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30분 정도 걷다 보니 쟁반처럼 둥그런 표지판 하나가 보였다. ‘전통한옥 숙박’이라고 적혀 있었다. 안내판을 따라 골목을 돌아 들어가니 자그마한 한옥 한 채가 나왔다. ‘와! 내가 어렸을 때 살던 집이랑 너무 닮았네.’ 생각하며 벨을 눌렀다. 딩동.
“누구세요?”
목소리가 엄마처럼 너무 다정해서 하마터면 ‘엄마, 나야’라고 할 뻔했다. 한옥처럼 조그맣고 예쁜 아줌마가 슬리퍼를 끌고 나왔다.
--- p.15 「1부」중에서
“할머니. 그거 먹는 버섯 아니에요!”
“누가 먹는데?”
“그럼 갖다가 뭐 하시려구요!”
“사람 다니는 길에 피었자너. 눈에 띄길래 그냥 캐다 버릴라 그러지. 애들이라도 손대고 눈 비벼 봐. 어떡할 거여.”
사람 다니는 등산로에 자란 독버섯을 행여 누가 따다 먹거나 애들이라도 만질까 봐 캐다 버리려는 거였다.
--- p.20 「1부」중에서
그날의 따듯한 밥 한 끼는 내가 이제껏 먹었던 그 어떤 밥보다도 눈물 나게 맛있었다. 목숨 걸고 쟁취한 너무나 소중한 밥 한 끼였으니까. 그리고 세상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깊은 산속까지 숨어들었지만 배고픔 앞에서는 그 어떤 고민도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식욕탱천’한 내 모습을 보며, 나는 그만 나를 용서해 주기로 했다. 인간은 누구나 나약한 거니까. 그러니 배부른 고민은 그만하자. 도망간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눈 속을 파헤치고 나와 따뜻한 밥 한 끼 찾아 먹듯 이렇게 또 하나씩 부딪히며 살아가면 된다.
--- p.27 「1부」중에서
아침부터 그날의 눈뭉치처럼 함박눈이 펑펑 쏟아진다. 마치 전생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는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밥 한 끼에 목숨을 걸고 그토록 용감하게 눈 속을 파헤치며 내려올 수 있을까? 무모하고 엉뚱하고 겁 없고 당돌하던 그 시절의 내가 무척 그리워진다.
--- p.27 「1부」중에서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주지스님과 겸상을 하고 밥을 먹고 있었다. 절이다 보니 반찬이라야 콩나물이고 시금치고 산나물이고 다 그랬다. 잠도 덜 깬 새벽부터 텃밭 같은 밥상을 앞에 두고 손에 걸리는 대로 대충 집어 입에 쑤셔 넣었다. 그러다 콩나물인지 시금치인지 기다랗고 질긴 뭔가가 이빨 제일 뒤쪽 보철기 고리에 꼬리를 감고 그 나머지는 목구멍으로 내려가 버렸다. 아니, 내려간 것도 안 내려간 것도 아닌 황당한 상황이었다.
--- p.30 「1부」중에서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는, 자식을 위해 길거리에서 껌 한 통은 팔 수 있을까?
주섬주섬 츄리닝을 걸쳐 입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마트에 가서 자일리톨껌 한 박스를 샀다. 그 무렵 친정집이 구기동에 있었을 때라 근처 광화문으로 나갔다. 그리고 거기서 껌을 팔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 가버리는 바람에 눈조차 마주치기 힘들었다. 누군가 멈춰 서서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주위를 살피다 근처 부동산으로 들어갔다.
--- p.36 「1부」중에서
오늘은 내친김에 신발을 벗고 직접 누워보기로 했다. 운동하느라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걷던 사람들이 힐끗 보면서 지나갔다. 멀쩡하게 생긴 여자가 낮술을 마셨나? 왜 저기서 이리저리 몸을 구부렸다 폈다 하며 드러눕고 난리야? 뭐 이런 눈빛이었다.
--- p.49 「1부」중에서
한강으로 뛰어내릴지 말지 망설이며 서 있는 한강다리 난간의 아치와도 같은 벤치 팔걸이. 길거리 벤치에조차 저런 아치를 만들어 붙인다. 하룻밤 허리 쭉 펴고 자고 나면 그래도 조금 더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고단한 누군가가 무거운 다리를 끌며 길을 걷다가 벤치에 잠시 몸을 누이고 쉬어갈 수도 있지 않은가.
