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하인리히 만 (Heinrich Mann, 1871∼1950)
하인리히 만은 1871년 3월 27일 상인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Thomas Johann Heinrich Mann)과 부인 율리아(Julia)의 장남으로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경제 및 재정 담당 시의원이었던 부친 덕분에 유복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성장한다. 9년제 김나지움인 카타리네움(Katharineum)을 8학년 때인 1889년에 그만둔 후, 드레스덴의 한 서점에서 약 1년간 수습 생활을 한다. 그 후에는 베를린 소재 피셔 출판사(S. Fischer Verlag)에서 수습을 하며,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학교에서 공부를 병행한다.
그는 1894년에 첫 소설 ≪어느 가정에서(In einer Familie)≫를 출간하며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하고, 이듬해에는 보수적인 성향의 월간지 ≪20세기(Das Zwanzigste Jahrhundert. Bla?tter fu?r deutsche Art und Wohlfahrt)≫(1895∼1896)도 발행한다.
1900년에는 소설 ≪게으름뱅이 나라에서(Im Schlaraffen -land. Ein Roman unter freien Leuten)≫를 출간하고, 대단히 창조적인 시기였던 1903년에는 ≪여신들(Die Go??ttinnen oder die drei Romane der Herzogin von Assy)≫과 ≪사랑 추적(Die Jagd nach Liebe)≫을 출간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하인리히 만은 유미주의적인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한다. 예술에서는 오직 아름다운 것의 형성만이 중요하다는 입장이 강했다.
그 이후 하인리히 만의 문학관에 변화가 생긴다. 소설 ≪운라트 선생 또는 어느 폭군의 종말≫(1905)에서 유미주의에서 벗어나 사회의 개선을 염두에 두는 참여문학론의 색채가 드러난다. 이제는 사회적 또는 정치적 현실의 형성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려는 의지가 보다 중요해진다. 참여문학의 본보기라 할 수 있는 소설 ≪운라트 선생 또는 어느 폭군의 종말≫을 기점으로 그는 중요한 시대적 문제들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기 시작한다. 소설이 사회적 폐해를 들추어내고, 그럼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미래의 형성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견해를 갖게 된 것이다.
1912년부터 하인리히 만은 빌헬름 제국 시대의 신흥 부르주아지를 비판적으로 다룬 소설 ≪충복(Der Untertan)≫의 집필에 매달린다. 이 소설은 잡지 ≪짐플리치시무스(Simplicissimus)≫에 부분 발표된 후, 잡지 ≪그림 속 시대(Zeit im Bild)≫에 연재되던 중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로 연재가 중단된다. 전쟁이 끝나고서야 비로소 출간되어 특별한 주목을 받게 된 소설 ≪충복≫은 노동자 계층을 묘사한 ≪가난한 사람들(Die Armen)≫(1917), 관료 정치와 외교의 수뇌부를 비판적으로 다룬 ≪머리(Der Kopf)≫(1925)와 함께 빌헬름 2세 시대의 독일 사회를 묘사한 제국 3부작을 이룬다.
1915년에 출간된 에세이 ≪졸라(Zola)≫에서 하인리히 만은 독일 국민들이 전반적으로 전쟁에 열광하는 모습과, 동생 토마스 만의 전쟁을 지지하는 태도에 저항한다. 이런 세계관 갈등으로 하인리히 만과 토마스 만의 형제 관계는 단절되었다가 1922년에야 화해가 이루어진다.
하인리히 만은 1928년부터 베를린에 살면서 공산주의자들과 가까워지고 정치적 활동에 참여한다. 그는 케테 콜비츠(Ka?the Kollwitz),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등과 함께 독일공산당(KPD)과 독일사회당(SPD)이 국가사회주의자들에 맞서 일치단결할 것을 요청하는 호소문에 서명한다. 1931년에는 프로이센 예술 아카데미 시문학 분과의 의장이 되지만, 1933년에 정치적 활동을 이유로 제명당하고 제국의회 방화 사건 직전에 프랑스로 도피한다.
망명 중에 독일인민전선 준비 위원회 의장뿐만 아니라 사민당의 명예 총재로 선출된 하인리히 만은 역사소설 ≪앙리 4세의 청년기(Die Jugend des Ko?nigs Henri Quatre)≫(1935)와 ≪앙리 4세의 완성(Die Vollendung des Ko?nigs Henri Quatre)≫(1938)을 출간하고, 1940년에 미국으로 이주한다.
미국에서 회상록 ≪한 시대가 고찰되다(Ein Zeitalter wird besichtigt)≫(1945)를 출간한 그는 1949년에 동독의 예술 및 문학 분야 1급 훈장을 수여받고, 1950년에는 동베를린 예술 아카데미 초대 회장으로 초빙된다.
그러나 1950년 3월 12일, 하인리히 만은 동독으로의 귀환을 앞두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타모니카에서 사망하고, 1961년에 유골만 동베를린으로 돌아간다.
모명숙은 성균관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독문학을 공부하고 독일 뮌스터에서 수학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논문 <하인리히 만의 소설 ≪머리≫에 나타난 지성인 문제>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학교 강사와 인천광역시 연수구 인문학대학 강사를 지냈고, 현재는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카사노바의 귀향·꿈의 노벨레≫, ≪한낮의 여자≫, ≪렘브란트 마지막 그림의 비밀≫, ≪요헨의 선택≫, ≪운명≫, ≪지구의 미래≫, ≪사랑받지 않을 용기≫, ≪이성의 섬≫, ≪미술의 순간≫, ≪아인슈타인의 그림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