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퍼의 눈을 갖게 된 이후 침침하게만 보였던 세상을 조금은 더 밝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 폭풍우가 몰아치면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 데도 못 가겠네’ 하며 투덜거리는 대신 ‘곧 서핑 하기 딱 좋은 파도가 들어오겠구나’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세상이 나를 아무리 혹독하게 다뤄도 조금은, 아주 조금은 긍정적인 시선을 던질 수 있게 됐다. 파도와 ‘밀당’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서퍼가 되어 세상이 조금은 더 견딜 만해졌다.
--- 「프롤로그_파도가 몰아치는 날엔, 바다로」 중에서
그리고…… 내 첫 서핑의 온전한 기억은 거기서 끝이 났다. 그 이후는 취한 사람처럼 기억의 필름이 드문드문 씹혀 있다. 간간히 나를 향해 “UP! UP!”이라며 소리 지르는 털북숭이 강사의 얼굴이 떠오를 뿐. 내가 아는 서핑은 분명 보드 위를 하늘하늘 날아다니는 거였는데, 유튜브에서 본 건 그랬는데, 현실의 나는 왜 물미역인가! 축 늘어진 상태로 파도가 가자는 대로 정처 없이 떠 다녔다. 내가 파도를 타는 게 아니라 파도가 나를 타는 기분. 파도가 나인가, 내가 파도인가, 여긴 또 어딘가.
--- 「1장_날카로운 첫 서핑의 기억」 중에서
오늘도 바다에 처음 나가는 사람들의 등 뒤로 무언의 응원을 보낸다. 아무리 무섭더라도 우리, 일어서기를 포기하지 말자고. 그리고 방금까지 물이 무섭다고, 한 번도 서핑 안 해봤다고, 그냥 떠 있기도 힘든데 어떻게 일어서느냐고 말하던 사람이 마침내 일어섰을 때, 찌르르 온몸에 전기가 돈다. 그 수많은 의문, 두려움, 회의를 가진 사람이 한참을 네 발로 기다가 마침내 두 발로 설 때, 보드 위에서 손을 쭉 펴고 앞을 뚫어져라 바라볼 때, 잔뜩 겁에 질렸던 얼굴이 성취감으로 활짝 펴질 때, 속으로 같이 쾌재를 부른다. 그래, 그거지.
--- 「1장, 일어서지 않으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다」 중에서
그날 서핑을 마치고 밤새 유튜브에서 에스키모롤 영상을 찾아봤다. 사실 바다에서 밀려날 때마다 과하다 싶을 만큼 비참한 기분이 들곤 했는데, 그건 바다가 서퍼를 밀어내듯 세상이 나를 밀어내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서울이라는 낯선 도시에 집이라고 부를 공간 하나 없는 나(원룸도 집은 집이지만, 이름 그대로 방에 가깝기에). ‘취준생’이라는 말로 퉁 쳐진, 그래서 부모님 없이는 제대로 먹고살지도 못하는 나. 스스로를 제대로 알지도 설명하지도 못하는 나. 그런 내게 에스키모롤은 발상의 전환이었다. 밀려나도 덜 밀려나는 방법을 찾을 것. 덕다이브든 에스키모롤이든, 뭐든 하면 완전히는 안 밀려날 수 있다는 게 조금 위안이 됐다.
--- 「2장_더 깊이 빠져야 넘을 수 있다」 중에서
바다에 나가지 않으면 짠물을 먹을 일도, 파도에 온몸을 강타당할 일도, 엎어지고 다칠 일도 없다. 하지만 그러면 바다 위에서 무지개를 볼 일도, 자연의 광대함을 느낄 일도, 아주 잠깐일지언정 물마루 위에 올라서서 바다를 내려다볼 일도, 파도를 잡아탔다는 쾌감을 느낄 일도 없다. 파도가 영 안 잡혀서 바다에 들어가기 싫어지면, 스스로에게 말한다. 파도를 잡든 안 잡든 우선 바다에 나가자고. 실패든 성공이든 모든 것이 거기 있다고.