--- p.52 「1부」중에서
“밖으로 나가서 해야지! 왜 그래 진짜!”
머쓱해진 남편이 밖으로 나가며 나를 슬쩍 쳐다봤다. 손님 앞에서 싫은 말을 들은 게 기분 좋을 리 없었다. 그 모습에 마음이 쓰여 내가 슬쩍 농담 한마디를 건넸다.
“여기가 붕어빵 줄 서서 사 먹는다는 그 유명한 가게 맞나요?”
“그 유행어 오랜만에 들어 보네요. 깔깔.”
아내의 웃는 모습에 남편도 표정이 밝아졌다.
“저희야 늘 고맙죠. 많이 찾아주셔서요.”
“여기서 장사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
“4년짼가… 벌써 그렇게 됐네요.”
그 사이 아내가 붕어빵 틀에다 반죽만 조금 부어 팥소 없이 얇게 구워낸 밀가루 과자를 내게 내밀었다.
“이거 바삭하고 담백한 게 맛있어요. 한번 드셔보세요.”
“아니! 이게 그 유명한 붕어껍질인가요?”
“깔깔. 그러네요. 생선껍질이죠, 이게.”
--- p.55 「1부」중에서
내 마음에 ‘신뢰’라는 전기장판을 깔아준 그 남자들이 있었기에 될 수 있으면 인간을 믿고 산다. 살면서 뭐 대단한 선행은 못 하고 산다 하더라도 내가 절에서 만난 그분들처럼, 인연에 스크래치 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훌륭한 삶이 아닐까 싶다.
--- p.72 「1부」중에서
토리를 가슴에 안고 욕실로 갔다. 따뜻한 물을 욕조에 받아놓고 토리를 씻겼다. 코코넛 향의 보디샴푸를 온몸에 발라 거품을 내고 손끝으로 살살 문질렀다. 잠에 취한 아이처럼 얌전하게 누워 있는 모습이 낯설었다. 몸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닦아내고 얼굴도 뽀독뽀독 씻겼다. 찹쌀모찌처럼 하얗고 동그란 발도, 분홍 발바닥 사이사이도 남김없이 문질렀다. 그런 다음 미지근한 물로 몸을 헹구어 내고 수건으로 토리를 감싸 안고 나왔다. 침대 위에 큰 수건을 깔고 토리를 눕힌 다음 드라이기로 털을 말렸다. 평소 같으면 몸을 부르르 털며 빠져나가려고 했겠지만 토리는 얌전히 누워만 있었다.
“토리야, 우리 토리 시원하지?”
--- p.78 「2부」중에서
살짝 뒤를 돌아보니 할머니는 내 등에서 떼어낸 고양이털을 다른 한쪽 손에다 꼬옥 쥐고 있었다. 버스 안에다 버리면 또다시 누군가에게 날아가 붙을지도 모르는 털이었다.
‘우리 엄마도 저랬는데….’
엄마는 머리를 빗고 나면 바닥에 떨어진 흰 머리카락을 꼼꼼히 쓸어 한쪽 손에 꼬옥 쥐고 휴지통에 갖다 버렸다. 손톱 발톱을 깎고 나서도 혹시 떨어진 조각이 없나 방바닥을 손으로 쓸었다.
살아계셨다면 저 할머니처럼 버스에서 누군가의 등 뒤에 붙은 고양이털을 떼주었으려나…. 그런 생각이 들자 할머니의 손길이 더 이상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 p.83 「2부」중에서
다시 엄마를 작은언니 집으로 모시고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았다. 그제야 우리에게도 조금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편해진 만큼 우린 나태해졌다. 서로에게 미루고 한 발짝씩 엄마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다 하루는 요양보호사 아주머니가 영양식을 튜브로 주입해 놓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사레가 들렸다. 그럴 땐 튜브 영양식을 중단하고 등을 두드려 바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요양보호사 아주머니는 너무 늦게 그걸 발견했고, 엄마의 호흡은 멈춰버렸다….
그때 나는 가족들과 오랜만에 외식을 하러 나가 있었고, 돼지갈비를 굽다 언니에게 연락을 받았다. 전화를 받자마자 미친 듯이 달려갔지만 이미 엄마는 떠난 뒤였다. 아픈 엄마를 무조건 집에서 모셔야 된다고 부득부득 우긴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을 원망했다. 요양보호사가 부주의해서, 언니가 늦게까지 자고 있어서, 그곳에 있던 당신들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고.
