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이 깃든 엠마오로 가는 길. 예수는 자신을 배신하고 자책감과 절망감으로 괴로워하는 두 제자에게 다가가 함께 걷는다.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라는 말에는 자신을 저버린 제자를 용서하고 그들의 탄식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예수의 이미지가 확연히 드러난다. 또한 동반자 예수가 죽은 후에도 자신들 옆에 머물렀다는 종교 체험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예수는 죽었다. 그러나 그는 이사야서에 쓰인 것처럼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스승이 늘 자신들 옆에 있다는 제자들의 의식은 이 이야기를 형성하게 했으리라. 하지만 이때 예수는 제자들에게 아직 ‘그리스도’는 아니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기까지 그들에게는 많은 과정이 남아 있었다.
---「고통스럽고 긴 밤」중에서
초기 그리스도교는 예수를 저버리고 배신한 비애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배신한 제자들을 미워하기는커녕 끝까지 사랑하려고 했던, 어머니와 같은 예수의 모습에서 생겨나게 되었다. 배신한 자식에게도 사랑을 베푼 어머니와의 관계. 이 같은 관계에서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는 예수의 이미지가 생겨났다. 또한 인간의 그러한 나약함, 가련함을 이해해 주는 동반자 예수의 이미지가 생겨났고, 그 동반자 예수가 다시 자신들 곁에 올 것이라는 신념도 생겼다. 이처럼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기 전까지 지녔던 이미지는 제자들의 생생한 고백에서 시작되었다.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중에서
스테파노가 처형당했지만, 베드로 일행은 사태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형제자매라고 부르던 신자들이 집집에서 끌려 나와 감옥에 갇히고 있음에도 그들을 돕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베드로 일행은 예수가 처형된 그 무더운 날에도 그러했듯이 다시 비겁한 겁쟁이가 되었다. 그때 뼈저리게 느껴야 했던 굴욕감, 자기혐오, 양심의 가책, 스테파노의 죽음이나 예루살렘 시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박해를 접하면서 심적 고통에 휘말렸을 것이다. 그날 제자들은 나약함을 통절히 깨달았고, 스테파노의 죽음 앞에서 예전과 다름없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았다. 사도행전 7장과 8장의 목적은 스테파노 사건을 사실 그대로 보고하는 데에 있지 않다. 오히려 나약했던 제자들이 예수 사후에도 여전히 그때처럼 인간적인 비애를 뼈저리게 느껴야 했으며, 인간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나약함에 걸려 넘어진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사도행전은 겁쟁이였던 사도들이 강해지기까지 어떠한 과오를 범했는지 조심스럽게 전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 사후에 재기한 제자들이 죽을 때까지 용기와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스테파노 사건을 읽으면 그들도 인간적 나약함으로 괴로워했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이를 통해 큰 위로와 희망을 얻게 된다. 예수를 목격하고 그 현현을 체험한 제자들조차 그러했던 것이다.
---「강한 스테파노, 약한 베드로」중에서
예수는 이 사랑을 말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으로 제자들에게 드러내었다. 십자가에서 바친 마지막 기도에서 그 사랑을 증명해 보였던 것이다. 제자들은 스승의 십자가 사건 앞에서 말을 잃었다. 자기변명도, 자기 정당화도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날부터 그들은 자신들이 저버린 예수를 기억 속에서 지울 수가 없게 되었다. 잊어버리고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예수는 그들의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예수는 그들을 사로잡았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는 제자들의 마음속에서 다시 나타나고 부활했다
---「예수의 불가사의, 불가사의한 예수」중에서
인간이 고독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진지한 자세로 대하여 내면과 마주한다면, 자신의 영혼이 반드시 어떤 존재를 찾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에 실망한 사람은 배신하지 않을 존재를 찾는다. 나의 슬픔을 헤아려 줄 이가 없어 절망하고 있는 이는 자신을 이해해 줄 그 누군가를 찾는다. 이는 감상도 어리광도 아니다. 다른 이에 대한 인간의 조건이다.
때문에 인간의 존재와 역사가 계속되는 한, 인간은 영원한 동반자를 계속 찾을 것이다. 예수는 언제나 인간의 이러한 간절한 기대에 답했다.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죄를 범했고, 그리스도교 역시 때로는 과오를 범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이 계속 예수를 찾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예수의 불가사의, 불가사의한 예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