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웅! 너, 또 졸았지? 너는 어째 5교시마다 그러냐?”
선생님이 짐짓 엄한 목소리로 꾸짖으셨다. 물론 수업시간에 존 것은 내 잘못이다. 하지만 유리가 지우개를 던진 걸 빤히 알면서도 나한테만 뭐라고 하셨다.
“선생님! 그런데요, 유리가 저한테 지우개 던졌거든요?”
참다못한 내가 불퉁거렸다.
“그래? 웅이 깨우려고 그랬고만. 웅이, 유리 덕분에 이제 잠 깼지? 그럼 됐어. 다시 책 보자.”
‘헐, 그럼, 선생님은 유리가 잘했다는 말씀? 친구에게 지우개를 던 졌는데?’
하마터면 속에 있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선생님은 늘 유리 편
이다. 아니 여자애들 편이다. 아마 남자애들이 던졌으면 한 소리 했 을 것이다. 남자애들은 그게 늘 불만이다.
--- p.13~14
“자, 오늘은 새 선수가 들어왔으니 공을 서로 주고받는 연습을 해 보자.”
코치님이 선수들을 빙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는 서로 짝을 맞춰 거리를 두고 마주 섰다. 나도 동급생 남자애와 마주 섰다. 그런데 그 친구 표정이 떨떠름해 보였다. 처음에 나와 짝이 될 때부터 “치!” 하 며 실망하더니 나를 보고 비식비식 웃던 친구였다.
내 불길한 예감은 딱 들어맞았다. 내가 코치님 지시에 따라 친구 에게 공을 차 주자 친구는 옆으로 공을 세게 차 보냈다. 내가 도저히 공을 받을 수 없는 거리였다. 처음엔 실수로 그러는 줄 알았는데, 친구는 매번 일부러 옆으로 공을 차 보냈다. 멀리까지 가서 공을 가져 오느라 숨이 턱에 닿았다. 화가 났다.
“야! 너, 나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
내가 공을 가지고 돌아와 친구에게 소리쳤다.
“무슨 소리야? 자꾸 빗맞아서 그러는 건데.”
친구는 표정 하나 안 바꾸고 거짓말했다. 도무지 말이 안 통할 것 같았다. 다른 선수들이 우리를 쳐다봤다. 코치님도 우리를 힐끗 돌아 봤다. 약이 올랐지만, 이까짓 장난에 축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공 을 더 멀리 차 보내 앙갚음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친구가 짓궂게 굴수록 공을 정확히 차 줬다. 친구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친구가 내게 공을 제대로 차 보냈다.
--- p.39~41
급식 시간이었다. 민호가 내 쪽을 흘깃흘깃 바라보면서 옆자리 친구에게 귓속말했다. 둘이 키득거리는 모습이 눈에 거슬렸다. 나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교실로 갔다. 민호가 내 뒤를 따라왔다.
내가 교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민호가 내 뒤통수에 대고 비아냥 거리듯 한마디 툭 내뱉었다.
“너희 아빠 백수냐?”
“뭐?”
“어제는 시장에서, 지난번에는 학원 차 기다리다가 봤거든. 아파 트 놀이터에서 너랑 캐치볼하는 거!”
“그게 뭐? 우리 아빠 백수 아니거든!”
“그럼 어디 다니는데?”
갑자기 머리가 하얘졌다. 아빠는 백수가 아니다. 그렇다고 다른 아빠들처럼 회사에 다니거나 밖에 나가 일을 하지는 않는다. 머릿속 이 복잡해졌다. 내가 머뭇머뭇하자 민호가 다그쳤다.
“그거 봐. 백수 맞네!”
“아니라니까! 죽을래?”
주먹 쥔 손을 들어올리자 민호가 움찔하며 뒷걸음질치다 도망갔 다.
화가 치밀었다. 아빠는 백수가 아닌데, 전업주부인데…….
--- p.51
사람들은 버스를 타면서 기사가 여자라고 신기한 듯 쳐다 보며 수군거렸다. 그중 한 아저씨는 버스를 타며 엄마를 보더니 놀라 는 눈치였다.
“어? 기사가 여자네?”
아빠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저씨는 자리에 앉지도 않고 운전 석 옆에 기대서서 엄마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아줌마, 남편은 있나?”
“그럼요. 예쁜 딸도 있는데요.”
“아니, 그럼 오지랖 넓게 뭐 한다고 여자가 큰 버스를 운전하고 그런데?”
“제가 오지랖 넓은 거 어떻게 아셨대요? 하하.”
--- p.69
에릭은 죽을 맛이었어. 파티는 점점 엉망이 되어갔고, 설거지거 리는 산더미처럼 쌓여갔어. 아이들은 얼마나 뛰어다니는지 쫓아다니 다 보면 정신이 쏙 빠졌어. 수영 연습을 하고 돌아온 에리얼에게 에 릭은 버럭 화를 내면서 수영을 당장 그만두고 집안일에나 신경 쓰라고 했어.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지 않고 수영에만 신경 쓰는 에리얼이 못마땅했던 거야. 하지만 에리얼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
‘여자면 어때, 엄마면 어때, 나도 할 수 있다고.’
에리얼은 에릭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어.
“그럼 이렇게 해요. 당신과 내가 수영시합을 해서 내가 지면 수영 을 포기하고 살림에 전념할게요. 하지만 내가 이긴다면 당신도 나를 인정하고 응원해 주세요.”
“좋아요. 그렇게 합시다. 3일 후에 시합하기로 하죠.”
에릭은 기분 좋게 승낙했어. 남자가 여자에게 절대 질 리 없다고 자신했기 때문이지. 둘의 시합 소식은 백성들에게도 관심거리였어.
--- p.90~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