--- p.87 「2부」중에서
밤늦게 전화가 울리면 가슴이 덜컥하고, 너무 힘든 날은 이제 그만 편해졌으면 좋겠다는 나쁜 생각도 하게 된다. 사람이니까, 사람이라서 지치는 거다. 기약 없는 돌봄이 필요한 가족이 있다는 건 사람을 몹시 지치게 한다. 다른 사람들은 걱정 없이 살고 있는데 왜 나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고통스럽고 우울해진다. 그래도 힘을 내 보려 하지만 금이 간 유리컵처럼 조그만 충격에도 쉽게 깨지고 다치기도 한다. 힘든 사람에겐 위로보다 당장에 대안이 더 필요하다. 그 대안은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어야 하는데 지금의 현실에선 가족이 그 몫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 p.88 「2부」중에서
시간이 되고 여유가 생기면 하겠다고 미뤄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두고두고 후회로 남는 게 ‘효도’다. 살아 계실 때 더 자주 안아드리고 맛있는 음식 같이 먹고 영화관에 가서 영화도 보고 봄에 꽃이 피면 공원이라도 함께 걷는… 그런 사소한 것이 바로 효도인데 말이다. 봄나물 무치고 된장찌개 끓여 엄마에게 밥상을 차려드리던 그 시간이 그립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청약통장이 아니라 내가 가진 그 어떤 것도 아낌없이 팔 수 있을 것 같다.
--- p.93 「2부」중에서
시간이 되고 여유가 생기면 하겠다고 미뤄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두고두고 후회로 남는 게 ‘효도’다. 살아 계실 때 더 자주 안아드리고 맛있는 음식 같이 먹고 영화관에 가서 영화도 보고 봄에 꽃이 피면 공원이라도 함께 걷는… 그런 사소한 것이 바로 효도인데 말이다. 봄나물 무치고 된장찌개 끓여 엄마에게 밥상을 차려드리던 그 시간이 그립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청약통장이 아니라 내가 가진 그 어떤 것도 아낌없이 팔 수 있을 것 같다.
--- p.93 「2부」중에서
엄마는 젊어서부터 영화를 좋아했고 그중에서도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나오는 [로마의 휴일]은 세 번이나 봤을 정도였다. 그런 엄마가 로마가 아닌 캐나다에서 그레고리 펙을 얼핏 닮은 한 남자를 만나게 됐고, 만난 지 두 달 만에 프러포즈까지 받게 됐으니 아주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나버린 셈이었다. 그 일이 어떤 심정적 변화를 불러일으켰는지 잘 모르겠으나 며칠 뒤 엄마는 근처 미용실에 가서 갈색 머리로 염색을 하고 나타났다는 거다. 나는 배신감이 몰려왔다. 내가 그렇게 졸라대도 하지 않던 염색을 그 남자 때문에 하다니!
--- p.101 「2부」중에서
2005년 어느 평범한 날의 오후였다. 나는 다림질을 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 때였다.
“쾅쾅쾅쾅. 김양미 씨 계세요? 문 좀 열어 보세요! 쾅쾅쾅쾅.”
누군가 문이 부서져라 쾅쾅 두들겨댔다. 놀란 나는 뛰어나가 문을 열었고,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119대원들이었다.
--- p.130 「2부」중에서
아이가 잠이 들고 나자 책이라도 들고 올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와중에 그럴 정신이 어디 있었겠나. 그래도 크게 다친 게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하며 병원 밖으로 나와 숨을 크게 들이쉬며 심호흡을 했다. 아이가 깨면 웃는 얼굴로 들어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입 근육을 풀었다.
“아에이오우~ 아에이오우~”
웃음이 쉽게 나올 거 같진 않네….
--- p.148 「3부」중에서
어쨌거나 인생, 자기가 사는 거다. 나도 내 맘대로 살아왔기에 엄마에 대한 원망 같은 건 전혀 없다. 그거면 된 거다. 자식에게 원망 들을 일만 만들지 않아도 부모 인생 선방한 거다. 나는 ‘자식’의 뜻을, 스스로 자(自) 먹을 식(食)의 자식(自食)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기대치를 낮추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해 주자. 그게 바로 부모가 할 일이 아니겠는가.
