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랑을 받는 대상’이라는 의미로 우리가 흔히 ‘아이돌(idol)’이라고 쓰는 말의 바른 외래어 표기는 ‘아이들’입니다. 이 단어의 발음기호가 ['aIdl]이거든요. 이 때문에 2000년대 초반까지도 적잖은 언론이 ‘아이들’로 썼습니다. 저 역시 그때는 ‘아이돌’이 아니라 ‘아이들’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너나없이 ‘아이돌’로 쓰므로 국립국어원도 ‘아이돌’을 묵인(?)하고 있습니다.
외래어 표기에는 이런 것이 참 많습니다. 사람들이 실제 사용하는 것과 표기 규정 사이에 괴리가 심한 말들이요. 뒤에 가서 외래어표기법을 설명하면서 좀 더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실생활에서 외래어표기법대로 쓰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릅니다. 표기법에 맞게 쓰는 일이 되레 소통을 방해할 수 있거든요. 따라서 외래어표기법은 규정을 정확히 따를 때와 그렇지 않고 ‘소통’에 더 신경 써야 할 때를 구분해 적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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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풋나기’가 ‘이 모음 역행동화’를 인정받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풋나기’가 아니라 ‘풋내기’가 바른말이라는 얘기죠. 새내기, 서울내기, 여간내기, 신출내기 등에 두루 쓰이는 ‘-내기’는 원래 ‘나다’에서 온 말이니 ‘나기’로 쓰는 것이 합당합니다. 오래전부터 그렇게 써 오기도 했고요.그런데 사람들이 하도 ‘-나기’를 ‘-내기’로 소리 내는 바람에 1988년 표준어규정을 정하면서 아예 ‘-나기’ 꼴을 버리고 ‘-내기’ 따위로만 쓰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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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음의 네 낱말을 여러분이 한번 소리 내 보세요.
‘머리기름’ ‘머리기사’ ‘머리그림’ ‘머리글’!
이들 말 중에서 뒷소리의 ㄱ이 ㄲ으로 소리 나는 말에 사이시옷을 넣어야 하는데, 어느 말에 사이시옷이 들어갈 것 같은가요? 모르시겠죠? 사실 저도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자주 틀리고 나서 국어사전을 뒤진 뒤에 겨우 알았습니다. 정답은 [머리끼름] [머리-기사] [머리끄림] [머리-글]입니다. ‘머릿기름’과 ‘머릿그림’에만 사이시옷을 받쳐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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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옷’과 ‘윗옷’은 둘 다 맞는 표기이지만 의미가 다릅니다. 어느 말이 틀린 것이 아니라, 의미에 따라 구분해 써야 하는 말인 거죠. ‘윗옷’은 아래옷(치마·바지)에 대립되는 상의(上衣)를 나타낼 때, ‘웃옷’은 위에나 거죽에 입는 겉옷을 뜻할 때 쓴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와이셔츠는 ‘윗옷’이고, 바바리코트는 ‘웃옷’입니다.
자, 지금까지 한 얘기를 정리하면 ▲‘윗’과 ‘웃’이 헷갈리는 말 가운데 대부분은 ‘윗’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웃’이 붙는 말은 웃돈·웃어른·웃거름·웃통 등 몇 개에 불과하며 ▲된소리나 거센소리 앞에서는 ‘위’(위치마, 위팔, 위턱, 위쪽)로 적는다는 겁니다. 아시겠죠?
--- p.51
우리가 흔히 말하고 자주 듣는 말인데, 막상 그것을 글자로 적으려면 어떻게 써야 할지 헷갈리는 말이 적지 않습니다. 흔히 ‘게 섯거라’로 쓰는 말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 표현은 신문에서 기사 제목으로도 자주 쓰이는데, “쿠팡 게 섯거라… 큐텐, 위메프 전격 인수” 등처럼 잘못 쓰는 일이 흔합니다. 또 이를 ‘계 섯거라’나 ‘개 섯거라’로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게 섯거라’ ‘계 섯거라’ ‘개 섯거라’는 모두 바른말이 아닙니다.
