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였던 범마유가 석가모니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감복하여 그 음성을 일러 ‘범음성’이라 하였다. 붓다의 음성은 말씀의 씨앗이 인체를 통해서 울려 나오는 파동이므로 그 말씀의 궁극은 태초로 거슬러 간다. 그러므로 일본의 진언종에서는 석가모니 붓다를 넘어 우주의 근원인 대일여래(비로자나 불)를 그들 ‘쇼묘[聲明]’의 시조로 삼는다.
---「범패의 원음 석가모니의 음성」중에서
그렇다면 불교음악은 어떠한가. 아직도 2천여 년 경전의 대목을 인용하는 것 외에는 불교음악 미학의 근간이 되는 악론이 없다. 예를 들어, 남방의 빠알리 경전 문화권에서는 초기 승단의 수행자들의 엄격한 계율에 의해 어떠한 율적 활용도 금지되어야 한다. 북방의 대승불교에서는 음성공양이며 기악의 공덕으로 큰 복을 누린다는 교설만이 있었을 뿐 어떤 음악을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떤 음악은 무엇 때문에 적절하지 못한지에 대한 구체성과 설명이나 현실적 반영이 없었다.
---「죽림칠현 혜강의 도와 음악」중에서
중국 사람들이 인도의 자유분방한 감성과 주술 에너지에 자극을 받았다면, 불교에서는 공(空) 사상에 큰 감화를 받았다. 붓다의 수많은 말씀 중에 가장 먼저 중국 한어로 번역된 것이 공(空) 사상을 담고 있는 반야경 계통이었음도 이를 말해주고 있다. 유교의 신(信)·의 (義)·예 (禮)와 도교의 자연지리에서도 채워지지 않던 목마름을 해결해 준 공의 원리는 중국의 지성인들에게 탈출구요, 해방구였다. 중국에 들어온 서역승들은 서책이나 그 어떤 것도 가진 것 없이 유랑하며 법을 전파하는데 그것은 모두 암송하며 수지하고 있던 석가모니 붓다의 말씀이었고, 그 말씀의 요체인 음성으로 신통 묘력을 발휘하였다.
---「주술문화와 부적문화 속 불교음악」중에서
성모마리아는 불교의 준제 보살과도 상통한다. 준제(准提)는 인도의 찬디(Ca???)여신을 음사한 이름으로, 불교에 유입된 후 밀교 수행의 중심이 되었고, 중국에서는 정토, 선종을 넘어 도교에서도 신봉되었다. 부처를 낳고 양육하는 어머니로 신봉되며 밀교 계통의 『칠구지불모소설준제다라니경(七俱?佛母所說准提陀羅尼經)』이 찬제 되었고, 이를 줄여 『준제경(准提經)』으로 불렸다. 찬디는 쉬바(Shiva)의 배우자인 두르가(Durg?)여신으로 어머니의 신과 관련이 깊다.
---「관세음보살과 성모마리아는 누가 만들었나」중에서
비파’ 하면 떠오르는 불교의 이미지로 인하여 조선 후기에 사라진 반면 군자의 저음을 숭상한 유생들의 취향에 맞는 거문고가 득세하게 되었다. 앞서 중국음악의 역사에서 보았듯이 중국의 무겁고 경직된 음악을 말랑 젤리로 만든 서역 음악이었듯이 불교의 유연하고 자유분방한 감성을 우아하게 표현해낼 수 있는 악기로 비파가 제격이었다. 그러나 억불이 당연지사였던 유생들이 공자의 금(琴)보다 더 무겁고 중후한 거문고로 영산회상을 탔다. 이렇듯 영산회상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에는 거문고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허허 탕탕, 세상을 잊게 만드는 거문고」중에서
아라비안의 이야기 노래가 문학으로 자리 잡은 시기는 대개 서기 후 450년에서 지금까지 약 1,700년 정도로 본다. 이들을 시기별로 보면 이슬람 이전, 이슬람 초기, 우마이야시대를 거쳐 근현대 순으로 간추려진다. 이슬람 이전의 이야기는 주로 사랑, 비방, 풍자, 술이나 용맹담에 관한 내용이다. 이와 더불어 아랍에는 ‘까시다(qa??dah)’라는 이야기 노래가 있었다. 서정적인 운율에 맞추어 노래하는 ‘까시다(qa??dah)’는 대체로 정형시로 이루어졌고 장편 시들은 길고 긴 노래였으며, 그 가운데 산문 형태도 더러 있었다.
---「인도의 빤짜딴뜨라와 아라비안나이트」중에서
결과적으로 고대인들이 목숨을 바쳐 달성하고자 했던 것은 자신들이 생각한 우주의 궁극, 즉 신에게 다다르고자 했던 것이었고, 그 소통의 매개가 음향이었다. 하늘 혹은 우주와 소통하고자 한 인간의 열망이 얼마나 지극했으면 그런 공명점을 만들어냈을까. 이러한 행위가 우리네 불교의식에도 있으니 수륙재의 오로단이다. 동서남북 간방천지 시방(十方)으로 사신을 보내기 위해 노래를 하는데, 그것이 범패이다.
---「신을 향한 공명점과 한국 범패의 미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