--- p.167 「3부」중에서
유독 갈치구이를 좋아하던 나는 노릇노릇 구워진 갈치를 아이들 입에다 몽땅 발라 넣어줘야 한다는 게 너무 슬펐다. 가장자리 가시 있는 부분과 내장을 감싼 흐물흐물하고 비린 맛이 나는 그런 살 말고 온전한 가운데 토막이 먹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갈치의 앞면은 아이들에게 먹이고 뒷면은 내가 먹어야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제비 새끼처럼 입을 쫙쫙 벌리며 맛있게 받아먹고 있는 애들을 보고 있으려니, 나 먹자고 두툼한 살코기를 빼돌린다는 게 어미로서 조금 미안하긴 했다. 그래도 먹는 거 앞에서 사람은 치사해지는 법. 나는 독한 마음을 먹고 애들에게 말했다.
“김치도 먹고 된장찌개도 먹고 뭐든 골고루 먹어야 튼튼해지는 거야. 그래그래. 생선 너무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아. 시금치 맛있지? 아쿠 잘 먹네~.”
“아냐 아냐, 꼬기 주세요. 꼬기!”
눈치 없는 첫째는 통통한 명란 알 같은 손가락으로 정확히 갈치를 가리켰다. 나는 슬픔과 분노가 치밀었지만 어쩔 수 없이 갈치 뒷면을 발라 아이의 밥숟갈에 얹어주었다.
--- p.170 「3부」중에서
그다음 날인 2014년 7월 15일. 모스크바 지하철역에서 대규모 탈선 사고가 있었다. 23명 사망에 160명이 부상을 입은 큰 사고였다. 간발의 차이로 우리가 타지 않은 그 지하철이었다. 그리고 이틀 뒤, 우크라이나 반군이 쏜 미사일에 맞아 말레이시아 여객기가 추락해서 승객과 승무원 298명이 전원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다. 두 사건 모두 우리가 러시아에 머물러 있는 그 기간 동안 지척에서 일어난 일들이었다. 언니와 오빠는 행여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에도 미사일이 따라붙으면 어떻게 하느냐며, 그럼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금도 가끔 그때 그 여행 이야기가 나오면 지하철 사고와 비행기 사고 때문에 죽을 수도 있었노라고, 다행히 운 좋게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운 좋게 살아남은 건 바로 나였다. 미사일 보다 지하철 탈선보다 더 위험한 건 ‘손 세정제’였다는 걸 말이다.
--- p.178 「3부」중에서
“인생 별거 없다. 너무 용쓰지 말고 대충 살아.”
돈이라면 벌벌 떨며 아끼고 지리던 정숙씨가 비싼 커피까지 사주며 하는 말이라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살아보면 별거 아닌 게 인생이지만 살아보지 않고서야 도저히 알 수 없는 것 또한 인생이니까.
--- p.192 「3부」중에서
나는 어려서부터 잠이 별로 없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편인 데다 눈을 뜨는 순간 몸을 발딱 일으켜 뭔가 재미난 일을 찾아 나서는 쪽이라 어른들은 ‘참 부지런하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 p.193 「3부」중에서
배려 없는 말들은 그렇게 상처로 남는다. 처음엔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상처를 받고, 그다음엔 말을 뱉은 사람에게 되돌아온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말을 배우지만 침묵하는 것은 여간해선 배우기 힘든 모양이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나 마음이 힘든 사람, 사회성이 떨어져 남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사람이나 자기 비하에 빠진 사람에게 우리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다 너를 위해 해주는 말이니까 잘 들어.”
하지만 이런 말들은 ‘한여름 게딱지’만큼이나 속 빈 강정일 경우가 더 많다. 그러므로 배려의 말에는 조건이 있다. 상대가 원하고, 듣고 싶어 할 때 해야 한다. 상대를 ‘위해서’ 하려는 말인지 상대의 ‘위에서’ 하려는 말인지 자문해 봐야 한다.
--- p.199 「3부」중에서
말이란 가시덤불 속의 풍선처럼 한없이 가볍고 예민한 것인지 모른다. 말에 담긴 진심만큼이나 중요한 건 상대에게 가 닿는 ‘말의 온도’이다. 음식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적정 온도라는 게 있듯 사람의 말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내 말을 맛있게 먹고 부담스럽지 않게 소화하면 제일 좋다. 몸에 좋고 안 좋고는 그다음 문제다. 하루를 열심히 살아낸 다음 불판에 구워 먹는 삼겹살에 소주 한 잔처럼 맛있는 말이 필요하다.
