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요, 그렇습니다. 꿈 분석과 모래놀이치료를 비교했을 때 어느 쪽이 더 깊은 차원의 문제인가 하는 논의가 자주 있는데요, 꿈의 이미지는 분명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지만 상대에게 말로 전달하게 되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달할 수가 없으니까요. 말로 한 그 시점에서 깎여 나가는 게 있어요. 그러니 언어를 쓰지 않는 만큼 모래놀이치료가 더 깊은 차원이에요. 어디까지나 모래놀이치료 편에서만 보면 말입니다.”
--- p.66
“카운슬링에서 오가는 말의 내용은 사실 치료 또는 치유와는 별로 관계가 없습니다. 그보다는, 무관계한 말과 말 사이의 ‘틈’이라든가 침묵에 답하는 방식이라든가 억양, 속도가 중요해요. 그래서 내가 기록을 할 때는 그 부분을 생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례연구회에서 발표되는 축어록에는 대체로 그런 부분이 거의 빠져 있지요. 카운슬러 자신이 곤란할 것 같은 부분도 지워져 있습니다. 지우고 싶다, 강조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이상한 겁니다만.
--- p.102
스스로 병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그 끝에 있는 죽음을 어떻게 느끼는가. 병과 죽음을 패배로 취급하는, 의료인들이 내리기 쉬운 성급한 판단을 환자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환자가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통하여 저마다 특별한 삶의 서사를 이어나가는 시간과 과정. 그 안에서 환자가 무엇을 얻었는가에 의미가 있다고, 이토는 생각했다.
--- p.144
아아, 그렇구나. 끝난 일은 과거에 두고 돌아보지 않기로 한 만큼 내 뒤에 서서 나를 짓누르는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었을 터다. 반드시 그 이상의 것을, 이라는 생각이 정상이 보이지 않는 나무와 산으로 표현되었을 수도 있다. 나 자신을 고무하는 바람직한 부담감이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일에 대해 칭찬받았을 때, 솔직하게 기뻐하지 못하는 내가 있다는 사실이야 항상 느끼고 있었다. 만족한 적이 없다. 만족할 수 없다. 어디까지 가야 하는 걸까. 정상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어딘가에 정상이 존재한다느 생각 자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담담해지고 싶지만, 집착 덩어리다.
--- p.211
“의사가 환자를 선도한다든가, 의사가 환자를 자유로운 세계로 초대한다든가, 1970년대에는 이런 게 너무 거만하다는 반성이 있었어요. 그 시대와 다른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행여 효과적인 치료법이 있다 해도 그게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인간관계 속에서 실시되느냐 하는 관점을 중요하게 본다는 겁니다. 환자분의 자조自助를 돕는 게 테라피스트의 역할이라는 철학이 중심에 자리 잡은 거죠. 요즘에는 환자들의 생활 지원에서도 일대일로 관계를 맺는 일보다 시스템적인 지원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게 됐어요. 성을 둘러싼 해자가 안정되면, 생활도 정신도 안정된다는 거예요.”
--- p.302
“언어는 인과관계에서 쉽게 빠져나가지 못해요. 인과관계를 만들어버리는 건 픽션이고, 픽션이 치료를 왜곡시키고, 정체시키고, 고착시킨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봐요. 가와이 하야오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좋은 치료적 대화의 전제가 탈脫인과적 사고라고 말씀드렸더니 크게 동의해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인과론을 표면에 드러내지 말라는 겁니다.”
--- p.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