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더 행복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하지 않다. 종교의 기본정신을 놓친 사람들에게는 종교가 유해한 것이다. 이단이나 종교중독에 빠진 이들은 종교 때문에 인생의 소중한 것을 놓쳐 버린다. 미국의 성직자 프랭크 크레인(Frank Crane)의 말은 일리가 있다. “지나치게 믿으면 기만당할 수 있지만, 충분히 믿지 않으면 고뇌 속에 살게 된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그 어떤 것보다 기독교 신앙으로 살아왔다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고 인생의 행운이다. 기독교 신앙은 내 인생의 큰 기둥이다. 나팔꽃에게 스스로 솟아오르는 힘이 없듯이 기독교 신앙이라는 큰 기둥이 없었다면 오늘의 내 인생은 없다. 기독교는 어떤 사상, 학교, 단체, 인물보다도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고마운 종교이다. 교회를 다니며 살아온 삶이 아주 행복하고 뿌듯하다. 내놓을 게 없는 사람이 이렇게 행복하게, 높은 자존감으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가르침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 교회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 p.42~43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고 정의한다. 믿음은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단서라는 것이다. 누구도 하나님과 영적 세계를 보여 줄 수도, 증명해 보일 수도 없다. 초월자 하나님은 인간의 가시권에 계신 분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에 관한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만물에 대한 과학적 판단들은 여러 모양으로 진화론을 가리킨다고 하지만 우리는 과학이 가리키는 것을 보지 않고 성경이 가리키는 하나님의 창조를 받아들인다. 이것이 믿음의 힘이다.
신앙의 위인들은 경배 대상으로서의 유일신 하나님을 ‘반드시’ 믿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사탄도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가(약 2:19). 하나님이 계신 것을 반드시 믿어야 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가?’를 말한다. 하늘님, 하느님, 신령님 같은 하나님 짝퉁 계열의 천신(天神)들의 허상을 수용한다고 그것이 구원에 이르는 참 믿음은 아니다. 독생자를 보내 주신(요 3:16) 사랑과 구원의 하나님, 아들을 주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예수님이 보여 주신 하나님의 현존을 ‘내가’ 진실하게 수용하는 것이 참 믿음이다.
--- p.46~49
흔히 기독교를 상징하는 단어를 ‘사랑’ ‘구속’ ‘십자가’라고 말한다. 기독교의 핵심 가치 단어들인 것은 맞다. 이런 단어들을 빼면 기독교는 존재하지 못한다. ‘사랑’만 해도 성경에 557회가 나오니 기독교를 대표할만한 단어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흘러오고 그 사랑으로 우리가 구속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그 원인과 과정에는 은혜라는 해류(海流)가 흐른다. 은혜가 없으면 하나님의 사랑도 값없이, 조건 없이 우리에게 닿을 수가 없고 믿음으로만 이루어지는 ‘이신칭의’ 구원도 없고 오늘의 나됨도 없다. 그래서 성경에는 ‘은혜’라는 단어가 291번이나 나온다.
예수님이 오셔서 종교생활을 쉽게 해주셨다. 지나치게 형식적인 것을 폐지시키고 심령이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워지는 복음을 전했다. 복음은 율법에서의 자유와 해방이라는 복된 소식을 갖고 왔다. 은혜가 채워지자 더 기도했다, 말씀을 더 사모했다. 구원받기 위한 노력 차원의 봉사와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됨이 기쁘기에 열심히 봉사했다. 유대교에 소속되어 있을 때보다 더 뜨겁고 열성적인 신자들이 되었다. 초대교회의 믿음의 동력은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기 때문이다.
--- p.100~101
우리가 성령 충만 없이 교리적으로 이해하고 지식적으로 믿음생활을 한다는 것은 바람이 빠진 자전거 바퀴, 자동차 바퀴로 운전하는 것과 같다. 쇠로 만든 바퀴의 달구지를 끌고 가는 것과 같다. 얼마나 힘들까? 성령을 받으면 타이어에 공기가 가득한 것처럼, 돛이 바람을 타고 나가는 것처럼, 좋은 엔진의 자동차로 달리는 것처럼 쉬우면서 신이 난다. 충만하면 비행기 엔진이 된다. 1단계는 종교적인 크리스천, 2단계는 지식적인 크리스천, 3단계는 영적인 크리스천이다. 1단계는 아예 구원을 받지 못한다. 2단계는 구원은 받지만 영향력이 없다. 3단계는 믿음의 영향권이 있다. 3단계의 신앙생활로 가야 한다. 고백에서 간증으로, 다시 간증에서 전도로, 그래서 사람을 낚는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 행복하고 풍성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누릴 수 있다. 나의 믿음은 지금 어느 단계일까. 지금의 내 믿음 상태를 알아야 내가 소유하고 있는 믿음의 능력도 알게 되고 그걸 적절하게 사용하게 된다. 믿음을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비로소 참된 그리스도인이다.
--- p.176~177
교회는 은혜의 저장소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은혜를 얻으려 교회를 찾아왔다가 비은혜의 공동체로 변질된 것을 알고 실망하고 떠난다. 떠난 후에는 교회 비판자가 된다. 물론 교회는 불완전하다. 구성원인 우리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완전한 교회를 찾으려 한다면 죽을 때까지 찾지 못하고 교회 유랑민이 될 것이다. 만약이라도 완전한 교회가 있다면 당연히 우리는 들어갈 수 없다. 우리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라는 배가 삐거덕대고 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기독교는 천 년 이상을 항해했지만 지금은 구원선의 용도를 잃어버렸다.
미국이라는 배는 250년을 항해하고 있고 아직까지는 나름 제 몫을 감당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140여 년 항해를 하면서 쾌속정으로 달려온 것만큼 탈도 많고 말도 많다. 그래서 삐거덕거리는 부분이 한두 곳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국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 은혜의 기관은 교회밖에 없기 때문이다.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은혜를 방출하기 위해 다시 교회와 함께해야 한다. 지난 날 한국 교회는 얼마나 위대했던가! 우리가 그 안에서 받은 사랑을 교회 안에서부터 실천해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만큼 한국 교회는 교회다움을 회복하면서 사랑을 받는 여인처럼 빛나게 될 것이다.
--- p.241~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