--- 「2장_바다에 나가거나, 나가지 않거나」 중에서
억 소리 나게 큰 덤프성 파도가 몰려오면 언니들은 아직 초보였던 내게 걱정을 담뿍 담아 소리를 질렀다.
“패들아웃 해! 패들아웃!”
글라시하게 딱 타기 좋은 파도가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
“네 거야! 패들해! 잡아! 패들! 패들!”
그 소리는 마치 컬링 경기의 ‘영미!’ 같았다.
“영미! 영미!”
그 ‘영미’ 소리는 때에 따라 응원도 되고 코칭도 되고, 때론 위로도 되었다. 내가 열심히 했는데 파도를 못 잡았을 때 언니들은 안타까운 탄식을 내질렀고, 마침내 파도를 잡아냈을 때는 기쁨의 환호성을 질러주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바다에 가고 싶다. 서핑 하는 언니들이 있는 그 바다에.
--- 「3장_서핑 하는 언니들」 중에서
바다가 잔잔한 날 서프보드 위에 이렇게 누워 있으면 모든 걱정이 사라진다. 떠 있으려고 안간힘을 쓸 필요도 없고, 바닷물이 언제 내 얼굴을 덮칠까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괜찮다. 축 늘어져 숨만 쉬어도 떠 있을 수 있다. 인간 보노보노가 된 것만 같다. 아무것도 안 해도 잘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은 덤이다. 계속해서 뭔가를 더더더 해야 할 것만 같았던 일상은 멀리 있는 해안가처럼 아득해진다. 태양과 바람과 파도,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천천히 움직인다. 바다 위에선 오히려 내 일상이 과속이라는 게 절절히 실감된다.
--- 「3장_숨만 쉬어도 떠 있습니다?」 중에서
우선 턴을 잘하려면 파도를 이해해야 한다. 파도는 꼭 산같이 생겼다. 제일 높은 부분을 머리 혹은 피크라고 하 고, 피크 양옆으로 내려오는 부분을 숄더라고 한다. 파도가 앞으로 나가는 힘이 보드를 움직이는 원동력인데, 그 힘은 피크가 제일 세고 다음은 숄더, 가장자리 순이다. 피크와 숄더 언저리에서 파도를 잡으면 보통 파도가 부서지는 걸 피해서 오른쪽이나 왼쪽 가장자리로 보드를 모는데, 그러다 보면 당연히 보드를 미는 힘이 약해진다. 이때 턴이 필요하다. 턴을 해서 아직 힘이 있는 피크 쪽으로 갔다가, 또 턴을 해서 다시 가장자리로 갔다가, 또 턴을 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한 번만 타면 아까우니까, 타고 또 타고, 이렇게 파도 재활용이 이뤄진다. 정말 턴을 잘하고 싶다. 모르는 만큼 더 많이 알아가고, 또 안 만큼 그전의 나를 부정하게 되더라도, 매순간 더 옳은 선택을 내리고 싶다. 그렇게 나의 시간을 계속 재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 「4장_파도를 재활용하는 법」 중에서
세상은 그대로인데 내가 흔들릴 때면 요가 매트 위에 선다. 온 정신을 나에게 쏟는다. 손가락 끝부터 발가락 끝 까지 온몸을 느낀다.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호흡을 느낀다. 어디서부터 내가 흔들리는지, 이대로 흔들려도 괜찮은지 가만히 지켜본다. 반대로 나 빼고 모든 것이 바뀌는 것 같을 때는 서프보드 위에 선다. 그리고 세상의 리듬에 맞춰 흔들린다. 파도가 어디쯤에서 깨질지, 언제 서고, 또 언제 내려와야 할지, 몸이 알아서 최적의 순간을 찾아낼 때까지 바다 위에서 한껏 흔들린다. 그런데 어디 하나만 따로따로 흔들리라는 법이 있던가. 보통은 내가 흔들릴 때 세상도 흔들렸고, 세상이 움직일 때 내 마음도 요동을 쳤다. 그럴 때면 서핑과 요가, 둘 다 너무나 필요하다.
--- 「4장_뭍에선 요가를, 바다에선 서핑을 합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