우선 ‘게’ ‘계’ ‘개’ 중에서는 ‘게’만 바르게 적은 겁니다. ‘게’가 ‘거기’의 준말이거든요. 그리고 ‘섯거라’는 ‘섰거라’로 써야 합니다. 이때의 ‘섰거라’는 ‘서 있거라’가 줄어든 형태입니다. (…)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무엇을 주면서 하는 말”인 ‘옜소’도 똑같습니다. ‘예(‘여기’의 준말) 있소’의 준말이므로 ‘옛소’로 쓰지 말고 반드시 ‘옜소’로 적어야 합니다.
어때요? 머릿속에 뭔가 찡~ 하고 흐르는 게 있죠? 우리말 공부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단어 하나하나를 외우면 괜히 머리만 아픕니다. 그보다는 말의 원리를 찾고, 한글맞춤법과 표준어규정을 만든 개념을 파악해 그것을 깨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 p.108-110
“물에 젖어서 부피가 커지다”라거나 “분량이나 수효가 많아지다”라는 뜻의 말은 ‘불다’가 아니라 ‘붇다’입니다. 그런데 ‘붇다’를 비롯해 ‘묻다’ ‘듣다’ ‘걷다’ 등처럼 어간 말음에 ‘ㄷ’ 받침이 있는 말은 활용할 때 특이한 형태를 띱니다.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 앞에서 ‘ㄷ’이 ‘ㄹ’로 변하는 것이죠. “그에게 물었다(묻다)” “그런 소리를 들으니(듣다) 기분이 나쁘다” “그 길을 걸은(걷다) 적 있다” 따위처럼 쓰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 앞에서 예로 든 “몸이 많이 불었다” “체중이 불어 걱정이다” 등의 ‘불었다’와 ‘불어’는 바른말입니다. ‘불은 몸’으로 쓸 수도 있고요.
하지만 자음 앞에서는 ‘ㄷ’이 ‘ㄹ’로 바뀌지 않습니다. “묻지 않았다” “듣고 있다” “2시간 걷자니 다리가 아프다” 등처럼 ‘ㄷ’ 받침이 그대로 쓰입니다. 따라서 “몸이 불고 있어요” “체중이 불지 않아요” 따위처럼 쓰지 못합니다. “몸이 붇고 있어요” “체중이 붇지 않아요”로 써야 하죠. ‘묻고 있어요’를 ‘물고 있어요’로, ‘듣지 않아요’를 ‘들지 않아요’로 쓸 수는 없잖아요.
--- p.135-136
이때의 ‘우’는 “일부 동사 어간 뒤에 붙어 사동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입니다. 여기서 사동접미사가 어쩌고저쩌고하면 머리만 아플 테니까 그냥 건너뛰고, 이것 하나만 알아 두세요. ‘피다’ 앞에는 목적어가 오지 못하지만, ‘피우다’ 앞에는 꼭 목적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면 ‘바람을’ 뒤에는 ‘피고’와 ‘피우고’ 중 뭐가 와야 할까요? 그렇죠! 당연히 ‘피우고’가 와야 합니다. ‘담배를’ 뒤에도 마찬가지고요. 따라서 “바람(을) 피다 걸렸다”나 “담배(를) 한 대 피고 올게”의 ‘피다’ ‘피고’는 ‘피우다’ ‘피우고’로 써야 합니다. 특히 ‘바람피우다’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동사이므로, 동사적 용법으로 사용할 때는 ‘바람 피우고’처럼 띄어 쓰지 말고 ‘바람피우고’로 붙여 써야 합니다.
--- p.144
‘뚝배기’와 ‘곱빼기’가 ‘-배기’와 ‘빼기’로 표기가 달라지는 것도 된소리 규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뚝배기’는 ‘뚝’과 ‘배기’로 나누어지지 않는 ‘한 단어’로 보고, ‘곱빼기’는 ‘곱+빼기’ 꼴로 보는 거죠.
우리말에서 ‘뚝’은 “울음을 뚝 그쳐라” “물이 뚝 끊겼다” 등처럼 부사로는 홀로 쓰이지만, 명사로는 홀로 쓰이지 않습니다. 흔히 ‘강둑’ 따위를 얘기하면서 쓰는 ‘뚝’은 ‘둑’을 잘못 쓴 말입니다. 즉 ‘뚝배기’는 한 단어이므로, 저 앞에서 말한 1단계 ②의 규정에 따라 ‘뚝배기’로 적습니다.
