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은 보지 말고 나의 기준대로 나가고 투자하자.’ 라고 속으로 생각하지만, 승진 시즌이 되면 나만의 기준은 여름 날의 빙수처럼 무너져 내린다. 순위 안에 놓인 나의 좌표를 확인하는 순간, 마음속에서 몇 번씩이나 놀아난다.
--- p.11
나라는 부품을 비포장도로에 내놓지도 않고, 적당한 기회에 운전자가 되어 자신을 소모시킬 일을 최소화하는 그들은 모든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잡는다. 회사라는 껍질이 없어도 필요에 의해 동그라미가 됐다가 세모가 된다. 새로운 틀에 적응하는 것은 늘 고되고 힘들지만, 나도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에 수시로 내면의 모습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 p.18
감정은 과거에 머물고 몸은 현재에 머물고 신경은 미래를 향해 곤두서 있었다. 엇박자 속에서 나는 톱니가 엉킨 이유를 찾고 설명해야 하는 미션에 놓였다. 하지만 나의 모든 행동과 머릿속의 데이터는 회사에 의해 조사되고, 숨어있는 나를 끄집어내서 적나라한 점수 위에 올려졌다. 점수에서 미달이면 나는 세상의 낙오자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p.31
맑은 정신에 중요한 결정을 하며, 미루지 말고 당장 진행할 수 있는 뾰족함이 중요하다. 설령 그것이 잘못됐더라도 투명하게 오픈하고 수정하면 된다. 그것이 실력이다. 묵묵히 엉덩이로 하는 일은 그 다음이다. 회사는 고등학교가 아니니까.
--- p.43
멍하게 있으니 감정은 더욱 솔직하게 올라온다. 긴 직선의 위에 내가 올라가 있다. 사방에 방어막이 없는 느낌이다. 이유가 없는 눈물이 난다. 뭔가 나에게 시원하게 답하지 못한 것들이 쌓여 있는 것 같다. 제대로 대답을 해줄 수 없어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감내해야 할 것들이 생각난다. 단단하고 싶어질수록 마음의 벽은 얇아져만 간다. 잘 안 되고 있는데 다 잘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수렁에 빠지는 것만 같다.
--- p.67
살아볼수록 세상은 내가 밟아가며 채워놓은 굴레의 바퀴 수만큼 돌아가고, 그 이상의 보상을 원할 때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수평적 시스템인 것을 점점 느낀다. 노력하지 않은 대가를 얻은 적도 없지만, 있었다면 아마도 빼기가 시작된 순간이었을 것이다.
--- p.89
이제 재능 찾기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 부족한 것을 통해 무엇이 변화되었는지 찾아보는 게 즐겁다. 남들 하는 대로 꼭 할 필요도 없고 그것이 나에게는 더 어려운 길일지도 모른다.
--- p.99
선택지 앞에서 돈을 흔들며 자랑하는 사람, 지름길을 안내해 주겠다며 통행료를 요구하는 사람, 기분 좋은 향수를 뿌리며 나타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알 수 없는 파티의 초대를 특히 조심해야 한다. 세상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근사한 파티에 초대해 주는 사람은 없다. 레벨 차이가 크다고 느껴지는 사람의 호의는 더욱 조심히 생각해봐야 한다.
--- p.104
사십이 넘어보니 빨리빨리 무언가를 성취해서 달려가는 사람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높은 회복탄력성을 가진 사람이 가장 부자이다. 그리고 건강과 스트레스를 맞바꿔 돈을 버는 사람이 가장 가난한 사람이다. 시간이 없다는 사람이 가장 불행하고, 바빠서 소중한 것을 미루는 모습이 가장 바보이다. 오늘도 초조한 일들이 많지만,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고 달래본다.
--- p.113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면 기준이 참 모호해진다. 누구 하나 특색이 없는 사람이 없고 그저 그런 사람이 없다.
--- p.125
인생은 비틀비틀하면서 어디론가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현재 나는 여기에 있으니, 이 일을 하는 지금을 평가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불안함 속에 앉아있었지만 지나가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고 알게 되는 것들을 꺼내 쓰면서 그렇게 발전하는 것 같다. 되는대로 인정하자. 잘 안되면 이번에 나의 능력은 여기까지 인 것이다
--- p.130
어차피 내 인생은 그냥 되는 게 없도록 설계되었으니 그냥 고생하자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했다.
--- p.137
흐려지는 기억과는 반대로 특별한 순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농도가 진해진다. 자연스럽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그 느낌은 소소한 행복감을 준다. 오랫동안 느끼고 싶어지는 날에는 적어서 감정을 더해 보기도 하고, 기억에 상상을 입혀 보기도 한다,
--- p.140
그냥 있으면 있는 대로, 상황이 되면 되는대로 거기서 한번 뛰어들어보자. 망치면 또 나의 모드의 방향을 조금 바꿔보면 그만이다.
--- p.155
아이들은 넘어졌을 때 부모의 표정을 먼저 본다. 엄마가 화를 내고 슬퍼하면 울어버리고, 웃고 있으며 아무 일 아니라는 듯 털고 일어난다. 걱정되지만 여유 있어 보이는 웃음으로 승화하는 단단함을 가져보려고 한다.
--- p.165
마음 깊은 곳에서는 상상하는 모습대로 잘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텅 비워진 내 모습도 사랑하려고 애썼다.
--- p.169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실천해 나가면서 안정을 찾아가지만, 사실상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운명 같은 나날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일이 그리고 내년이 과연 내가 생각한대로 될지 알 수 없다. 뭔가를 이루어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그대로만 있어주어도 감사할지 모른다.
--- p.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