넜어요 완전히 까다롭지만은 않아요 ---「굿즈 나눔」 중에서 추운 밤 모과나무가 있다 여러 그루 있다 조명도 식물을 가꾸듯 설치한 정원 기념일을 새로 만든다면 작은 일을 감사하는 날로 정하고 싶다 휴대폰 주인 찾아줌 자전거 타고 가다가 낙엽에 머리 맞음 세일해서 산 옷이 꼭 맞음 후회 그침 ---「따뜻한 꿀물을 주머니에 넣으면 천천히 식는다」 중에서 허니골드망고 지친 내 마음을 달래주세요 말을 걸어 보는 것이 어쩌면 과일이 바지런히 익어가네 두 가지 색이 잘 섞이도록 ---「심장처럼 생긴 과일」 중에서 시 읽는 독자는 몇 명일까요 번화가는 번성하여 화려한 거리라는 뜻이긴 하지만 정말 많은 사람이 지나가네요 몇 명일까요 제가 문을 밀었을 때 밀렸던 그 감각을 같이 상상하는 사람 ---「번화가에 사람이 진짜 많이 지나간다」 중에서 어제 우리는 만났어요 창문을 통해서 어제 만난 사람의 이름을 외우지 못하고 어제 되게 다감하고 되게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성함은 몰라요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박수도 치고 댓글에 부지런히 뭔가를 남겼는데요 ---「오로라를 보러 간 사람」 중에서 산책로에 멋진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 찾아내지 못했어 달처럼 가는 공원 미래의 공원 가까운 미래의 공원 시 쓰는 공원 이곳에서는 믿게 돼 많은 마음들 누군가를 위해 경사를 맞추는 작업들 ---「가까운 미래 공원」 중에서 생강홍차에 대한 시는 잘 써지지 않았다 오래 다시 썼다 생강홍차에 대한 시가 잘 써지지 않아서 계속 계속 고치다가 그해 겨울을 달고 따스하게 보냈다 ---「퇴고 못 해도」 중에서 입장권은 작은 방 책상 위에 있다. 오다가 흘린 것도 아니며, 그것을 주머니에 넣을 계획이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사막에서 뛰어내려야 하는 건 나였다. 스태프가 입장권을 기대하며 손을 내밀었을 때 나는 말했다. “입장권을 두고 왔습니다.” 해는 지고 있었고 사막에 저녁이 내리면 살아남기는 힘들 것이다. “상관없습니다.” 나는 무사히 통과되었다. 이 세계는 내가 바다와 사막을 건너오는 사이 최초로 평화가 당도하여 더 이상 입장 심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입장권은 왜 받고 계신 거죠?” “주시니까 받는 거죠.” ---「입장권」 중에서 「주문」에서 남은 초밥을 모으는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처럼 너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면이 있어. 섭섭하거나 슬픈 일을 너에게 털어놓으면 너는 측면의 관점을 제시하지. 그럼 나는 귀가 얇지도 않은데 덜 섭섭해지곤 해. 참 이상한 일이지. 그런 일들이 시에 종종 벌어지는 것을 나는 봐. ---「임지은, 발문_ 지은이가 은지에게」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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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다채롭게 수식하며
삶을 탐험의 경로로 안내하는 시 시와 산문을 통해 일상의 순간을 명랑하게 포착해 온 김은지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아주 커다란 잔에 맥주 마시기』가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은 4부 구성으로, 총 45편의 시가 수록되었다. 김은지의 시는 빈티지하며 때때로 재활용된다. 그래서 늘 새롭고 그 어떤 단어도 홀로 두지 않는다. 얼룩덜룩함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무늬를 찾고, 접점 없는 단어를 한데 모아 짝을 짓고, 손을 잡게 하고,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친해졌는지에 대한 설명까지 덧붙이는 친절함을 내보인다. 또한 그는 청자에게 무궁무진한 풍경과 장면을 상상시킨다. 이층 카페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일, 전철에서 소설 읽는 사람을 떠올리는 일, 추운 겨울 따뜻한 차를 마셨던 일. 장면은 모두 우리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상의 사적인 풍경들이다. 발문을 쓴 임지은 시인은 “네 시에는 읽는 사람의 일상까지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어. 그래서 읽는 동안 왠지 나도 모르게 따뜻해진다.”라고 전하고 있다. 김은지의 단어와 호흡은 일상을 ‘그저 살아가는’ 꾸준한 힘에서 나온다. 지인들 사이에서 ‘취미 부자’로 통하는 시인의 산책은 매번 넓게 확장된다. 자신이 무엇에 관심 있는지 잘 알고 그것의 세계를 끊임없이 확장시키려는 시인의 일관된 태도는, 매번 반짝이고 매끄럽다. 그가 움켜쥔 단어들은 우리의 일상에 살포시 뿌려진다. 일면식 없는, 낯선 이의 일상에서 공통점을 찾아 일상의 공감과 점검을 한데 일으키는 그의 문장은 늘 어떻게든 살아 움직인다. ‘일상’이라는 대주제에서 공감을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사소하면서도 익숙한 단어들이다. 그의 시를 읽으면 왠지 ‘소확행’을 주고받으며 또 다른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싶어지고, ‘정신 승리’를 외치며 무겁기만 한 기분을 우스운 농으로 털어 넘길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다. 명랑한 언어의 건반을 거닐며 측면의 리듬을 만드는 생활관찰자 더불어 이번 시집에는 코로나 팬데믹과 인공지능에 관련된 단어가 꽤 자주 등장한다. 이전 시집 『여름 외투』에서 ‘위생 장갑’, ‘탄소절감’등의 시어를 통해 시인이 환경보호에 관심을 두던 일을 생각해 보았을 때, 그는 사회적 이슈를 그저 보이고 들리는 일로 그치지 않고 보여주고 들려주는 일로 변화시킨다. 그 행위는 “회식 자리”(「주문」), “줌 회의”(「오로라를 보러 간 사람」), “통화”(「존댓말을 하지 못한 통화」) 등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는 있지만 그 중심엔 “E”, “코”, “로버트” 등의 다소 추상적인 대상이 등장한다. 이런 추상성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어떤 공통의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화자와 독자 간의 “비언어적 소통”(「번화가에 사람이 진짜 많이 지나간다」)을 가능케 하고, 결국 시의 이러한 능동성은 독자의 사적인 일상을 점검케 한다. 온갖 ‘이야기’가 등장하는 이번 시집에서, 그는 이야기의 주체가 되기도 하고 객체가 되기도 하며 그 둘 사이의 관계성에 집중하는 청자가 되기도 한다. 하나의 사건을 통해 나도 모르는 새로운 이야기를 자연스레 창조하게 되고, 이 창조성은 “완전히 잊었던 기억을 꺼내게 한다”(「자꾸 쓰게 되는 우산」). 시인의 일상은 늘 새로운 무언가로 반짝이지만 실은 과거의 어느 시점에 머물렀던, 잊어버릴 뻔한 기억들로 점철돼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의 문장은 조용하게 속닥거리다가도 어느 순간엔 소란하게 북적이며 늘 “낯설고 새로운 장면으로 데리고 간다”(「며는」). 이러한 언어의 다정한 확장은 독자로 하여금 도전성과 적극성, 참여성을 갖게 하고, 시인은 때때로 앞서기도 하고 뒤따라가기도 하면서 그들의 모험을 홀로 두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