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서 건져내고 보니, 남자의 몸에는 긁힌 자국 하나 없었어.
---「첫 문장」중에서
남자가 대답 않고 가만히 있으니까, 니나가 남자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어. “뭐, 우리가 찾은 것만 해도 주님께 감사드릴 일이죠.”
그 말을 들은 남자가 그제야 입을 열더군.
“제가 주님인데요.” 남자는 나직이 말했어.
--- p.13
손목시계를 보니 지금은 새벽 1시야. 우리가 표류하면서 맞는 닷새째 밤이고. 별이 하도 총총해서, 어떤 별이 새로 떠오르고 어떤 별이 사그라드는지 도통 알 수 없어. 꼭 반짝이는 소금이 가득 담긴 통이 하늘에서 쾅 하고 폭발한 것 같아.
--- p.52
전에 당신이 말했지. “벤지, 사람은 누구나 붙들고 버틸 무언가가 필요해.” 부디 내가 붙들고 버티게 해줘. 당신을, 우리가 처음으로 함께 보낸 그 한 시간을, 색색의 하늘을 올려다보던 우리 둘의 기억을. 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함께해줘.
--- p.54
몇 분 후, 르플뢰르는 만의 모래톱에 혼자 있었다. 그는 모래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양쪽 무릎에 체중을 싣고 허리를 쭉 편 다음, 허리춤에서 수첩을 꺼냈다. 그러고는 천천히 비닐봉지를 벗기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는 그를 설득하는 이성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안 돼, 이러면 안 돼.
--- p.76
무감각한 분위기가 뒤덮인 집 안에서 부부는 딱히 눈여겨보는 것도 없이 한참 동안 먼 곳을 응시하곤 했다. 그러다가 한쪽이 “뭐라고?”라고 물으면 다른 한쪽은 “뭐가?”라고 답했고, 뒤이어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라고 말하곤 했다.
--- p.87
“상어예요!” 제리가 외쳤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우리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보트 바닥이 다시 쿵 하고 울렸어. 그러더니 보트가 느닷없이 앞으로 휙 움직였고, 그 바람에 우리는 다 같이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어.
--- p.107
난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아무것도 못 할까 봐 두려워. 기도하면서 죽음을 기다리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못 할까 봐.
--- p.127
“지옥이 정말로 있나요?”
“당신이 상상하는 모습은 아니에요.”
“그럼 악한 사람들은 죽으면 어떻게 되죠?”
“왜 그걸 묻나요, 벤저민?” 그는 이렇게 물으며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어. “혹시 나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요?”
난 그 남자에게 눈을 부라렸어. 그리고 말했어.
“나한테 가까이 오지 마요.”
--- p.155
모질게 포효하는 바닷소리 안에서 우쭐한 목소리가 들려와 내 귀를 스쳤어. 너흰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해. 내가 너희를 모조리 삼킬 테니까.
--- p.205
하지만 난 이렇게 여기 있어. 난 살아 있어.
정말이지 힘 있는 문장이야. 난 살아 있어. 갱도에 갇혔지만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광부처럼, 아니면 활활 불타는 집에서 비틀비틀 걸어나오는 사람처럼. 난 살아 있어.
--- p.249
그 순간이 떠오르자 르플뢰르는 그만 울음이 터졌다. 어찌나 격하게 흐느꼈던지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였다. 그는 캥거루 인형을 가슴 한가운데에 대고 꽉 끌어안았다. 그들은 아이를 안전하게 지켜주지 못했다. 다 그들 잘못이었다.
--- p.276
“벤지, 사람은 누구나 붙들고 버틸 무언가가 필요해요.” 앨리스가 말했어. “나를 붙들어요.”
--- p.342
결국에는 바다가 있고, 육지가 있고, 그 사이에 일어나는 뉴스가 있다. 그 뉴스를 널리 전파하고자 우리는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때로 그 이야기의 주제는 생존이다.
--- p.356