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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 | 창비 | 2024년 07월 26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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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7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278g | 128*188*17mm
ISBN13 9788936439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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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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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는 최와 함께 하겠다고 했다. 말하자면 승합차의 한자리를 달라는 것인데, 마치 의리로 인한 동행 같은 뉘앙스였다. 저나 잘할 것이지.
“제가 바깥 생활은 잘합니다.”
“그러면 좀 있다가 갈 때 되면 가.”
(…)
“어디로 가십니까?”
“어디든 가야겠지.”
--- p.16 「기술자들」 중에서

최는 문득 조의 ‘이것저것’들의 역사가 궁금했다. 지금의 일들도 이미 그의 이것저것 속에 포함됐을 거였다. 그렇긴 하지, 하고 최가 빠르게 수긍했다. 얼마나 모호하고도 적확한 표현인가. 완곡한 자기비하가 아니었다. 어떤 이유로든 해야 했던 지난 일들을 꾸밈없이 그러모은 말이었다. 자의든 타의든 돌아보면 최 또한 그렇게 살아왔다. 조의 이것저것들은 못내 무용지물 같으면서도 동시에 잡스러운 든든함이 있었다.
--- p.35 「기술자들」 중에서

“……넌 이것들이 예쁘니?”
“예쁘지 않아?”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헤어졌다.
--- p.39 「상자」 중에서

부지런히 살았다고 해서 돈도 부지런히 모인 것은 아니나, 어미가 자식놈 산 세월을 알아주지 않으면 누가 알아주겠나. 큰놈은 안식년이라고 몇년마다 쉬더만, 작은놈이라고 그리 못할 건 뭐란 말인가. 너도 쉬어라. 새끼가 어미 옆에서 쉬는 게 무슨 흉이더냐. 푹 쉬거라.
--- p.78 「황금 꽃다발」 중에서

아버지가 상상하는 내 상태는 아마 꽤 중증일 것이었다. 그런데도 차마 간단한 수술이라고 안심시킬 수가 없었다. 내 처지가 그랬다. 큰 문제 없는 뼛조각을 사용해야 할 만큼 초라했다.
--- p.103 「뼛조각」 중에서

식사와 혈액 검사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게다가 염증 치료를 벌써 마친 현재의 나는 환자복을 입은 그냥 건강한 남자였다. 그 상태로 좁은 병상에 아버지와 함께 있으려니 민망하고 어색했다.
“아버지, 지하에 편의시설하고 식당가 있는데 구경 갈까요?”
“……너 뭐 병캉스 왔냐?”
--- p.107 「뼛조각」 중에서

그랬다. 내가 살 길은 나의 가난을 증명하는 것뿐이었다.
--- p.137 「세입자」 중에서

재영은 그런 자신이 미웠다. 왜 그토록 사소한 것들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지. 왜 꼭 속으로라도 한마디씩 하고 넘어가는지. 쯧쯧쯧, 하는 짓 봐라. 속엣말이 표정으로 나왔을지도 몰랐다. 사회생활에 너무 미숙했다. 자꾸 위축됐고 자존감마저 뚝 떨어졌다. 직장생활이 어려울 지경으로.
--- p.191 「오해의 숲」 중에서

곁에만 있어도 좋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필요해서 있어야 하는 사람. 그녀는 어떤 엄마가 좋은 엄마인지 몰랐다. 때문에 자신이 가지고 싶었던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가지고 싶었던 엄마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녀와 그들은 취향이 너무 달랐다. 이상 높은 그들에게 그녀는 지나치게 하찮은 엄마였다. 하찮은 엄마였으므로 하찮게 사용했다.
--- pp.228-229 「청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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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의 소설을 보면 작가가 항시 미세 현미경을 들고 다니는 것 같다. 작가의 현미경에 포착된 우리 삶이란 게 그 얼마나 많은 실핏줄 같은 이야기의 줄기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인지, 새삼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기실, 우리 삶은 이야기 빼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을까?

김려령은 정교한 집도칼로 그 실핏줄 속을 헤집으며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자세로 숨어 있던 이야기들을 들어 올려 우리에게 조곤조곤 보여준다. 상처 난 곳을 헤집어 화근을 보여주며, 봐요 진상이 이런 겁니다, 하고 말하는 김려령은 그러니 외과의사형 작가인 것도 같다. 아무리 고통스러울지라도 화근의 연원과 과정과 결말을 보도록 만들어 끝내는 우리 인생에서 놓쳐서는 안 될 무언가를 ‘득템’하게 만드는 힘이 김려령 소설에 분명히 있음을 이 소설집에서 확인하게 된다.

우리에게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는지를 알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먼저 김려령 소설을 읽어야 하겠다.
- 공선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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