하지만 ‘곱빼기’는 다릅니다. 우선 ‘곱’은 여러분도 다 알다시피 홀로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거기에 “‘그런 특성이 있는 사람이나 물건’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또는 “‘비하’의 뜻을 나타내는 접미사”로 쓰이는 ‘-빼기’가 붙어서 만들어진 말이 ‘곱빼기’입니다. ‘곱빼기’와 같은 유형의 말로는 ‘밥빼기’와 ‘악착빼기’도 있습니다. 이들 말도 앞말의 받침이 ‘ㄱ’과 ‘ㅂ’이지만 한 형태소의 말이 아니므로 각각의 형태소를 밝혀 ‘밥빼기’와 ‘악착빼기’로 적는 것입니다.
--- p.150
형태소란 “뜻을 가진 가장 작은 말의 단위”입니다. 여기서 “뜻을 가졌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오빠에서 ‘오’나 ‘빠’는 무슨 뜻이죠? 뜻이 없죠. 그러니까 이때의 ‘오’와 ‘빠’는 형태소가 아닙니다. ‘오빠’가 형태소인 겁니다.잔뜩, 글썽, 움찔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잔과 뜩, 글과 썽, 움과 찔로 나뉠 수 있나요? 그럴 수는 없죠. 그러니까 잔뜩, 글썽, 움찔 등은 그 말 자체가 한 형태소입니다.
--- p.151
흔히들 “반말을 하는 일”을 ‘반말하는 짓’으로 생각하고, 그런 ‘반말짓’에다 ‘-거리’를 붙여 ‘반말짓거리’로 쓰는 듯한데, 이는 바른말이 아닙니다. ‘욕지거리’처럼 ‘반말지거리’로 써야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한 모든 국어사전에도 “반말로 함부로 지껄이는 일. 또는 그런 말투”를 뜻하는 말로 ‘반말지거리’가 올라 있습니다. 아울러 “반말하는 짓”을 뜻하는 말은 ‘반말짓’이 아니라 ‘반말질’입니다. 여기서 ‘-질’은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런 일’ 또는 ‘그런 행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랍니다. 주먹질, 싸움질, 뒷걸음질 등에 붙어 있는 ‘-질’이 모두 그런 ‘-질’이죠.
--- p.154
띄어쓰기가 어려운 것은 한글맞춤법으로 정해 놓은 규정이 아주 미흡한 데다 관용으로 처리되는 낱말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똑같은 낱말이 문장에서의 역할이나 의미에 따라 붙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찌그러진 달보다 둥근 달이 더 좋아”라고 할 때는 ‘둥근’과 ‘달’을 띄어 써야 맞지만, “산 너머로 둥근달이 떠올랐다”라고 할 때에는 ‘둥근’과 ‘달’을 붙여 쓸 수도 있습니다. 국어사전에 “음력 보름을 전후해 둥그렇게 된 달”이라는 의미로 ‘둥근달’이 표제어로 올라 있기 때문이죠. 이때의 ‘둥근달’은 ‘찐빵’처럼 그 상태로 명사입니다.
--- p.293
‘커녕’이라는 글자를 쓸 때는 무조건 앞말과 붙여 써야 합니다. 이유는 물을 것도 없습니다. 어떤 경우든 붙여 쓰면 그게 제대로 쓴 거니까요. ‘사랑은 커녕’처럼 ‘커녕’ 앞에 ‘은’이나 ‘는’이 오면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띄어 쓰는데, 실제는 ‘은커녕’ ‘는커녕’이 하나의 말(조사)이랍니다.
--- p.300
할지 말지, 주울지 버릴지 등처럼 ‘-지’ 앞에 ‘ㄹ’ 있으면 그것은 무조건 어미라는 소리입니다. ‘-ㄹ지(-을지)’가요. 그러니 무조건 붙여 써야 하죠. 문제는 ‘-ㄴ지(-은지 / -는지)’인데, 이것 역시 하나만 알면 됩니다. 시간의 경과를 나타낼 때는 ‘ㄴ 지’로 띄어 쓰고, 그렇지 않다면 ‘ㄴ지’를 붙여 쓰라는 겁니다. “집을 산 지 5년은 됐다”와 “꽁치를 왜 샀는지 모르겠다”처럼요.
--- p.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