--- p.200 「3부」중에서
근데 문제가 생겼다. 냄비에 너무 바짝 얼굴을 들이민 바람에 안경이 온통 뿌예져 버렸다. 한 마디로 눈뜬장님이 되어버린 거다. 그렇다고 마냥 서 있을 수 없어 대충 감으로 가위질을 해대고 있는데 뒤에서 한 남자의 느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초짜지? 일한 지 얼마나 됐어?”
“아… 네. 제가 온 지 얼마 안 돼서요.”
“그럼 딴 사람 불러 시키고, 저녁 약속 있어?”
“예?… 저녁 약속이요? 그러니까 그게….”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보아하니 나랏일 하는 인간들 같은데 조용히 밥이나 먹고 갈 일이지, 일하는 사람에게 저녁에 시간 있냐고 추근대는 건 좀 아니지 않는가.
--- p.208 「4부」중에서
드디어 점심시간. 처음으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본다. 그리고 나 혼자 쓸쓸히 밥을 먹는다. 어디 가도 밉상 소리는 안 듣는다고 자부했던 내가 여기서는 왕따다. 이름을 물어보는 사람도 없다. 최고 고참인, 왕언니로 보이는 쪽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 왁자지껄 웃으며 떠든다. 나도 저기 끼고 싶다. 일은 힘들고 마음은 외롭고 시간은 안 간다. 일주일쯤 지나자 비슷한 시기에 들어왔던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지 않는다. 일이 너무 힘들어 며칠 넘기지 못하고 나가는 사람들이 생긴다. 새로 들어오고 또 나가고…. 그러니 이곳에선 서로의 이름이나 신상을 묻지 않는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 p.221 「4부」중에서
며칠 전, 아들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엄마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게 좋다고, 오래 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하자 아들이 말했다.
“그건 엄마가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으니까, 그게 다가 아니어서 그런 거예요. 아무 의미 없이 8시간을 편의점에서 계속 앉아만 있다고 생각해 봐요. 그게 좋기만 하겠어요?”
“그래, 니 말도 맞다.”
곱창집에서 일할 때도, 지금 이 일을 하면서도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시간이어서 의미가 있는 거였다. 단순히 돈만 벌기 위해 일을 하러 다녔을 때와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게 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일을 해서 부서진 중문을 고치고, 뜯긴 벽지를 새로 도배할 수 있는 일상의 기쁨 또한 나에겐 소중하다.
--- p.236 「4부」중에서
음악을 좋아하던 아빠가 전축에다 LP판을 틀어놓고 마당에 길게 고무 호수를 끌어내 놓고 물청소를 하던 기억. 연못 둘레에 있던 큰 돌에 비둘기가 날아와 앉아 ‘구구’ 거리며 놀던 모습. 학교 다녀와 책가방만 마루 위에 퉁탕 던져놓고 뛰어나갈 때 철제 대문에서 나던 ‘끼이잉 철컹’ 소리와 엄마의 된장찌개 냄새까지….
어떻게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걸까. 마치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이제 막 어린 시절로 시간 여행을 온 사람처럼 그 집 앞을 서성였다. 내 기억 속에 있던 넓디넓은 골목은 어느새 깜짝 놀랄 정도로 좁아져 버렸지만….
내가 살던 아파트 동에 들어가 계단을 밟아본다. 올라갈 땐 두 칸씩 내려올 땐 세 칸씩 계단을 내려와 마지막 다섯 칸은 한꺼번에 뛰어내린다. 그때의 난 나풀나풀 계집애였는데 이젠 무릎이 아픈 나이가 되어 다시 그 계단을 밟아본다. 동네를 벗어나며,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을 빠져나오는 것만 같아 자꾸자꾸 뒤돌아본다. 고개를 돌렸다 다시 보면 모두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없을 것만 같다.
--- p.239 「4부」중에서
버티는 날들이 싸우는 날들보다 한결 거룩하고 눈물겹다고, 우리 함께 어려운 날들을 버텨나가자고 했다. 그러니까 선생님은 이번 생 모두를 있는 힘껏 버티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눈물겹게 버티고 버티다 떠나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화사한 봄날, 꿀물에 햇빛 가루를 한 숟갈씩 배합해서 만든 게 민들레라던 선생님. 그 민들레가 지천인 지금, 선생님은 민들레 씨앗처럼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다. 이제는 아름다운 석양빛을 바라보며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잔하고 있을지도….
--- p.253 「4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